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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4년 시즌 전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이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 겸 구단주에게 집단으로 항명한 사건.2. 배경
1983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해태 타이거즈 프런트는 선수들의 복리후생 향상은커녕 운영비 절감 등의 이유로 메리트 제도 축소,[1] 숙소 등급 격하,[2] 식사비 축소 등을 시행하여 선수들의 반발을 샀고, 이에 해태 내 고참급 선수들은 항의하는 의미로 항명을 준비하였다.1984년 4월 10일 잠실야구장에서의 원정경기를 마친 후 선수단은 박건배 구단주가 주최하는 회식에 참석했지만 아무도 차려진 불고기와 반찬 등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불고기는 숯덩이가 될 정도로 시커멓게 타서 연기만 피웠다. 사태를 파악한 김응용 감독이 "뭣 들하는 거야? 어서 먹어!"라고 다그쳤지만, 선수들은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화가 난 박건배 구단주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당시 주장인 김준환은[3] 김봉연과 먼저 계획을 모의하고 1년 후배인 김일권에게 뜻을 전한 후, 김일권이 호텔에 후배 선수들을 미팅을 소집시켜 의사를 물었다고 한다. 후배들도 동의하자 거사를 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사라 함은 차려진 불고기에 먼저 손을 대지말고 구단주에게 김봉연과 김준환이 의사를 전달한 후 구단주가 수용하면 김일권이 먹으라는 손짓을 하고, 그 손짓을 보면 고기를 먹기로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회식이 시작된 후 김봉연과 김준환의 사인이 없었고, 타이밍을 놓친 김일권은 후배들에게 손짓을 할 수 없어 고기를 다 태우고 말았다. 비록 노쇼는 아니지만, 식당 주인에게 다른 의미로 민폐를 끼친 꼴이 되었다.
훗날 본 항명 사건에 대해 여러 기사가 나왔으나 당사자들인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2.1. 김일권의 입장
이진욱과 정순주가 진행하는 JTBC 사담기(사진에 담긴 숨은 이야기)에 출연하여 당시 장면을 설명하였다.해태 주장은 김봉연('82~'83년), 김준환('84년), 김일권('85년) 순으로 이어졌고 84년에 일이 일어났다. 김봉연과 김준환이 김일권의 고교 1년 선배였고 두 사람이 김일권에게 '일권아 오늘 구단 회식이 있는데 팀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선수들의 불만이 많은데 오늘 회식에서 이야기를 하자' 제안하였고 김일권은 '선배들이 한다고 하면 나는 콜'하면서 후배 선수들을 미팅(집합)에 소집시켰다. 미팅에서 선배들의 의사들이 이러니 너희들(후배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고 모두 동의하였다. 구단주, 사장, 감독 등은 상석에 앉고 선수들은 양쪽에 나눠서 착석했다. 그러나 불고기는 하염없이 타고 있고 선수들이 빨리 먹어야 하는데 손을 댈 수 없었다. 선배들의 사인이 있어야 후배들은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사인은 김봉연과 김준환이 김일권에 먼저 사인을 주면, 김일권이 후배들에게 사인을 주는 방식이였다. 그러나 먹으라는 사인이 없어 고기는 탔고 구단주와 감독은 분노하였다. 김일권은 뒤돌아 앉으면 구단주를 모시고 올 수 있는 자리였고 김봉연과 김준환은 상 건너편에 있어서 건너올 수 없었는데 김일권이 구단주를 모시기 위해 일어서자 김일권에게 시선이 쏠렸다. 김일권은 박건배 구단주에게 '선배님들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말하면서 모시고 왔다. 사람들이 봤을 땐 내가 불고기 항명의 주동자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건배 구단주는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김응용 감독은 김일권에게 질책하는 바람에 트러블이 생겼다. 해태 타이거즈에서 진상 조사를 하였고 주동자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김일권이 주동자로 몰렸고, 김일권은 그 한을 안고 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야구했고 태평양으로 이적해서도 '트러블 메이커'라는 이미지가 박혔다. 기자들이나 모든 구단 관계자들에게 엄청난 피해의식을 안고 운동을 해왔다. (사담기 출연을) 지금 너무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죽기 전에 꼭 한 번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가슴에 얹혀진 응어리가 다 내려가는 느낌이다.
광주문화방송 전설의 타이거즈 김봉연-김종모 편에서도 전화상으로 출연하여 위와 거의 똑같이 설명하였다. 두 번의 출연분에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건 본인은 주동자가 아닌데 억울하게 주동자로 몰려 피해를 봤다이다.
2021년 7월 전설의 타이거즈에 김준환과 함께 직접 출연하여 이 사건을 설명하였고, 야사시TV에서도 설명했다. 추가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박건배 회장이 자리를 떠나고 그 후 김응용 감독이 심하게 질책하자 회식 테이블 한 가운데에서 몸싸움이 날 뻔했다. 때리려고 하길래 내가 가만히 맞을 사람도 아니고 나도 달려들었는데 후배들이 말렸다.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구단버스에 올라탔는데 맨 앞줄에 앉은 김봉연과 김준환은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버스기사님보고 잠깐 차에서 내리라고 한 다음 화가 나서 좌석 상단에 있는 수납장에서 야구배트를 꺼내 '니들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지금 뭐하는 거야?'하면서 선배들에게 소리치고 후배들이 말렸다.
2.2. 김준환의 입장
유튜브 채널 야사시TV에 출연하여 당시 장면을 술회했다.해태의 치부인데 정규시즌 성적도 잘 나오고해서 선수들은 기대감이 있었다. 고위층은 안 그랬을텐데 과장, 부장들이 자꾸 선수단 운영비용을 절감했다. 선수들이 원하는 스파이크보다 더 떨어지는 제품을 신으라고 하는 등, 남서울호텔에서 영동호텔로 숙소 등급을 낮추는 등 선수들의 불만이 생겼다. 그 당시 제가 주장이었다. 회식이 있는데 불만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라 지시했고 후배 선수들의 불만을 취합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해서 "우리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밥을 먹지말자"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선수들이 젓가락을 안들고 있으니 분위기가 이상한 걸 회장님이 감지했다. 회장님이 최고참 선수들의 자리로 와서 "너희들 왜그래? 뭣이 문제냐?" "야 그런것 가지고 지금 이러는거냐? 쪽팔리게 니들 말 알아들었고 들어줄테니까 그럼 식사하자"고 했다. 김준환은 그렇다고 "아닙니다. 각서를 써 주십시오"할 수는 없는 일이며 "회장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했으니 이제 감사한 마음으로 먹자"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미 고기는 다 탔다. 그 때 김일권이가 좋은 뜻으로 무슨 말 한마디를 했는데[4] 그 말을 들은 김응용이 잘못 받아들였다. 감독님은 "방금 다 끝난 이야기를 왜 또 꺼내냐?" 화를 냈고 김일권은 "왜 감독님은 나만 가지고 그러냐?"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김준환 본인은 선수들의 불만을 취합해서 구단주께 이야기하고 관철시키려고 했는데 김일권의 말 때문에 묻힌 느낌이다.
3. 후일담
- 이 사건으로 인해 김일권은 김응용 감독에게 주동자로 낙인찍히고 3경기 출장정지 및 벌금 300만 원[5]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구단 조사결과 김일권이 주동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대외적 징계 발표와는 달리 실제로는 3경기 출장정지만 집행하고 벌금은 받지 않았다. 김일권은 박건배 회장에게 사과하러 간 자리에서 오히려 500만 원이 든 금일봉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금일봉을 선배들과 나눠 가졌냐는 질문을 받자 두 선배가 한 게 뭐 있냐고 하면서 혼자서 다 가졌다고 밝혔다. 2021년 기사
- 김일권은 이 사건 이후 1984년 시즌 내내 해태의 주전 외야수로 출전했다. 그러나 1985년 지역 출신 대형 내야수였던 이순철이 입단하고[6] 1986년 3루수 한대화가 트레이드로 해태 유니폼을 입으면서 이순철이 외야수로 전향하게 됐다. 그러자 김일권이 자리를 잃게 됐고 결국 1987년 시즌을 마치고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 김일권이 해태 코치로 부임한 첫 해인 1996년 초에 해태 타이거즈의 또 다른 항명 사건인 해태 타이거즈 하와이 항명 사건이 일어난다.
[1]
단타 1만 원, 2루타 2만 원, 3루타 3만 원, 홈런 4만 원식으로 경기마다 개인 성적에 따라 현금을 지급했고 미혼/기혼 선수 가릴 것 없이 짭짤한 수입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당시의 절반으로 축소가 되었다.
[2]
남서울호텔에서 영동호텔로 숙소가 변경되었다. 김일권의 말에 의하면 침대 시트도 좋지 않아 선수들이 잠을 자는데 불편했다고 한다. 남서울호텔은 그 이후 리츠칼튼 호텔, 르메르디앙 호텔로 바뀌었고 2021년 2월 말에 폐업하였다.
[3]
김봉연(1982~1983), 김준환(1984), 김일권(1985) 순으로 해태 주장직을 맡았다.
[4]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난다고 김준환은 말했다.
[5]
당시 월급 2개월치의 금액에 해당했다.
[6]
이순철의 아마추어 시절 포지션은 3루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