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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41:26

후성(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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侯聲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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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이자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

2. 생애

군제주를 지냈고 조조가 둔전제를 시행해 백성들에게 소를 빌려주고 곡물로 조세를 받아들이게 하는 경작에 대한 조세 규정을 결정해 시행했다. 이 정책을 시행하면서 조지가 소를 빌려주고 세금을 징수했지만 가을이 되어도 징수량이 그리 늘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뭄, 수재 때는 더욱 조세를 걷는 것이 불편했다고 보고했으며, 조조는 이에 대한 개선책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자 후성이 관청에 있는 소를 농민에게 빌려주고 조세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관전을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낫다면서 조지의 주장은 관에서는 편리하지만 백성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진언했다. 이로 인해 조지가 자신의 계획으로 분전을 시행해 둔전을 성공적으로 시행해 수확량을 늘릴 수 있었다.

3. 미디어 믹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조조가 돈구령에 부임하면서 탐관오리들을 파면하면서 동평릉 현령이 되었으며, 조조가 돈구령에서 물러나고 한참 후에 동군태수로 부임하면서 조조를 섬긴다.

조지와 둔전에 관련해서 의견이 맞지 않았고 조지가 둔전제를 바꾸려 하자 후성은 잘못하면 백성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반대했는데, 조조가 둔전제의 개혁안에 대해 소를 나눠주는 것보다 밭을 나눠주는 것이 효율적인 것에 대해 설명하자 납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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