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1-27 04:15:32

피에트 데 비세르

네덜란드의 前 스카우트
이름 피에르 데 비세르
Piet de Visser
출생 1934년 9월 23일(87세)
네덜란드
국적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직업 축구선수 (은퇴)
축구 감독(은퇴)
스카우트
소속 <colbgcolor=#ffffff,#191919> 감독
스카우트 첼시 FC 2004~2014
별명 마스터 스카우트

1. 개요2. 생애
2.1. 스카우트 이전2.2. PSV 에인트호벤 스카우트2.3. 첼시 FC 스카우트
3. 기타

[clearfix]

1. 개요

네덜란드의 축구 스카우트.

호나우두, 케빈 데브라이너등 수많은 월드클래스 선수를 발굴한 스카우트로 유명하다.

2. 생애

2.1. 스카우트 이전

1934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젊을때는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무명이었던 그는 20대 중반에 선수 생활을 접고 1957년 로테르담에서 유소년 코치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유소년 발굴 일을 시작한다.

1964년 더 흐라프스합 수석코치로 부임해 당시 어린 수비수였던 거스 히딩크를 조련해 1973년 팀을 1부리그에 올려놓는 성과를 보인다.

그후 1부리그의 네이메겐의 감독으로 부임해 1975년 리그 우승을 거두는 성과를 냈지만 이후 심장질환으로 5번이나 수술을 받게되며 1992년 감독 일선에서 물러난다.

2.2. PSV 에인트호벤 스카우트

감독에서 물라난후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 그는 한 축구대회에서 15살에 한 소년을 발견한다. 그가 바로 호나우두로 이를 계기로 그는 스카우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런 선수들을 찾아다녀야 겠다고 다짐한 뒤 PSV 아인트호벤에 스카우트가 된다.

그후 브라질로 날아가 5번이나 호나우두의 경기를 직접보고 확신에 찬 그는 1994년 아인트호벤 감독에게 그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호마리우로 인하여 브라질 선수에게 좋은 감정이 있던 구단측은 요청을 승낙하며 100억에 이적료로 호나우두를 데려온다.

그리고 바로 덴보쉬라는 클럽에서 17살에 선수를 추천했지만 최전방에 호나우두가 버티고 있어 그 당시 무산되었다.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로 떠난뒤 53억에 영입했는데 이 선수가 바로 뤼트 판니스텔로이.

당시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성공한 남미 선수들이 적었기 때문에 브라질 선수를 데려다 연달아 대박을 친 그는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9년 파르판, 알레스, 심지어 그당시 프로 대뷔도 안한 다비드 루이스등 남미 선수들을 눈여겨 보았고 이중에는 아드리아누도 있었다. 신임 감독 에릭 게리츠에게 적극 어필했지만 에릭 게리츠는 남미 선수들 보다 자국 유망주를 선호해 모두 무산된다.

2003년 로만이 첼시 FC를 인수하고 데비세르에게 접촉한다. 로만과에 만남에서 데비세르는 첼시는 아직 강팀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고 로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데비세르 당신이 옳습니다.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고 로만은 돈은 문제 없으니 선수만 추천해달라고 이어서 말한다. 이렇게 데비세르는 아인트호벤을 떠나 첼시로 둥지를 옮긴다.

2.3. 첼시 FC 스카우트

첼시로 온 데비세르는 가장 먼저 골키퍼를 요청했고 페트르 체흐를 영입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가 말한 선수는 마이클 에시엔이었다. 경쟁이 치열해 많은 비용이 예상되었지만 로만은 데비세르를 믿고 바로 에시엔 영입에 착수한다.[1]

2003년 17세 이하 월드컵을 보기위해 핀란드로 간 그는 준우승팀 스페인에 한 선수를 추천하는데 첼시는 묵묵부답이었고 아스날의 벵거 감독이 그를 먼저 영입한다. 바로 그가 세스크 파브레가스였고 2년뒤 첼시가 아스날에게 고전하자 로만은 그를 영입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이때 빼앗긴 선수중에는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도 있었다.

2008년 무리뉴가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첼시가 흔들리자 애제자 히딩크와 연결고리 역할을 해 히딩크가 임시감독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한다.[2]

2011년 프랑스 리그에서 건너온 에덴 아자르가 미친 활약을 하자 프랑스로 건너가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역시 관찰후 추천해 두 명 모두 영입 하게 한다.

2000년대 후반 벨기에 유스정책이 바뀌며 유망한 선수들이 나오기 시작함을 안 데비세르는 벨기에로 건너갔고 케빈 더브라위너를 발견해 추천한다. 당시 18살에 선수에게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서 영입을 주저했지만 데비세르가 훗날 그의 가치가 10배이상 뛸거라고 설득해 로만은 그를 데려온다. 그후 로멜루 루카쿠, 티보 쿠르트와까지 벨기에 유망주를 싹쓸이 한다.

그러나 데브라이너는 무리뉴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해 결국 떠났고 데비세르는 데브라이너는 꼭 지켜야 한다며 땅을 치며 분통을 터트린다. 그후 스위스 리그의 한 이집트 선수를 영입한다.

벨기에 선수들이 모두 임대, 완전이적으로 떠나자 큰 허탈감을 느낀 데비세르는 2014년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다. 그가 첼시를 떠나며 한 마지막 부탁을 루카스 피아존을 잘키워 달라는 것.

3. 기타


[1] 다만 당시 감독인 주제 무리뉴는 마이카 리차드, 다비드 비야, 다니 아우베스를 원했다고 한다. [2] 보직은 스카우트였지만, 실제로 데비세르는 거의 구단 경영 전반에 관여하면서 영향력을 상당히 크게 행사했었다고 한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경질 이슈 당시의 뒷이야기가 있난데, 당시 데비세르는 코밤에서 스콜라리의 훈련 방식을 보자마자 저자는 경질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냈고, 로만은 데비세르의 이 말을 받아들여서 결국 스콜라리를 경질하게 되었다. 사실상 구단 경영의 전반을 비세르가 싹 쥐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고, 구단 시스템조차도 데비세르 한 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