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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8-24 15:04:18

한익수



1. 개요2. 생애3. 장의위원회 구성4. 참고문헌

1. 개요

빨치산 출신의 북한의 군인, 정치가.

2. 생애

1912년 10월 15일, 중국 길림성 연길현 덕신사 통암총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하고 1935년 9월 10일,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빨치산 부대에 가담하여 김일성 경위대로 김일성을 호위하였다고 한다. 보천보 전투에도 참가했다. 당연히 김일성을 따라 소련으로 퇴각했고 88여단에서 특무상사로 소대장 고문을 맡았다.

해방 후 귀국, 중앙경위련대 련대장이 되어 계속 김일성을 호위하였으며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종전 후 1955년 11월, 강건군관학교 교장에 임명되었으며 조선인민군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1957년 10월 2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박세창의 뒤를 이어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임명되었다. 1959년 1월 26일, 장익환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체코슬로바키아 대사에서 물러났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중장으로 진급, 민족보위성 부상에 임명되었다. 1962년,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임명되었다. 1962년 4월, 주중 북한대사로 부임하여 1964년 6월까지 재임하였고 박세창에게 이임 후 귀국, 1965년 7월, 인민군 상장으로 진급했다. 1966년 10월, 민족보위성 부상에 다시 임명되었다. 1969년 6월, 조선로동당 4기 19중전회에서 정치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으며 1969년 8월, 리주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고 중앙위원회 비서로 선출되었다. 1970년 11월, 헝가리 노동당 10차 당대회에 조선로동당 대표단장으로 파견되어 축하연설을 하였다.

1970년 6월, 총정치국장에 임명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주석단에 선출되었으며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다. 1973년 1월, 정준택 장의위원, 1974년 2월 장길부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러다가 1973년에 리용무에게 총정치국장 자리를 물려주고 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이동하였다. 1976년 4월, 비서에서 해임되었으며 정치위원회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당했다. 1976년 3월, 남일 장의위원, 1976년 5월, 홍원길 장의위원, 1976년 9월, 최용건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7년, 검열위원장 서철이 전 총정치국장 리용무의 숙청으로 후임 총정치국장에 임명되자 신임 검열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7년 12월, 6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자격심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78년 9월 5일 21시 30분에 66세를 일기로 병환으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동지는 해방후 장기간 인민군대의 책임적인 위치에서 사업하면서 우리 당의 군사로선을 관철하며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헌신분투하였다. (...) 동지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끝없이 충직하였으며 조국의 자주적 통이리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하여, 당과 인민군대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라고 높이 평가했으며 그의 략력도 발표하였다. 하지만 략력 발표와 함께 으레 구성되는 장의위원회는 구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부고는 9월 5일 사망 이후 무려 열흘이나 지난 9월 15일에 국장이 거행된 후에야 발표되었다.

이후 시신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반신상도 제작되었다.

3. 장의위원회 구성


※ 로동신문에 발표된 장의식 참가자들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명단이 아님.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