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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2:37:19

화냥년

1. 의미2. 민간어원3. 정설4. 기타 가설5. 작품에서의 화냥년

1. 의미

바람기가 있거나 창녀나 몸을 함부로 굴리는 문란한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

2. 민간어원

아래는 한때 화냥년의 어원이라고 널리 알려졌던 ' 환향녀(還鄕女)'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비롯한 사건이 있었을 때, 많은 여성들이 청나라를 비롯한 타국으로 끌려갔다.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는 수많은 조선 여자들이 청군에게 손쉽게 잡혀 강제로 순결을 잃었고, 청군의 성노리개 취급을 당하며 청국으로 끌려가 아비도 모르는 혼혈 사생아들을 수없이 양산했다고 한다. 이런 여성들은 대부분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친정에서 많은 돈을 주고 겨우 돌아온 여성들이 있었다.

문제는, 겨우 돌아온 여성들을 본 남편들이 절개를 잃었다고 그녀들을 내친 것. 그래서 이 여성들의 남편들이 단체로 왕에게 몰려가 이혼을 청구했다고 한다.[1]

결국 이렇게 돌아온 여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온 여자, 즉 환향녀(還鄕女)라고 불리며 멸시받았고,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조선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환향녀라는 말의 뜻은 정숙하지 못한 여인을 싸잡아 부르는 멸칭으로 바뀌었고, 발음도 화냥년으로 변했다.

다만 용어의 유래와 상관없이,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속환된 여성들에 대한 차별 자체는 실존했다. 환향녀 문서 참조.

3. 정설

참고문헌: 한자음의 변화와 '화냥'의 어원

그러나 오늘날 국어학계에서의 정설은 창녀를 뜻하는 중국 외래어 花娘의 중세 한국어의 발음 '화냥'에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년'이 결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중국에서 화낭(花娘)은 이미 당, 송대부터 기녀, 창기라는 말로 쓰였다. 가령 당대 시인인 이하(李賀)가 지은 〈신호자필률가(申胡子觱篥歌)〉에는 "삭객은 크게 기뻐하며 잔을 들어 일어서고 화낭에게 막에서 나와 배회하며 배알하도록 명한다(朔客大喜‧擎觴起立, 命花娘出幙, 徘徊拜客.)"[2] 라는 구절이 있고, 송나라 때 매요신(梅堯臣)이 지은 〈화낭가(花娘歌)〉에는 "화낭은 12세에 가무를 할 수 있고 대단한 명성은 악부에 머무른다(花娘十二能歌舞,籍甚聲名居樂府.).[3]"라고 되어 있다. 원말명초에 쓰인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에도 창부를 화낭(花娘)이라고 부른다는 구절[4]이 있는 것을 보면, 당, 송 이후 명나라까지도 널리 쓰였다. 오히려 만주어에서는 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 말이 우리나라로 건너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소 조선 초기 이전에는 들어와 민간에서 널리 쓰인 것으로 보인다. 15세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전교를 받으니, 진언하는 사람의 말 가운데 ‘… 요즈음 들으니 음란한 여자가 … 음란한 짓을 마음대로 행하여 교화를 오염시킨다고 하니,… 엄중하게 논죄하도록 하는 것이 편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 이제 遊女(유녀)라 칭하고 혹은 花娘이라 칭하며 음란한 짓을 제멋대로 하니, 이를 금제하는 조목을 뒤에 자세히 기록합니다.
《성종실록》 20권, 성종 3년(1472년) 7월 10일 을사 4번째 기사

그리고 1527년에 역관 최세진이 쓴 한자 학습서 《 훈몽자회》를 보면, 중세 국어에서는 娘을 원래 중국 발음(niáng)에 가깝게 '냥'으로 읽었음을 알 수 있다.[5] 따라서 쓸 때는 花娘으로 쓰고, 읽을 때는 '화냥'으로 읽었다. 현대 국어에서는 독음이 변해 娘을 '낭' 또는 '랑'으로 읽지만, '화냥년'이라는 욕에는 중세 국어의 발음이 그대로 남아 전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 병자호란 한참 전부터 '화냥'이란 말은 조선에서 널리 쓰이던 말이었으니, 송환된 여성 포로를 환향녀로 부르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민간 어원설은 더욱 근거가 없다. 다만 '-년'이란 욕은 17세기 무렵부터 등장했으므로, '화냥년'이라는 형태로 굳어진 것이 병자호란 무렵의 흉흉한 시기일 수는 있다.

4. 기타 가설

이외에도 화냥년의 어원이 잊히면서 조선시대 후반부터 어원을 추측하는 여러 이설이 돌았다.

1936년에 쓰여진 양주동 해설에 따르면, 이런 설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양주동은 이런 설들은 터무니없다고 여겼으며, 오히려 신라의 화랑(花郞)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을 주장하였다. 화랑도가 신라 초~중기에는 미풍이었지만, 후기에 들어서는 타락하여 동성애 집단으로 변질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 인해 근세 이후 '화랭이'라는 말이 남자 무당을 뜻하게 되었으니, 화냥도 여기서 온 말[6]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후대에 반박되어 현재는 죽은 학설이다. 당장 이때의 화랑은 花(남자)이고, 화냥은 花(여자)여서 비약이 심한 주장이었다.

그 외에도 '화냥질'이란 평안북도 부근의 사투리에서 일반명사화했다는 설이 있었고, 심지어 만주어 'hayan'(음탕한)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었다.

5. 작품에서의 화냥년

매체의 창작물에서는 보통 알려진대로 색녀의 의미로 쓰인다.

화냥년이라는 말이 나온 작품으로는 주요섭의 〈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있다. 과부 어머니가 옥희와 대화할 때 등장한다.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세상이 욕을 한단다. 사람들이 욕을 해.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다,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해. …… 옥희가 공부를 해서 훌륭하게 돼두, 에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그리고 권정생 몽실 언니에도 여러 상황에서 이 단어의 사용이 보인다.

좀비콤비에서 영화 제목 화양연화를 크게 외친 사람에게 어느 할머니가 놀라 쓰러지는데, 화냥년아라고 욕한 것으로 잘못 듣었기 때문.

DVD판에 실렸던 사우스파크 극장판 비공식 번역을 " 카일 엄마는 화냥년"으로 번역하기도 했다.[7]


[1] 당시 주화파인 최명길은 "그녀들을 청나라로 잡혀가게 한 게 대체 누군데? 왜 그녀들을 욕하는가? 아녀자들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이들이 정작 아녀자들에게 안 죽고 돌아왔냐고 큰소리치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은장도라는 쓸데없는 것 하나 던져주고 알아서 죽으라고? 은장도를 던져주기 앞서 자신이 칼을 들고 그녀들을 지켜줘야 하지 않았는가."란 말을 했다. 참고로 사관은 그런 최명길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했다. [2] 『李賀詩歌集注』, 상해:상해고적출판사, 1978, 140쪽 참조 [3] 『全宋詩』24, 「梅堯臣」14, 花娘歌, 2832쪽 [4] 『南村輟耕錄』14, 「婦女曰娘」, 174쪽, "故子謂母曰娘, 而世謂穩婆曰老娘, 女巫曰師娘, 都下及江南謂男覡亦曰師娘, 娼婦曰花娘, 達旦又謂草娘, 苗人謂妻曰夫娘, 南方謂婦人之無行者亦曰夫娘." [5] 훈몽자회》 상권 천륜(天倫)편에 보면, 娘을 '겨집 냐+(옛이응)'이라고 써놨다. [6] 예컨대 '화랑질하는 년'과 같은 형태를 거쳐 변화 [7] 사실 bitch를 '화냥년'으로 번역하는 건 좀 과하기도 하다. 'bitch'도 여성혐오 욕설이긴 하나 '썅X' 수준인데, '화냥년'은 환항년 또는 화낭(-娘)에서 유래한 어원으로 추정되므로 그 수준이 매우 심각한 여성혐오 욕설이다. '화냥년'에 그나마 대응되는 영어 욕설은 ' cunt'로 여성의 생식기를 낮잡아 부르는 욕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