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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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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카멜 حسين كامل حسن المجي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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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 본명 |
후세인 카멜 하산 알마지드 حسين كامل حسن المجيد Hussein Kamel al-Majid |
출생 | 1954년 6월 18일 |
이라크 왕국 살라딘 주 | |
사망 | 1996년 2월 23일 (향년 41세) |
이라크 공화국 바그다드 | |
직업 | 정치인, 군인 |
국적 | 이라크 |
정당 |
[[바트당| 바트당 ]] (
이라크)
|
배우자 | 라그하드 후세인[1] |
형제자매 | 사담 카멜 (1960 - 1996) |
[clearfix]
1. 개요
이라크의 정치인이자 군인.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사위이자 사촌이다.2. 생애
1954년 6월 18일 출생. 1982년에 군에 입대했고 1983년 사담 후세인의 장녀인 라그하드와 결혼한다. 원래 라그하드는 사담 후세인의 이복동생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그리티의 아들과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사담 후세인은 자신을 폭행하고 구박했던 의붓아버지의 아들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바르잔을 정적으로 여겨 숙청하면서 자연스레 혼담도 깨졌다. 사담 후세인은 자신의 사촌인 알리 하산 알 마지드의 조카이자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의 엘리트였던 후세인 카멜을 총애하게 되었고[2] 그에게 장녀 라그하드와 결혼하게 한다. 그의 동생인 사담 카멜도 후세인의 딸인 라나와 결혼하면서 역시 사위가 된다.그는 이라크의 군수장관과 석유장관을 역임했고 1987년부터 이라크의 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지휘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의 장남인 우다이 후세인이 사담 후세인의 시종인 카멜 한나를 파티에서 때려죽이자 그의 비행을 담은 자료를 사담 후세인에게 바쳐 사담 후세인이 자신의 장남을 후계자 선상에서 제외하게 만들고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서 그는 사담 후세인의 아들들과 완전히 척을 지게 된다. 한때 그는 후세인의 후계자 자리도 노린 것을 보이나 1991년 걸프 전쟁 도중에는 절망한 나머지 후세인에게 반항하다가 그의 눈밖에 나게 되었고 후세인이 침착한 모습을 보인 아들들에게 더 신임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종전 이후 그의 예상과 다르게 사담 후세인은 권좌를 지켰고 우다이 후세인은 전쟁 중에 추태를 보였던 후세인 카멜을 압박했다. 라그하드는 사담 후세인에게 우다이의 만행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지만 후세인 카멜은 그렇게 하면 사담 후세인이 자신을 약하다고 생각해서 안좋게 생각할 것이라고 거부했는데 그는 유엔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병기 프로그램에 대한 사찰을 시행하던 1995년 8월 7일 동생인 사담 카멜 부부와 자신의 아내인 라그하드를 데리고 요르단으로 전격 망명하여 사담 후세인을 비난한다. 그는 미국 CIA와 UNSCOM, 영국 MI6와 접촉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이라크의 대량살상병기 프로젝트를 넘길테니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신을 앉혀달라고 제의한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은 우다이 후세인과 알리 하산 알 마지드를 요르단에게 보내 이건 가족 문제라고 그들의 송환을 요구하다가 먹히지 않자 자신이 가진 모든 대량살상병기와 프로젝트를 사찰 책임자 롤프 에쿠우스에게 넘긴 다음에 이게 다 후세인 카멜 때문이다라고 폭로한다. 미국도 영국도 대량살상병기 프로그램을 입수한 이상 무리하게 후세인 카멜을 지도자를 세우는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었고 후세인 카멜은 모두에게 외면받았고 이용가치가 없어진 것이 밝혀지자 요르단에서도 찬밥 대우를 받는다.
권력욕에 미쳐 있던 후세인 카멜은 반쯤 미쳐버렸고 자신을 인터뷰하는 기자를 회치겠다고 협박하는 등 포악성을 드러냈다. 그러던 중 사담 후세인과 별거 중인 후세인 카멜의 장모 사지다 탈파가 라그하드와 라나와 접촉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라크는 찬밥이 된 그들을 회유했고 마침내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로 돌아온다면 목숨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1996년 2월 후세인 카멜은 자신이 20년 가까이 사담 후세인을 보좌했으니 자신을 용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동생 사담 카멜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국하나 귀국하는 즉시 불명예제대+이혼 콤보를 얻어맞고 집에서 은거하게 된다. 찬밥 대우를 받던 요르단에서의 생활보다도 더 나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짓말은 하지 않는 차가운 도시 남자 사담 후세인은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겠다고 했을 뿐 남의 손에서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으니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즉 케미컬 알리에게 카멜 형제가 이라크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결투를 빙자한 공격을 가해서 13시간의 전투 끝에 후세인 카멜과 사담 카멜 형제를 죽이니 그의 나이 42세였다. 그리고 그가 귀국한지는 3일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다.
물론 이 복수극의 장본인들도 말로가 비참하긴 마찬가지. 우다이 후세인은 이라크전 당시 미군과 싸우다 전사했고, 사담 후세인과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전쟁이 끝난 뒤 붙잡혀 각각 2006년과 2010년에 사형에 처해졌다. 전처 역시 요르단으로 망명해 보석 디자이너나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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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 사진의 주인공이 후세인 카멜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나 이 인물은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로 전혀 다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