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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4 01:38:24

해연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第六) 후제(侯第)
6위 곡주후(曲周侯) 역상 7위 노후(魯侯) 해연 8위 여음후(汝陰侯) 하후영
생몰년도 ? ~ ?
이름 해연(奚涓)
작위 노후(魯侯)

1. 소개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소개

중국 초한쟁패기 시대 활약한 인물임은 분명한데, 수수께끼 같은 인물.

2. 생애

고조공신후자연표의 순위가 7위나 될 정도의 인물임에 불구하고,[1] 사기 열전 등에 전혀 기록이 없다. 사기 표(表)에서는 일단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인으로서 패(沛)에서 고조를 좇아 기병하여 함양에 이르러 낭중이 되고, 한에 들어와 장군으로서 제후를 평정하고 사천팔백 호의 후(年)가 되다. 공이 무양후 번쾌에 비견되다. 유방의 대업을 위해 전사하였기에, 그의 어머니가 후(年)를 대신하다.

그리고는 이후 봉국에 대한 연표에서 모후(母侯) 자(疵) 원년 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즉, 이 인물의 어머니 즉, 여자가 제후에 봉해진 것이다.[2] 이후 그 '모후' 가 사망하자 후손이 없어 봉국이 끊어졌다고 한다.

4,800호 정도를 받고, 유방의 고향 부근인 패 땅에서부터 유방을 따른데다, 번쾌에 견줄 만한 공을 세우고 유방의 대업을 위해 목숨을 바쳤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데 관련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이다. 해연이 죽은 사람 본인이 아니라 어머니의 이름이면 기신의 어머니인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으나 기신의 항목에서도 볼수있듯 유방이 영포의 난을 진압한 후 기신의 가솔을 찾아 포상을 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으나 찾지 못했다는 기록을 보아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단, 여기서 유방의 대업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는, 기신(紀信)처럼 진짜로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라기보다는, 군중이나 혹은 군사상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3]

아무래도 후손도 없는데다,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봉국도 사라지는 과정에서 따로 열전을 만들 정도로 기록이 남지 않은 모양. 저 정도 공을 세울 인물이라면 꽤 활약을 했겠지만, 기록이 없어서 뭘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삼국지로 치면 진도(陳到) 같은 인물이라고 할까? 그나마 진도보다도 기록이 더 없는 편이다.

사실 워낙 고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명 외에 별다른 기록이 없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상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열후들은 전부 따로 열전이 있는데 해연만 없는 것이 문제다. 당장 사기에 실린 번역등관열전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고조공신후자연표에 실린 공신들 중 5, 6, 8, 9위이다. 딱 7위인 해연(의 아들?)만 빠져 있다.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점이라면 책사나 사인으로서 종군한 것은 아니라 장군이었다는 점 정도다.

3. 대중매체에서

초한쟁패기 시절을 다룬 만화 레드 드래곤에서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초한쟁패기에서 이름이 언급되는 궁수인 누번과 합쳤다.

조경래의 소설 전국에서는 유방과 동향의 검객인 것으로 나온다. 효심이 지극해서 어머니의 말을 항상 따른다고 한다. 학문은 약하다고.


[1] 하후영, 장량, 관영보다 높다. [2] 정말 드문 일이지만 여씨들이 날뛰던 전한 초기에는 정말 가끔 그런 케이스가 보인다. [3] 한서에서는 死軍事라고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