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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11:33:38

황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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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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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표간사 (1988~1994)
초대
조준희
제2대
황인철
제3대
홍성우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1994~현재)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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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9a2861><colcolor=#fff> 제2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표간사
황인철
黃仁喆 | Hwang In-chul
파일:황인철.jpg
출생 1940년 1월 24일
충청남도 대덕군
(現 대전광역시 유성구)
사망 1993년 1월 20일 (향년 52세)[1]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22 가톨릭대학교 강남성모병원
학력 대전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종교 천주교 ( 세례명: 세바스티아노)
경력 제13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문학과지성 창간
전국자폐아부모회 회장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회원
초대 한겨레신문 감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제2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표간사
계명복지회 회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나는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한다. 그러나 그에게 유죄 판결이 떨어지리라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변호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토로될 지경에 이르면, 도대체 이 재판의 의미는 무엇인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심리 관련 국방부 비상군법회의 재판정에서

대한민국의 1세대 인권 변호사.

2. 생애

1940년 충청남도 대덕에서 태어나 대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육군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친 후 판사로 근무하다가 1970년에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이후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와 함께 대표적인 1세대 인권 변호사로 불리며 1970~1980년대 여러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민청학련 사건,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YH 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등 그가 거쳐가지 않은 시국사건이 없다 싶을 정도로 수많은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또한 천주교인으로서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를 맡았다.

1975년에는 김주연, 김병익, 김현, 김치수와 함께 문학과지성사를 설립했다.

이후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회원으로서 민변을 창립했고, 1989년에는 경실련을 창설하여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1990년 현재의 민변 회장 격인 대표 간사를 맡아 2년 간 재임했다.

민변에서 《'무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문학과지성사, 1998)라는 평전을 출간한 바 있다(현재는 절판).

그러나 정작 그는 1990년 직장암 판정을 받고 세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고 투병을 하게 된다.

투병 중에도 시국사건의 피해자들을 변론하다 1993년 52세의 이른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로부터 30년 뒤인 2023년 5월, 그의 생가 터인 대전에 그를 기리는 기림비가 세워졌다.


[1] 53세 생일을 4일 앞두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