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이라고도 부르는 새는 두루미로
조선의 승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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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學祖(1431 ~ 1514)
조선의 인물.
2. 생애
신미, 학열과 함께 세조가 삼화상(三和尙)이라 일컬어 매우 존경했다.1459년에는 신미, 학열 등과 함께 월인석보 간행에 참여하는 등 한글 보급에 기여했으며, 1467년에 세조의 명으로 유점사를 고쳐 새로 세우기 시작했고, 1468년에 세조의 명으로 학열과 함께 금강산으로 오는 명나라의 사신을 접대할 준비를 했다.
1488년에는 대장경을 새로 고쳐 만들었고 절을 세우면서 이익을 늘려 대신들의 비판을 받았으며, 학열, 설준과 함께 욕망이 내키는 대로 간음하고 추문해 조정과 민간에 퍼졌다는 평가를 들었으며, 개천과 사당을 간통하고 둘이 중이 되자 간통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남산 기슭의 작은 암자에 살면서 구인문의 여동생이 미모가 있는 것을 알고 개천의 도움을 받아 간통하고 구씨를 여승으로 만들었다.
부봉사 김윤리가 학조의 매부라서 학조 덕분에 관직을 얻었다.
말년에는 애련사에서 입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