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Πτολεμαῖος Ἀπίων(그리스어)
키레나이카의 국왕(재위 기간: 기원전 116년~기원전 96년).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서자로 태어났다. 친모는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첩인 키레나이카 출신의 에이레네였다. 형제자매로는 이복형제로 프톨레마이오스 멤피테스[1], 프톨레마이오스 9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가, 이복자매로 트뤼파이나, 클레오파트라 4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가 있었다.[2]
기원전 116년, 부친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죽자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유언에 따라 서자 프톨레마이오스 아피온이 키레나이카 왕위를 물려받아 국왕이 되었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후계자도 없어서 그가 기원전 96년에 죽자 키레나이카는 로마 공화국의 속령이 되었다. 이후 기원전 34년 가을에 선언된 알렉산드리아 영토분할령으로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가 키레나이카 여왕이 되기 전까지 키라나이카의 왕은 세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