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랫 & 휘트니 의 항공기용 제트엔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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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45454> 터보제트 엔진 | J52 | J57(JT3C) | J58 | J75(JT4A) |
터보팬 엔진 | JT3D | JT8D | JT9D | PW1000G | PW1120 | PW2000 | PW4000 | PW6000 | |
군용 | TF30 | F100 | F119 | F135 | |
인터내셔널 에어로 엔진 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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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얼라이언스 제조 | GP7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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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랫 & 휘트니 TF30 / JTF10A |
1. 개요
Pratt & Whitney TF30
프랫&휘트니에서 개발한 군용 저바이패스 터보팬 제트엔진이다. 1958년 P&W는 더글라스에서 기획하던 Model 2067[1]이라는 DC-8의 단거리 파생형 여객기에 J52 터보제트 엔진의 민수형 모델을 제안했으나 한심한 연비 때문에 바로 퇴짜를 맞는다. 이에 당시 최신기술로 제작된 JT8D 터보팬 엔진의 덩치를 축소시킨 JT10A라는 제품을 밀어넣었으나 당시 대부분의 미국 항공사들은 단거리용으로 B727에 관심이 쏠려있던 터라 Model 2067 계획도 자연스럽게 엎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JT10A가 당시 열심히 개발중인 F6D Missileer[2][3]라는 아음속 함대방공 전투기 개발계획에 선택되어 TF30이라는 군용 제식명칭까지 부여받았으나 이마저도 1961년 취소되는 바람에 또 다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F6D의 후속이라 할 수 있는 F-111의 엔진으로 TF30이 채택된 후 화려하게 부활했고 추후 F-14에도 적용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애프터버너를 제거한 모델은 A-7에도 사용되었으나 덜 떨어진 성능으로 인해 A-7C 이후의 모델부터는 미련없이 퇴출당했고 그 팔자는 F-14 역시 비슷하게 흘러갔다. TF30은 1964년부터 1986년까지 생산되
2. 적용기종
2.1. F-111
명칭 |
길이 (m) |
지름 (m) |
중량 (kg) |
최대추력 (lbf) |
압축기-터빈 (LPC-HPC-HPT-LPT) |
압축비 | 바이패스비 | 적용 | |
Dry | AB | ||||||||
TF30-P-1/3 | 6.14 | 1.24 | 1,850~1,890 | 10,700 | 18,500 | 6-7-1-3 | 16.5~17.1 | 1.1 | F-111A/C |
TF30-P-7 | 12,500 | 20,300 | FB-111A | ||||||
TF30-P-9 | 12,000 | 18,500 |
F-111D/E EF-111A |
||||||
TF30-P-12 | 12,300 | 20,200 | F-111B | ||||||
TF30-P-100 | 15,300 | 25,100 | F-111F | ||||||
TF30-P-109 | 12,000 | 20,800 | F-111C |
호주 공군은 캔버라 폭격기의 후속으로서 1963년 F-111A 24대의 도입계약을 맺고 1968년에 초도분 1대를 인도받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엔진뿐만 아니라 별 거지같은 결함이 잔뜩 뭉쳐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 기종전환 훈련을 받던 조종사가 가변익 기어박스의 구조 결함으로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하자 이를 완전히 해결하기 전에는 잔여 물량을 수령하지 않겠다고 드러눕게 된다. 결국 F-111의 이런저런 문제 해결까지 인도지연에 대한 위약금 명목으로 F-4E 24대를 임대해서
2.2. F-14
명칭 |
길이 (m) |
지름 (m) |
중량 (kg) |
최대추력 (lbf) |
압축기-터빈 (LPC-HPC-HPT-LPT) |
압축비 | 바이패스비 | 적용 | |
Dry | AB | ||||||||
TF30-P-412/412A | 5.99 | 1.29 | 1,920~1,930 | 12,300 | 20,900 | 6-7-1-3 | 19.6 | 0.9 | F-14A |
TF30-P-414/414A |
F-14의 최초 개발에서는 마땅하게 써먹을 만한 엔진이 없었던 관계로 일단 TF30을 장착시켜 임시로 소수만 양산한 후 F401[7]이라는 신형 엔진으로 교체 및 대량생산에 들어갈 계획을 지니고 있었다. 이 신형 엔진이 장착된 기체를 F-14B[8]로 명칭하긴 했는데 F401의 기술적 안정화가 아직 덜 된데다가 조달비용에 발목이 잡혀 물량을 서서히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밀어보려 했으나 이도저도 안 될 공산이 커지자 결국에는 F-14B 계획을 모조리 백지화시키기에 이른다. 여기서 이란 공군에 수출하기로 예정된 물량들도 덩달아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고 미 해군에 납품해야할 기체들 역시 울며 겨자먹기로 TF30을 갖다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최초 F-14에 탑재된 TF30-P-412 역시 F-111에 적용된 물건들처럼 실속을 유발하는 고질병과 팬 블레이드가 파손되어 동체에 구멍을 낼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개선[9]한 제품이 납품되기는 했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F-14가 원래 무겁기는 하지만 추력 자체가 모자라서 수직상승 기동은 커녕 AIM-54 6발을 탑재한 상태에서는 항공모함에서의 이륙이 아예 불가능했고 기관포를 발사했을시 발생하는 가스[10]가 공기흡입구로 유입되면 엔진 시동이 꺼질 수도 있는 말도 안 되는 문제점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미 해군은 결국 이 꼴을 더 이상 못봐주겠는지 1981년 B-1 폭격기에 탑재된 F101 엔진의 적용을 구상하기도 했으나 이것 역시 테스트만 좀 해보다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취소되고 만다.(...) 그러다가 1984년 무렵 미 공군이 F-15와 F-16에 GE와 P&W의 엔진을 적절하게 뿜빠이 쳐서 배치하는 것을 보고
어쨌든 F-14B/D에 이르러서 추력이 30% 향상되고 덤으로 연비도 늘어나서 항속거리와 행동반경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등의 엄청난 성능향상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성능 개량이 진행되던 과도기에 카라 헐트그린이라는 여성 F-14A 조종사가 CVN-72 USS 에이브러햄 링컨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조종불능으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TF30의 신뢰성에 기인한 것으로 드러나 당시 시끌시끌한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2.3. A-7
명칭 |
길이 (m) |
지름 (m) |
중량 (kg) |
최대추력 (lbf) |
압축기-터빈 (LPC-HPC-HPT-LPT) |
압축비 | 바이패스비 | 적용 |
TF30-P-6 | 3.25 | 1.07 | 1,140~1,230 | 11,300 | 6-7-1-3 | 15.9~17.1 | 0.9 | A-7A |
TF30-P-8 | 12,200 | A-7B/C | ||||||
TF30-P-408 | 13,500 | A-7P |
A-7에는 애프터버너를 제거한 TF30이 탑재됐다. 이것도 최초에는 J52 터보제트 엔진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A-7의 개발 취지가 A-4 스카이호크의 모자란 탑재량과 항속거리를 보완하기 위함이었기에 A-4와 같은 엔진을 사용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개발자들도 바보들은 아니어서 TF30에 결함이 있다는 점은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당시 베트남전에 미국 전체의 역량을 쏟아넣고 있었던 상황이라 1965년 9월 첫비행을 마치자 마자 미친듯한 속도로 성능평가와 테스트[11]를 거쳐 1967년 12월에 남중국해의 양키스테이션에 배치됐다. 이것 또한 막상 운용해보니 항공모함 갑판 캐터펄트의 수증기가 가뜩이나 밑바닥에 위치한 공기흡입구를 통해 실속이 발생한다는 조사가 나왔으나 어쩔 수 없이 그냥 투입시켰는데, 그래도 공격기 자체로서의 역량은 너무나 출중했고 미드웨이급 정도의 항공모함에 운용해도 될만큼 크기도 적당해서 서서히 A-4를 밀어내고 항모전투단 타격전력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다.
전자장비 등이 대폭 개량된 A-7C에 이르러서는 롤스로이스 Spey 엔진을 라이센스 생산한 TF41을 적용시키려 했으나 이것 역시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TF30을 또 집어넣고 말았고, TF41은 공군형인 A-7D부터 탑재되기 시작해 이후 해군형으로 개발된 E형에도 탑재되었다. A-7D와 A-7E가 개발된 후 기존의 TF30 탑재물량은 퇴역시키거나 개조해서 훈련기로 사용했는데, AMARC에 들어간 일부는 도로 끄집어내서 약간 개량해다가 포르투갈 공군에 땡처리로 처분하기도 했다.[12]
3. 관련 링크
(영문 위키백과) Pratt & Whitney TF30
[1]
"Mini
DC-8"이라는 별명이 붙은 4발 여객기인데 최대좌석수가 1965년에 첫 비행을 한
DC-9보다도 모자라는 96개에 불과했다.
[2]
조종석은 마치
아폴로 우주선의 사령선처럼 조종사, 부조종사, 무장관제사 3명이 횡으로 나란히 앉는 형태의 디자인인데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보통 해괴망측한 물건이 아니었다. 어쨌든 저속으로 장시간 항모전투단 주변을 뱅뱅 돌다가 적이 나타나면 AAM-N-10 Eagle이라는 사정거리 200 km 짜리 미사일로 적을 요격한다는 컨셉을 지녔으나
E-2와 같은
조기경보기도 없었던 시대에 이 수준의 능력을 지니려면 당연히 엄청난 양의 전자장비를 통합해야 했고 이는 곧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이어짐을 의미했다. 게다가
초음속은 고사하고 기체의 운동성 자체도 형편없어서 적기의 요격에 실패하면 3명의 승무원들은 무조건 탈출할 생각이나 해야 할 모양새였다(…)
[3]
그러나 여기에 장비했던 화력통제장치는 훗날
F-14의 AN/AWG-9로 발전했고 AAM-N-10 미사일 역시
AIM-54 개발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 미사일은 자체중량이 피닉스 보다도 훨씬 더 무거운 무려 600 kg에 달하는 물건이라 당시
미 해군 항모전투단에 도입되던
F-4B에 탑재하는 것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다.
[4]
추후
F-111D에서 인테이크의 2번째 개량형이 나온 후에야 그나마 좀 굴릴만하게 된다.
[5]
수평미익의 오작동과 기관포의 설치불량으로 추락
[6]
그런데 호주 공군의 조종사들은 팬텀의 성능에 상당히 만족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골치아픈
F-111 다 취소하고 그냥 팬텀으로 말뚝을 박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 광활한
오세아니아 대륙을 모조리 커버해야 하는 입장에서 F-111의 사기적인
항속거리가 너무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기에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이 때 호주 공군이 운용했던
F-4E 기체들은 미국으로 반납된 후 대부분 1976~1981년 사이에 F-4G로 개조됐고 훗날
걸프전에 참전해서 이라크의 방공망을 신나게 뚜드려 패는 전과를 올린다.
[7]
이것도
P&W의 제품으로서 이 엔진의
미 공군 명칭은
F-15와
F-16에 쓰인 베스트셀러
F100이다. 결국 F100이라는 공군형은 살아남았지만 해군형 F401은 어떤 항공기에도 적용되지 못하고 사장된 셈인데
F-14A는 TF30으로 20년 가량을 꾸역꾸역 버티다가
영화도 한번 찍고 결국 F100도 아닌 전혀 엉뚱한
GE의
F110으로 교체되어 마침내 앓던 이를 빼고야 만다. 그러나 일본에 주둔했던 VF-154와 같은 일부 전투비행대는 이 위험천만한 F-14A를 무려 2003년까지 운용하다
F/A-18F로 교체하기도 했다.
[8]
단지 명칭만
F-14B일 뿐이고 1987년에 시행된
F110 엔진 장착형과는 전혀 관계없는 물건이다. F110이 적용된 물량은 최초 F-14A+로 부르다가 1991년에 F-14B로 명칭이 변경됐다.
[9]
오버홀 주기가 약 1,100 시간에서 2,400 시간으로 늘어났다.
[10]
F-14A 초기형은 기수 좌측에
모기장처럼 생긴 단순한 구조의 가스 배출구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곧 전면을 향해 강제로 배출되는 삼각형 모양으로 수정되기에 이른다. 이미 생산된 A형 모든 기체는 물론 신규생산 물량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11]
여기서도 당연히 엔진
실속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나왔다(...)
[12]
A-7A의 알맹이에 전자장비만 A-7E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놓고 A-7P로 명명해서 수출했다. 아니나 다를까 엔진과 관련한 문제로 약 5기 가량을 상실했고 1999년에 모두 퇴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