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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18 08:14:56

하인리히 빌헬름 폰 부트기나우



1. 개요2. 일생

1. 개요

헤센 대공국의 군인. 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일생

부트기나우는 1698년경 헤센에서 태어났다. 그는 1718년에 군대에 입대했고 1748년에 소장이 되었으며 1756년에 중장에 임명되었다. 1757년 봄, 부트키나우는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오거스터스의 군대에 합류한 헤센군을 지휘했다. 그의 첫 임무는 7월 26일 하스텐벡 전투였다. 이후 하스텐벡 전투에서 패배한 컴벌랜드 공작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로 교체된 후, 부트기나우는 제1선의 좌익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1758년 연합군이 라인강을 향해 출발했을 때, 부트기나우는 11,490명의 헤센군이 포함된 2번째 대열을 지휘했다. 그후 그는 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자스트로 장군에게 배속되었으며, 6월 23일 크레펠트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폰 슈페르켄 장군의 좌익 군단에 배속되었다. 1759년 4월 13일, 부트기나우는 베르겐 전투에서 홀슈타인-고토프 공작 프린츠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이끄는 우익 부대에 배속되었고, 이후 8천 명을 이끌고 부렌으로 파견되어 프랑스군을 격파한 뒤 본대로 귀환했다. 또한 8월 1일 민덴 전투에서 8개 군단 중 하나를 지휘해 프랑스군을 상대로 잘 싸워 연합군의 승리에 일조했다.

1760년 2월 1일 헤센 방백작 빌헬름 8세가 사망한 후, 헤센군은 상당히 증가하여 2만 3천 명에 달했다. 그러나 부트기나우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함께 있는 동안, 대부분의 헤센군은 베스트팔리아에서 슈페르켄 장군과 함께 있었고, 부트기나우는 한동안 어떤 임무도 맡지 못했다. 그러다가 1761년 7월 16일 빌링하우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페르디난트는 조지 3세에게 부트기나우가 '특출한 용맹'을 발휘해 승리에 기여했기에 그가 이끄는 4천 명의 헤센군에게 포상을 베풀었다고 보고했다.

부트기나우는 1762년 2월 28일 지휘권을 안할트 왕자에게 넘기고 직위에서 물러났다. 이에 대해 슈페르켄 장군은 조지 3세에게 "하노버와 헤센군 사이에서 좋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던 용기 있는 인물을 잃었다."라고 보고했다. 이후 부트기나우는 1763년 세인트 고어 근처에 있는 레힌펠스 성의 주지사로 임명되었고, 1772년엔 보병 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1776년 10월 10일 78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슈티프츠키르헤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