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르템베르크 가문 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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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르템베르크 가문 | ||
초대 | 제2대 | 제3대 | |
빌헬름 | 알브레히트 | 필리프 알브레히트 | |
제4대 | 제5대 | ||
카를 | 빌헬름 | ||
뷔르템베르크 공작 · 뷔르템베르크 선제후 · 뷔르템베르크 국왕 | }}}}}}}}}}}} |
<colbgcolor=#C4E6E5><colcolor=#000> 뷔르템베르크 공작 필리프 알브레히트 Philipp Albrecht, Herzog von Württembe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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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게오르크 필리프 알브레히트 카를 마리아 요제프 루트비히 후베르투스 슈타니슬라우스 레오폴트 폰 뷔르템베르크 (Georg Philipp Albrecht Carl Maria Joseph Ludwig Hubertus Stanislaus Leopold von Württemberg) |
출생 |
1893년
11월 14일 독일 제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슈투트가르트 |
사망 |
1975년
4월 1일 (향년 81세)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라벤스부르크 |
배우자 |
오스트리아의 헬레네 여대공[1] (1923년 결혼 / 1924년 사망) |
오스트리아의 로자 여대공[2] (1928년 결혼) | |
자녀 | 마리아 크리스티나, 헬레네, 루트비히 알브레히트, 엘리자베트, 마리 테레제[3], 카를, 마리아 안토니아 |
아버지 | 뷔르템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 |
어머니 |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조피 여대공[4] |
형제 | 알브레히트 오이겐, 카를 알렉산더,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테레자, 마르가리타 마리아 |
종교 | 가톨릭 ( 세례명: 필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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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뷔르템베르크 공작 알브레히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조피 여대공의 장남이자 뷔르템베르크 가문의 수장이다.2. 생애
1893년에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수도인 슈투트가르트에서 당시 차차기 왕위 계승권자였던 알브레히트와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조피 여대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이후 튀빙겐 대학교에 진학하여 법학을 전공하다 1912년 장교로 임관되어 제 119척탄연대 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차대전기에는 제 26용기병연대 연대장으로 임명되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소령 계급으로 복무를 마쳤으며, 튀빙겐 대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지속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반나치 성향을 보였다.[5] 그러다 1934년에 나치 깃발을 게양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슈투트가르트에서 쫒겨나 알츠하우젠으로 이사하였다. 1939년에는 부친의 사망으로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수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후 1975년까지 살다 라벤스부르크에서 사망하였다. 장남 루트비히 알브레히트는 귀천상혼으로 계승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문 수장 자리는 차남 카를이 이었다.
가족사가 조금 특이한데, 두번째 아내인 로자가 사별한 첫번째 아내인 헬레네의 여동생이었다.
[1]
오스트리아의 페터 페르디난트 대공의 장녀다.
[2]
오스트리아의 페터 페르디난트 대공의 차녀이며, 첫번째 아내인 헬레네 여대공의 여동생이다.
[3]
오를레앙 왕가의 현 수장인 장의 어머니이다.
[4]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여동생이고,
카를 1세의 고모다.
[5]
천주교 수도사였던 동생 카를 알렉산더도 큰형처럼 반나치주의자였는데, 이 사람은 반나치 활동을 하다 추방당한 후 스위스,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유대인과 전쟁 난민, 포로들을 돕는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