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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철 洪秀哲 | Hong Soo-Che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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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7년 1월 17일 ([age(1957-01-17)]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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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남양 홍씨 |
학력 | 양정고등학교 |
가족 | 형 홍수환, 아내 박미령, 슬하 2남 |
데뷔 | 1977년 《머물게 해주》 |
종교 | 개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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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가수이자 현직 목사.2. 상세
복싱 챔피언으로 유명한 홍수환의 친동생이며, 대한민국에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한 싱어송라이터 및 가수이다.1977년부터 가요계에 데뷔했으며 형이 워낙에 유명했기 때문에 데뷔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의 대표곡 중에 1985년에 불러서 매우 크게 히트한 '철없던 사랑'이라는 곡이 있다.
철없던 사랑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장미 빛깔 그 입술 등 많은 곡들을 불러서 상당수 히트를 쳤으며 1991년에는 보고싶다 친구야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이 곡도 국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 이전에 80년대에는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에 조연으로 종종 나오기도 했다.
3. 표절 사건으로 인한 가요계 퇴출
하지만 그 이후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바로 그가 부른 '보고싶다 친구야'라는 곡은 원래 3년 전 발표한 일본 가수 나가부치 츠요시[1]의 대표곡 '톤보(とんぼ)'를 그대로 표절한 곡이었기 때문. 그것도 국내에서 흔히 말하는 다른 표절곡들이 원곡을 한 두 소절 따온 것과는 달리 '보고싶다 친구야'는 원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놓고 통째로 베껴만든 노래라서 파장이 그만큼 훨씬 더 컸다.표절 사실은 1993년에 밝혀지게 된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유튜브가 워낙에 발달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며칠도 안 가서 밝혀져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는게 일반적이지만 저 당시에는 인터넷도(인터넷이 서비스 된 건 1994년도 쯤. 물론 PC통신이 있었지만 타국의 PC통신에 접속하려면 국제전화비용이...) 없었고 일본 문화 개방이 일어나기도 한참 전에 생긴 일이었던 지라 표절을 해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려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 곡은 상당히 짧은 기간에 표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돈보가 워낙 유명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홍수철의 곡이 워낙에 히트를 했던지라 일이 너무나 커져서 당시 주요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표절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이 곡이 처음 나왔을 때 당시 인기곡 상위권 순위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별로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상은 표절이 소문나서 더 이상 활동을 못했기 때문이다. 곡 반응은 좋았다. 요즘은 한 노래를 내면 2-3주 방송 활동을 하고 방송에서 사라져 다음 곡을 준비하고 컴백하는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방송 활동-준비 기간(행사 등 외부 활동 병행)-컴백 방식이 아닌, 한 곡으로 인기가 떨어질 때까지, 길게는 1년 넘게도 방송 활동을 했다.
표절이기에 유튜브에 올라온 그가 부른 보고싶다 친구야를 검색하면 몇몇 영상은 남아 있지만 이전에 있었던 영상은 원작자 측에서 요청에 따라 삭제됨으로 남아있는 영상도 삭제될 가능성이 높다.
저 시절 표절 시비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표절 사실이 들통나자 직접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기자들 앞에서 표절 사실을 인정하기는 커녕 "내 곡이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인간들은 전부 고소해버리겠다" 라고 어그로를 끌면서 으름장을 내놨다고 한다. 하지만, 저렇게 무책임한 발언이 기자들의 역린을 건드리자 대대적으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후속 보도를 했고 연예계 활동에서도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완전히 쫒겨날 정도로 매장을 당했고, 두 번 다시 가수로 활동하는 일도 없이 불명예 은퇴를 하게 되었다.
표절 판정을 받은 그 해에, 베스트 앨범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정규 앨범 '황제를 위하여'를 발매하였다.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 이지연의 '늦지 않았어요'를 작곡한 박인호(박문영)이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타이틀곡 '황제를 위하여'는 활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24년 기준으로 현재까지도 "일본 노래 표절했다가 뽀록나서 전국적으로 개망신을 당하고 은퇴한 가수"로 계속해서 회자되는 중이다. #
4. 근황
위의 사건으로 가수 활동을 그만둔 이후 그는 경기도 구리시 예빛교회에서 목사로써 재직하는 중이다. 2018년 CBS의 간증토크쇼 '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했는데, 여기서 한때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년 넘게 의식불명 상태까지 간 적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전해졌다.5. 여담
- 그의 대표곡 중 한 곡인 '철없던 사랑'은 수십년 후 박진영의 ' When We Disco'와의 유사성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