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0년~1719년 6월
1. 소개
영국의 해적. 450만 달러를 털어 포브스 선정 14위의 해적이 되었다. 웨일즈 출신. 1718년 7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딱 11개월간 영업(?)을 했음에도 리스트 상위권에 올랐다.2. 생애
본래는 1등 항해사로 노예무역을 하던 친구를 따라가서 노예선인 카도건(Cadogan)호의 항해사로 지내다가 1718년에 그 배가 해적선장 에드워드 잉글랜드(리스트 12위)에게 나포되면서 해적에 가담했다.그리고는 자기가 항해사로 타던 배의 선장이 되어 브라질 방면으로 출격하여 배를 처분하고 선원들을 이끌고 바베이도스로 갔다가 해적 혐의로 체포되어 3개월 동안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바하마로 가서 선원을 모집하는 우즈 로저스에게 지원하여 로저스의 부하들이 이끄는 배를 타자 마르티니크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선장이 되었으며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은 35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우 유능한 자들이 많았다고 하며 히스파니올라 북쪽에서 2척의 대형 프랑스 무역선을 나포하였다.
영국의 사략함대라 속여 세인트 니콜라스의 포르투갈 지사를 방문하여 환영을 받고 서아프리카의 베르데 곶으로 향하며 이어 아프리카의 마이우섬에서 많은 상선을 나포하여 약탈하고 그 중의 26문의 함포를 탑재한 세인트 제임스를 기함으로 정한다.
그 다음에는 감비아 강으로 이동하여 약탈품으로 치장하며 부하 2명과 함께 포르투갈 주지사를 방문해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환영자리 즉석에서 그를 포로로 잡아 몸값을 갈취했다.(!) 다음날에는 해적 선장 출신의 제독인 라 부쉬, 토마스 코클린과 함께 사금, 상아, 노예를 운송한 영국과 네덜란드의 대형 수송선 4척을 나포하였으며 또다시 그 다음날에 영국의 노예 무역선 3척을 나포하여 32문의 함포가 탑재가 가능한 함선을 기함으로 정하고 이름을 로버로 지었으며 그 때 붙잡은 노예 무역상인 바솔로뮤 로버츠를 자신의 부하로 합류시키고 프린시페 섬으로 향했다.
예전에 자신이 기함으로 사용하던 세인트 제임스호는 치명적인 손상을 당해 항해하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자,이를 파기하고 로버호에 전리품을 모두 싣고 목적지로 향하였지만 꽤나 영리했던 데이비스는 자기가 판 함정에 빠져서 죽고 말았다.
포르투갈령 프린시페(오늘날의 상투메 프린시페) 총독을 납치할 작정으로 계획을 짜 총독에게는 프랑스 무역상들을 사냥한다고 했지만 총독이 그걸 간파하고 역으로 이용하여 와인이나 한 잔 하러 요새로 오라는 초청장을 보냈다. 데이비스는 부하들을 데리고 요새로 가다가 매복해 있던 총독의 부하들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그가 죽자 그 후임 선장으로 선출된 것이 바로 검은 남작인 바솔로뮤 로버츠였다.
총평을 하자면, 하웰 데이비스는 당대의 여타 다른 해적들과는 다르게 지략가적인 면모가 강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 탓인지 하웰 데이비스는 '속임수의 대가'라고도 평가되는데, 이는 선장을 뽑는 회의때 동료들을 술취하게 만들어 선장직을 얻은 것부터 시작해, -앞서 위글에서 언급되었지만- 합벅적인 사략선 선장인 척을 해서 주지사를 납치 한다든가, 자신의 배 '카도건' 호보다 2배 더 큰 24문의 함포를 갖춘 프랑스 배를 단순 협박만으로 나포한다든가 등등 그의 기상천외한 업적들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참고로, 하웰 데이비스는 활동초기에는 전용 해적기가 없어서 때가 낀 더러운 방수천을 대신 내걸었다고 한다.(...)
후일담으로, 하웰 데이비스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바솔로뮤 로버츠는 선장이 된 직후 해적들을 이끌어 프린시페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총독은 하웰이 죽은 방식 그대로 처형했다고 한다. (다섯 방의 총을 쏜 후, 숨을 거둘 때까지 난도질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