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Hans von Lehwald[1] / Johann von Lehwald프로이센 왕국의 장성.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한스는 1685년 6월 24일 프로이센의 레깅텐에서 태어났다. 그가 속한 레발트 가문은 소르브인이 사는 라우지츠 출신의 귀족 가문이었고, 어머니 마리 에스터는 트렌크 가문 출신이다. 1699년, 한스는 바이쎄 근위병대에 입대했고 1702년 9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여해 펜로 포위전에 참가했으며, 1704년 8월 13일 블렌하임 전투에 참가했다. 9월 16일, 한스는 소위로 승진했고 9월 29일부터 10월 6일까지 아그노 포위전에 참가했다. 1722년 7월 30일, 한스는 헤센카셀 보병대 중령으로 임명되었고 1729년 7월 30일엔 대령으로 승진했다. 또한 1738년 8월 17일엔 클라이스트 보병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년 7월 30일 소장으로 진급한 한스는 1742년 코투지츠 전투에 참가해 좋은 활약을 선보인 공로로 무공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744년 2월 4일엔 검은 독수리 훈장을 받았다. 1744년 5월 14일 중장으로 진급한 그는 1745년 2월 14일 하벨슈베르트 인근에서 발라스 장군의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했다. 또한 그는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와 케셀스도르프 전투에 참가해 프로이센군의 승리에 기여했고, 1747년 5월 29일 보병대 대장으로 진급했으며 1748년 7월 18일 동프로이센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1751년 12월 22일 야전군 원수로 승격한 그는 프리드리히 대왕으로부터 푸른 띠에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왕의 초상화를 수여받았다.2.3. 7년 전쟁
1756년 6월 25일, 한스는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리보니아에서 7만에 달하는 러시아군이 집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즉시 한스를 동프로이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이들에 맞서게 했다. 7월 8일, 한스는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러시아군이 후퇴했음을 알렸고, 대왕은 한스에게 휘하 병력을 그들의 숙영지로 돌려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1756-57년 겨울 동안, 대왕은 러시아의 잠재적인 침공을 경계하기 위해 한스에게 대규모 분견대를 맡겨 동프로이센과 발트 일대를 경비하게 했다. 당시 그에게 맡겨진 병력은 3만 여 명이었다.1757년 6월, 한스는 군대를 집결시켜 인스터부르크로 진격했고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메멜 쪽으로 더 나아갔다. 7월 14일, 한스는 인스터부르크에 있는 숙영지를 철거한 뒤 쾨니히스베르크를 지키기 위해 베를라우 근처에 숙영지를 건설했다. 8월 29일, 한스는 약 2만 5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러시아군을 공격하기 위해 진격했다. 이후 그는 8월 30일 프레겔 강을 건너고 있던 러시아군 5만 4천 명을 습격했다. 이렇게 해서 발발한 그로스예거스도르프 전투에서, 한스는 적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으나 곧 러시아군이 역습을 가해오자 자신의 진영으로 후퇴해야 했다. 며칠 후, 한스는 숙영지를 철거하고 페트르스발트로 이동했다.
9월 13일, 러시아군이 동프로이센에서 철수하자, 한스는 이들을 추격했다가 러시아군이 폴란드로 이동하자 중단했다. 이후 한스는 10월 6일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령을 받들어 포메른에 있는 스웨덴군을 몰아내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와 팔라우에 수비대를 배치시키고 메멜에 기병대를 배치한 뒤 약 25,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포메른으로 진군했다. 11월 22일, 슈테틴에 도착한 한스는 11월 28일부터 12월 3일 사이에 페네 강을 따라 전선을 형성하고 포메른 영토 대부분을 되찾았다. 1758년 1월 2일, 한스는 페네 강을 건너 스웨덴군을 공격했다. 1월 4일 앙클람 탈환에 성공한 그는 스웨덴군을 슈트랄준트와 뤼겐 섬에 가둬놓았다. 그러나 이후 혹독한 겨울이 닥쳐오면서 더이상 공세를 펼치지 못했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가 스웨덴군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것에 실망해 그해 3월 초 크리스토프 추 도나쉴로디엔 장군으로 대체했다.
1759년 베를린 주지사가 된 한스는 1760년 10월 3일 베를린을 점령하려는 러시아 경기병대의 첫 시도를 무찔렀다. 그러나 10월 9일 오스트리아 경기병대가 러시아 경기병대와 연합한 후 공격해오자, 그는 어쩔 수 없이 항복했고, 오스트리아-러시아 경기병대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소식을 듣고 달려올 때까지 며칠 동안 베를린을 약탈했다. 이후 1762년 러시아가 동프로이센을 양도하자, 한스는 동프로이센 총독이 되었고 1768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사망했다. 향년 83세.
[1]
자료에 따라 성씨를 Lehwaldt 또는 Lewaldt라고 쓴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