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칸세코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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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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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2000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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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 1988 | 1989 |
1990 | 1992 | 1999 |
198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 ||||
조지 벨 ( 토론토 블루제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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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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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욘트 ( 밀워키 브루어스) |
198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 ||||
아지 기옌 ( 시카고 화이트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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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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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맥과이어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98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커비 퍼켓 ( 미네소타 트윈스) 드와이트 에반스 ( 보스턴 레드삭스) 조지 벨 ( 토론토 블루제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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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그린웰 ( 보스턴 레드삭스) 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커비 퍼켓 ( 미네소타 트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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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욘트 ( 밀워키 브루어스) 커비 퍼켓 ( 미네소타 트윈스) 루벤 시에라 ( 텍사스 레인저스) |
199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로빈 욘트 ( 밀워키 브루어스) 커비 퍼켓 ( 미네소타 트윈스) 루벤 시에라 ( 텍사스 레인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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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리키 헨더슨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엘리스 버크스 ( 보스턴 레드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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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카터 ( 토론토 블루제이스) 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켄 그리피 주니어 ( 시애틀 매리너스) |
199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리키 헨더슨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엘리스 버크스 ( 보스턴 레드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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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카터 ( 토론토 블루제이스) 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켄 그리피 주니어 ( 시애틀 매리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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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카터 ( 토론토 블루제이스) 커비 퍼켓 ( 미네소타 트윈스) 후안 곤잘레스 ( 텍사스 레인저스) |
199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지명타자 부문 실버 슬러거 | ||||
에드가 마르티네즈 ( 시애틀 매리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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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 토론토 블루제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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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팔메이로 ( 텍사스 레인저스) |
198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 ||||
마크 맥과이어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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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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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맥그리프 ( 토론토 블루제이스) |
199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 ||||
세실 필더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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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세실 필더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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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곤잘레스 ( 텍사스 레인저스) |
198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 ||||
조지 벨 ( 토론토 블루제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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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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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시에라 ( 텍사스 레인저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33번 | ||||
마이크 토레즈 (1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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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1985~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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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톰벌린 (1995) |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33번 | ||||
도널드 해리스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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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1992~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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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켓 (1996~1999) |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33번 | ||||
프랭키 로드리게스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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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1995~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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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에이버리 (1997~1998)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33번 | ||||
데이먼 마쇼어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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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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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 매튜스 (1998~2001) |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44번 | ||||
켄 로빈슨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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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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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코치 (1999~2001) |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33번 | ||||
에드 스프라그 (1991~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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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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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웰스 (1999~2000) |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등번호 33번 | ||||
프랭크 하워드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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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1999~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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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안 롤스 (2001~2003) |
뉴욕 양키스 등번호 33번 | ||||
라이언 톰슨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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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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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소리아노 (2001)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31번 | ||||
그렉 노튼 (1996~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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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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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데이비스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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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칸세코 카파스 주니어 José Canseco Capas J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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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4년 7월 2일 ([age(1964-07-02)]세) |
아바나 | |
국적 |
[[쿠바|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캐롤 시티 고등학교 - 코랄 파크 고등학교 |
신체 | 193cm / 108kg |
포지션 | 외야수, 지명타자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2년 드래프트 15라운드 (전체 392번, OAK) |
소속팀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5~1992) 텍사스 레인저스 (1992~1994) 보스턴 레드삭스 (1995~1996)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7)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8)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1999~2000) 뉴욕 양키스 (2000)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1) |
기록 |
20-20 클럽 2회 (1991, 1998) 40-40 클럽 (1988) |
가족 | 쌍둥이 동생 아지 칸세코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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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바 망명객 집안 출신의 강타자로 MLB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메이저리그 최초의 40-40 클럽 달성자로 파워와 운동능력을 겸비한 5툴 플레이어. 실력뿐 아니라 빼어난 외모와 쇼맨십까지 갖춘 선수였다. 한때는 마돈나와 사귀기도 했었을 정도. 하지만 약물 문제[1]와 문란한 사생활에 더해 과속, 총기 소지, 폭행, 가정폭력 등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고 경기장 안에서도 게으른 태도와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악명을 떨쳤다.[2] 그래서 저니맨이 되기는 했어도 어찌되었건 통산 462홈런을 때려내는 등 꽤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으나, 은퇴 후에는 역시 사고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해 안 그래도 떨어진 위신을 다시 세우지 못하고 완전히 몰락했다. 그렇게 재산을 까먹고 밤무대나 방송계 등을 전전하던 와중에, 자서전을 통해 동료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약물 복용을 까발리면서 스테로이드 시대를 보내던 미국 야구계에 경종을 울렸다.
그의 쌍둥이 동생 아지 칸세코 역시 야구선수였고, 형 못지않게 평판이 나빴다. 한국에서도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 하지만 호세가 17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1,800경기를 출장하며 통산 462홈런을 기록하는 등 한때나마 스타로 활약했지만, 아지는 메이저 기록이 3년 동안 24경기 0홈런에 불과했고, 한국/일본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한 경기도 출전 못한채 퇴출되었다.[3]
2. 선수 경력
배쉬 브라더스의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좌 : 맥과이어, 우 : 칸세코)
메이저리그에서 최초의 40-40 클럽에 가입한 선수가 다름아닌 이 칸세코. 지금의 우락부락한 근육질 모습을 보면 과연 그런 역사가 있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4]지만, 당시에는 리키 헨더슨과 함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강의 외야진을 구축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 마크 맥과이어와 함께 오클랜드의 강력한 타선을 이끈 주역이었다. 마크 맥과이어와 그를 가리켜 배쉬 브라더즈(Bash Brothers)라고 했다.
수비는 잘 못하는 편이어서,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인 1993년 지금까지도 유명한 헤딩 홈런을 만들어주기도 했다.[5]
젊어서 잘나가던 시절엔 뛰어난 성적에 화려하고 역동적인 플레이스타일, 우람한 체구와 준수한 외모, 타고난 스타성을 모두 갖춘 엄친아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으나 이후 방탕한 사생활로 인해 성적의 기복이 심했다. 이 때문에 92년 8월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1995~96)-오클랜드(1997)- 토론토 블루제이스(1998)- 탬파베이 데블레이스(1999~2000)- 뉴욕 양키스(2000)- 시카고 화이트삭스(2001)를 돌아다니는 저니맨 생활을 하였다. 저런 역마살에도 20홈런 이상을 때려낼 수 있는 장타 능력을 보여주었다.
3. 은퇴 후
하지만 야구 역사상 칸세코의 이름을 남길 대사건은 은퇴 후에 벌어졌다. 칸세코는 으레 '놀 줄 아는 스포츠스타'들이 그랬듯이 이 때까지 벌어 놓은 돈을 다 까먹고 재기를 위해 자서전 "약물에 취해(Juiced)"를 썼는데, 그 책에서 '많은 메이저리거들이 약물을 하고 있다' 라고 주장하며 자신 또한 약물을 했다고 시인했다. 이 사건은 당시엔 그냥 한물 간 전직 스포츠스타가 돈에 미쳐 헛소리를 해대는 것으로 간주했으며 칸세코는 '약쟁이' 와 '동료 팔아서 돈 버는 녀석' 이라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하지만 그가 했던 말은 거의 다 사실로 밝혀졌다. 그가 약물을 했다, 혹은 했을 것 같다라고 주장한 선수들은 백발백중 약물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7]. 팬들에게 애초부터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보였던 배리 본즈는 그저 반발이 거센 정도였지만, 이후 계속 터져나오는 선수들은 뛰어난 실력과 깨끗한 이미지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선수들이었다.
로저 클레멘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매니 라미레즈 등의 팬들은 처음엔 칸세코를 비난하며 '이 선수들은 절대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 고 주장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미첼 리포트를 통해 이 선수들을 포함한 많은 선수들의 약물 복용사실이 확실해진 후, 메이저리거 팬들은 '이제 그 누구도 확실하게 약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호세 칸세코가 절대 약물을 하지 않았을 거라 주장하는 인물은 단 한 명인데, 그 한 명이 누구냐면 데릭 지터. 지터에 대해서는 "지터가 약물을 했으면 그는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붙였다(그러나 대다수의 MLB 팬들은 지터를 '지터에게는 낮에 야구에서 치는 홈런 따위보다, 밤에 수많은 여성들을 상대로 치는 홈런이 더 중요하다'로 깐다. 즉 스테로이드 복용 시 부작용으로 오는 성기능 장애라는 리스크 때문에 지터가 약물을 안 했을 거라는 이야기)[8]. 켄 그리피 주니어나 몇몇 선수들을 대상으론 "아마 안 했을 거다"로 확신은 못하지만 안했다라고 한다.
아무튼 이 대폭로 덕에 칸세코는 약물에 찌든 야구계에 혁명을 일으킨 사나이, 혹은 현역일 땐 실컷 약 빨다가 은퇴하니깐 다른 애들 걸고 넘어지는 물귀신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따랐다. 그의 의도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야구계의 오랜 암덩어리에 손을 대는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후의 행보를 볼때 그의 행동은 양심선언이라기보다 업계를 등쳐 먹으려다 모두가 망해 버린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9]
은퇴 이후 완전 막장의 길을 걷고 있다. 현역 시절 벌어놓은 돈도 다 날리고 결국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자선 복싱 시합에 출전하지만 전적은 3전 3패. 언론과 팬들도 무관심하여 대전료도 얼마 못 받았다.
그리고 2009년, 갑자기 종합격투기 선수로 변신, 5월 26일 최홍만과 경기를 벌였다. 당시 칸세코는 자신이 취미 삼아 무에타이를 20년간 수련했었다며 자신감을 표했지만, 그런 게 프로에게 통할 리 없었다. 당연히 결과는 압도적으로 압도당하며 1회전 TKO패배[10]. 나이 차이와 경험 면에서 압도적으로 차이나는지라 경기 내용도 엉망이었다.[11]
그래도 정신을 못차렸던지, 한 나이트클럽에서 연 복싱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그는 자신의 쌍둥이 동생인 아지 칸세코를 대리출전시키는 등 갖가지 기행을 저지르고 있다. 여담으로, 동생인 아지 칸세코 역시 좀 막장이라 이 일이 있기 두달 전에는 음주운전을 하다 기소되기도 했었다.
1992년 이혼 이후, 프로 시절에 얻은 돈으로 후터스에서 일하던 웨이트리스인 제시카 칸세코랑 1996년에 결혼하였지만, 이듬해 폭행혐의로 구속되고, 차를 여러대 사거나 여러 기행을 하는 등의 돈낭비를 하다, 후에 자신의 수입 40%가 세금으로 떼이고, 남은 돈도 1999년의 이혼으로 인하여 거의 잃어버렸다. 후에 제시카 칸세코는 2005년에 호세가 위에 언급된 자서전을 출간한 몇 달후에, 영 안 좋았던 3년동안 전 남편과의 생활을 돌아보는 자서전을 출판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플레이보이의 잡지 모델이 되고 지상파 아침방송에서도 출연하기도 하였다. 2012년부터는 다른 유명인들의 이혼녀들을 조명한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하여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고생을 함에도 야구에 대한 애정을 버릴수 없었는지, 자서전으로 얻은 인기로 2006년부터 독립 리그와 아마추어 리그에서 간간히 출전하고 있다. 물론 약물 복용 전적이 있어서 몇 경기만 뛰는 이벤트성 출전이 많았고, 리그가 시작되기 전에 약물을 투여 한 적도 있어서 그리 좋은 이미지는 만들지 못하였다. 2011년에는 어프렌티스의 연예인 버전에 참가했다가, 부친의 건강이상으로 인하여 도중에 기권하였고, 그가 병문안을 가던 사이 부친은 이미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나중에 2012년에는 파산 신청을 하기도 하였다. 링크
그의 딸 조시 칸세코는 모친을 따라가고 무명 모델로 그럭저럭 살다, 2015년 코첼라에서 친구들과 찍은 인스타그램 사진들이 엄청난 호응을 얻은 이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수영복 이슈에 신청하거나 플레이보이에 화보를 올리고, 2018년에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 나오며 인기를 쌓고있다. 현재는 로건 폴과 교제하고 있는 중이다.
2019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주유소 및 세차장을 라스베이거스에 개업하고 운영하고 있다. 링크 서비스의 질이 들쭉날쭉 한 모양인지, 평가는 그리 좋은편은 아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에도 마해영이 약물복용 실태를 직접 폭로했다. 사람들은 'KBO의 칸세코'라고 그를 부르고 있는데, 사건의 추이가 어찌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12].
여담으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는 LG시절 정의윤을 보고 "저 선수를 보면 호세 칸세코가 생각난다." 이라는 반응을 남겼다.
4. 마구마구에서의 칸세코
애초 MLB 카드가 출시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는 공갈포의 이미지가 강했으나(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가 그의 전성기), 레전드 카드의 등장으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올스타의 우익수를 맡게 되었고 파워형 5툴을 자랑하며 베테랑 훈련 시 퀵스로잉 확정인 준수한 성능의 카드. 40-40을 달성한 전성기 88 호세.C 엘리트 카드의 등장으로 90 리키.H(핸더슨) 엘리트와 함께 오클랜드 관련 세트덱의 무시무시한 외야 코너를 책임지는 막강한 카드지만, 나머지 오클랜드 엘리트, 레전드 카드들이 이 두장을 제외한 몇몇 카드를 제외하면 스피드가 너무 처참해서 알.S(시몬스) 블랙 카드[13]가 없다면 중견수에는 유망주나 용병을 사용해야 하며, 2루수에도[14] 용병이나 유망주를 사용해야 한다.5. 관련 문서
[1]
스테로이드 복용을 시인하기 전에도 워낙 근육질 체형이어서 현역 시절부터 스테로이드 복용 의심자 1순위로 꼽혀왔다. 스테로이드뿐만 아니라 음주,
코카인 등 약물 중독 문제도 달고 다녔다.
[2]
국내
MLB 팬들이 그를 '
호색한 색호'라고 불렀을 정도.
레딧에서 칸세코가
직접 AMA (Ask Me Anything)을 진행하자 그가 어린애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사인할때 돈을 내라는 등 그의 온갖 악행들을 고발하는 댓글로 넘쳐났다. 즉, 성격이 드러웠다(so-called douchebag)는 것을 알 수 있다.
[3]
킨테츠에서는 당시 일본 외국인선수 등록 제한이 1군 2명, 2군 3명이었기 때문에 2명 안에 못 들어서 2군 붙박이로 있다가 새 외국인을 영입하면서 시즌 도중에 퇴출됐다.
[4]
사실 40-40 클럽 가입이라는 마일스톤을 위해 16개의 도루실패를 기록하여 71.4%라는 성공율을 보인지라 칸세코의 40도루가 세이버 상 손익분기점인 70%는 넘겼지만 엄격한 의미에서의 생산적 도루 성공율인 75%는 기록하지는 못했다. 물론 70% 정도를 넘기면 의미있는 도루 기록이라고 판단하기에 그 자체로 폄하될 기록은 아니며, 오히려 그가 약쟁이이기 때문에 이 기록이 인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5]
저 일이 있은 후 부상으로 잔여 시즌 출장을 못했다. 이유가 저 헤딩홈런 하나 때문만은 아니고, 팀에서 내보낼 투수가 없자 칸세코가 갑작스럽게 교체 투수로 투입되었다가 팔에 무리가 와서 전력에서 이탈한 것이다.
[6]
이 저니맨 생활 와중 1998년 토론토에서 그의 홈런 수가 갑자기 23개에서 46개로 폭등하는데, 이유는 뭐 다 알듯. 참고로 이 당시 칸세코의 팀메이트가 바로
그 분이다....
[7]
유일하게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약물복용 여부가 공중에 떠있는 선수라면
이반 로드리게스 정도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8]
그런데 그 데릭 지터도 약물 의심 리스트에 오른 전례가 있다. 다만 이 쪽은 그야말로 온갖 선수를 다 망라했다는 느낌이지만.
[9]
하지만 칸세코가 그 말조차 하지 않고 로켓-본즈 등이 모두 명전에 들어간 이후 뒤늦게 그 일이 터졌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봤을 때 칸세코의 의도가 얼마나 구리구리하든
결과는 좋았다고 보는 것이 국내 MLB 팬덤의 결론이다. 이 파동으로 인해 한동안 MLB 인기가 추락했다. 이후
라이언 브론의 약물 파동이 일었을 때 MLB 팬덤이 완전히 들썩였던 것도 그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0]
참고로 최홍만은 1980년생, 칸세코는 1964년생. 무려 16년 차이다
[11]
이때 그는 76초 남짓 버티다가 최홍만이 테이크다운 이후 말 그대로 두들겨패면서 떡실신당했는데, 현지 해설가들은 이를 두고 "예상보다 굉장히 선전했다"고 평했다. 심지어 초반 10초 정도 지난 시점에서 칸세코가 킥으로 최홍만을 견제하자 "글쎄 호세는 벌써 제 예상보다 10초 더 버티고 있는데요?"라고 언급하기도.
[12]
일단 그 이후 몇 년의 추세만 보면 말한 사람도 생각이 깊지 못했으며, 이후의 전개도 애매하게 진행되었다 정도로 매듭지어진 분위기이다. 다만 약물 문제를 환기시킨 정도의 의미는 있다. 과거의 KBO는 약물이 문제다라는 의식 자체가 약했으니까.
[13]
듀얼 포지션으로 중견수로도 사용 가능한 좌익수 블랙 카드
[14]
자체적인 레전드, 엘리트, 블랙 카드가 없는 처참한 라인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