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브라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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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23대 |
39대 |
잉글랜드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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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필 브라운 Phil Br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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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필립 브라운 Phillip Brow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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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9년 5월 30일 ([age(1959-05-30)]세) | |
잉글랜드
더럼주 사우스실즈 (현 잉글랜드 타인 위어주 사우스실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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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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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축구선수(
라이트백 / 은퇴) 축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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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하틀리풀 유나이티드 FC (1978~1985) FC 핼리팩스 타운 (1985~1988) 볼턴 원더러스 FC (1988~1994) 블랙풀 FC (1994~1996) |
감독 |
볼턴 원더러스 FC (1999 / 감독 대행) 더비 카운티 FC (2005~2006) 헐 시티 AFC (2006~2010)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2011)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 (2013~2018) 스윈던 타운 FC (2018) 하이데라바드 FC (2018~2020)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 (2021) 배로 AFC (2022) 키더민스터 해리어스 FC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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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및 축구감독이다.2. 일생
2.1. 선수 시절
2.2. 지도자 시절
2.2.1. 초기 경력
1996년 블랙풀 FC에서 선수 커리어를 마친 뒤 샘 앨러다이스 감독의 사단에서 코치직을 수행했다. 이후 볼턴 원더러스 FC 코치가 되었고, 1999년에는 콜린 토드 감독이 떠난 상황에서 샘 앨러다이스가 임명되기 전까지 감독대행을 맡기도 했다. 대행 시절 5경기 중 4승을 거뒀다. 앨러다이스가 볼턴 감독이 된 뒤 코치로서 그를 보좌해 볼턴이 2001년 3년만에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성공한 이후 중상위권으로 정착하는 호성적에 기여했다.2.2.2. 더비 카운티
감독으로서의 첫 커리어는 2부리그의 더비 카운티였다. 2005년 6월 조지 벌리의 후임으로 왔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부임 후 겨우 7개월 만인 2006년 1월에 FA컵 3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리그에서는 코번트리 시티에 6:1 대패를 당하는 등 19위로 강등 위기에 몰리자 사퇴하였다.2.2.3. 헐 시티
2006년 10월 27일 필 파킨슨이 감독으로 있던 헐 시티의 코치로 부임했다. 파킨슨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이후 12월 4일 콜린 머피와 함께 공동으로 감독대행직을 수행했다. 당시 헐 시티는 2부리그 22위로 3부리그 강등 위기에 있었다. 감독대행직을 수행하며 6경기 3승1무2패로 호성적을 올리자 2007년 1월 4일 정식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06-07 시즌 헐 시티는 21위로 간신히 생존에 성공했다.[1]2007-08 시즌 전시즌 겨우 3부리그 강등을 모면한 팀이 맞나 싶을 정도의 반전을 일으키며 챔피언십에서 3위로 마감했다. 승격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왓포드를 꺾은 뒤 웸블리에서 열린 결승에서 브리스톨 시티를 상대로 딘 윈다스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헐 시티는 구단 104년 역사상 처음으로 1부리그, 프리미어리그 승격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승격과 함께 브라운은 3년 재계약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헐 시티의 구단 역사상 첫 1부리그 시즌이었던 2008-09 시즌, 브라운의 헐 시티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약체 승격팀이었다. 그런데 시즌 초반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개막전에서 헐 시티를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두고 2라운드 블랙번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거뒀으나 3라운드 위건에 홈에서 5:0 대패를 당해 별볼일 없는 시즌을 보내는듯 했으나 4라운드 뉴캐슬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뒀고 5라운드 에버튼과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더니 6라운드 아스날 원정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6경기 3승2무1패를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는 아스날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허용한 겨우 2번째 패배였다. 그리고 여름이적시장에서 분노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2무 4패 무승으로 최하위에 처져있던 토트넘 홋스퍼 원정에서도 1:0 승리를 거뒀으며 8R와 9R에서는 웨스트햄과 승격동기 WBA까지 차례로 격파하며 6승2무1패로 승점 20점, 2위 첼시와 승점이 동률이었다.[2] 이러한 돌풍에 브라운 감독은 프리미어리그 9월의 감독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러나 이후 행보는 매우 쉽지 않았다. 10R 첼시와의 홈경기에서 3:0 완패를 당하며 상승세가 꺾였고, 11R 맨유 원정에서 끈질긴 모습을 보였으나 끝내 4:3 패배를 당했고, 12R 볼튼과의 홈경기에서도 1:0 패배를 당하면서 3연패로 주춤하게 됐다. 이후 다시 5경기에서 리버풀 원정 2:2 무승부 등 1승4무로 무패를 기록하며 승점을 다시 쌓는 모습을 보였다. 17R 기준으로 7승6무4패에 순위는 6위였다. 그러나 곧바로 선덜랜드에 홈에서 4:1 패배, 맨시티 원정에서 5:1 패배를 기록하며 한계를 드러냈고, 2009년 1월까지 내리 6연패를 당하면서 유럽대항전 순위권과는 거리가 멀어진 채 강등권과 가까워졌다. 24R 최하위 WBA와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해 연패를 끊었고 25R 첼시 원정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28R 풀럼 원정에서 1:0 승리로 리그에서 12경기 만에 승리하며 풀럼에 더블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고 급기야 36R 스토크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2:1로 지는 바람에 18위로 추락하며 강등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37R 볼튼 원정에서 승점 1점을 따내는 사이 뉴캐슬이 풀럼에 패배하며 1경기를 남기고 17위로 올라섰고, 최종전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1:0으로 졌음에도 불구하고 뉴캐슬이 빌라 원정에서 데이미언 더프의 자책골로 1:0으로 패해 승점 1점차로 극적인 잔류에 성공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의 두 번째 시즌인 2009-10 시즌 개막전 첼시 원정에서 경기 종료 직전 디디에 드록바에게 실점하며 2:1로 졌고, 2라운드 토트넘과의 홈 첫 경기에서는 저메인 데포에게 해트트릭을 헌납하며 5:1 대패를 당했다. 3라운드 볼튼과의 홈경기에서 1:0 승리로 첫 승을 기록했지만 5라운드 선덜랜드 원정 4:1 대패, 7라운드 리버풀전 6:1 대패로 7경기 19실점의 허약한 수비와 함께 동네북 신세가 되며 일찌감치 강등권으로 내려갔다. 경질 위기에 몰렸으나 지미 불라드가 장기 부상에서 돌아온 11월에 스토크에 극적인 2:1 역전승, 에버튼전 3:2 승, 맨시티 원정 무승부 등으로 잠시 강등권에서 빠져나왔다. 12월 들어 다시 한번 연패와 무승의 수렁에 빠지면서 강등권에 재진입했다. 2010년 들어 첫 경기 토트넘 원정 0:0 무승부, 그리고 첼시와의 홈경기 1:1 무승부, 맨시티와의 홈경기 2:1 승리를 거두며 반등하는듯 했으나 상승세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금 연패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15경기 1승의 극심한 침체 속에서 아스날전 2:1 패배를 끝으로 2010년 3월 15일 경질되고 말았다.
2008-09 시즌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전반에만 무려 4골을 먹히자 하프타임에 선수들에게 그대로 경기장 위에 남아있으라는 지시를 내렸고, 라커룸이 아닌 관중들이 있는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의 아쉬운 플레이들을 지적했다. 그런데 1년 뒤 맨체스터 시티 원정에서 이번에는 지미 불러드가 동점골을 넣어 1:1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이때 헐 시티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앉아있고 불러드는 1년 전 브라운의 제스처를 따라하는 세레머니로 화제를 빚은 바 있다.
2.2.4. 프레스턴 노스 엔드
2.2.5.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1기
2.2.6. 스윈던 타운
2.2.7. 하이데라바드 FC
2.2.8.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2기
2.2.9. 배로 AFC
[1]
헐 시티 대신 3부리그로 강등된 팀은
리즈 유나이티드,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루턴 타운이었다.
[2]
선두는 승점 23점의 리버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