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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13 19:58:58

현철규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현철해의 형이다.

2. 생애

1932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동생 현철해가 중국 출신인 것을 보아서는 현철규 역시 중국 출신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버지는 김일성 빨치산 부대원 현용택으로 1938년 임강현 전투에서 전사했다. 좋은 성분 덕분에 해방 후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녔으며 김일성 친위중대 호위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로 유학갔다.

귀국 후에 조직지도부에서 일하면서 김정일의 측근 그룹에 들게 되었고,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 1972년에 중앙위원회 간부부장을 지냈다. 하지만 실수를 해서 경질된 것인지 1980년 6차 당대회 때는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했다. 그러다가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에 선출,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나타났으며 1985년 12월 함경남도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6년 3월,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으며 1987년 1월,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옮겼다. 1989년 10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까지 승진했으며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1990년 11월에 다시 함남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91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 2차 회의에서 백범수와 함께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92년 4월,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2년 3월, 현무광 장의위원,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런데 아들인 외교관 현성일이 탈북하면서 1996년 2월에 전격적으로 경질, 리태남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실종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함경남도 도당 전원회의 뒷풀이로 함경남도 신흥군의 특각에서 파티가 열렸는데, 참가자들이 박정희가 좋아했다는 노래 낙화유수를 불렀다가 신소가 들어와서 리제강이 주도하는 강력한 검열에 박살이 났고, 기업소 지배인으로 강등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성분이 좋기도 하고 동생 현철해가 김정일의 측근으로 남은 데다가 김정은을 북한의 최고 사령관 수반으로 옹립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인지라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끌려갔다던가 하는 운명은 맞이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정치적으론 완전히 몰락한 것이 확실하다. 이후 동정보도는 일절 없었으며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2012년에 제작된 조선기록영화 "만경대혁명학원에 깃든 위대한 사랑"에 현철규가 친위중대원의 일원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반역자 취급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