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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계 브라질인들은 브라질에 수백년 동안 유입된 포르투갈인들의 후손 혹은 현대에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이민 온 경우를 의미한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출발했기 때문에 포르투갈 혈통의 브라질인이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고 정확한 규모에 대한 추산조차 힘들다. 일단 유전학적인 검사 결과에 의하면 브라질인들의 부계혈통가운데 절반 가량이 포르투갈계 백인이라는 통계가 있고, 2020년대 기준으로 500만명 가량의 브라질인이 포르투갈인 할아버지를 두고 있다는 통계는 있기도 하다.이러한 추세는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오늘날에도 이어지는데 현재 브라질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집단이 볼리비아인과 베네수엘라인 그리고 포르투갈인이다. 이는 포르투갈과 브라질 양국 모두 같은 포르투갈어권이라는 친근감 하에 상대방 국민에게 체류권이나 입국 과정이 다른 나라 국민들에 비해 상당히 간소화된 형태로 편의를 봐주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헌법에서 브라질에서 영주권을 가진 포르투갈 시민에게 "브라질 국민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다. 심지어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에 5년 이상 장기 체류할 경우에는 국내선거 참정권도 부여해주고 있고, 이는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2. 이민사
포르투갈계 브라질인들의 역사는 대항해시대 이후 포르투갈의 브라질 식민지 개발부터 시작되었다. 초창기 브라질 식민지에 정착한 포르투갈인들은 주로 헤콩키스타 완료 이후 종교 재판을 피해 눈치껏 식민지로 이주한 세파르드 유대인이 많았는데, 이는 대항해시대 당시 포르투갈이 인구가 부족하여 자국 내 유대인이나 무슬림들을 함부로 추방하기 힘든 이유도 있었다. 초창기 브라질에 정착한 포르투갈인들은 브라질 동북부를 중심으로 서아프리카에서 수입해온 흑인 노예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는데, 어른의 사정으로 오늘날 브라질 북부를 중심으로 한 브라질 흑인 및 원주민 상당수가 일부 백인 조상을 두게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일부 유대인 이민자 가정을 제외하면 거의 다 남성이었다.대항해시대[1] 당시 브라질에 정착한 포르투갈인들은 이른바 반데이란치스(Bandeirantes) 즉 “깃발을 나르는 사람”이라고 불렸으며 브라질 내륙을 탐험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으며 새로 탐사한 땅을 포르투갈 영토로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토르데시야스 조약 이후 브라질 지역의 상세한 국경선 확립은 바로 반데이란치스들의 공로가 컸다. 반데이란치스 지휘관은 대개 포르투갈인 이민 2세대나 3세대였고 포르투갈에서 파견된 병사 수가 적다보니 인원 상당수가 이른바 마멜루쿠(Mameluco)[2]라 불리던 메스티소로 충원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의 도착 이전 브라질은 남부 외에는 대부분 열대우림 지대여서[3] 인구가 부족했던데다가 포르투갈 본국 역시 본국 인구가 100만여 명 정도에 불과했던 상황에서 자국에서 보내는 인력만으로 식민지를 제대로 운영하기는 불가능했다. 대신 포르투갈은 15세기 무렵부터 서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 무역을 활발히 하던 나라여서 노예 충원에는 문제가 적었고 이러한 연유로 서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이 대거 브라질로 이주당했다. 브라질로 이주당한 흑인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부족 출신이었으나 세대가 지나면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브라질로 이주당하는 흑인 노예들은 남성이 더 많았으나 가혹한 노동 환경으로 7~10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고,[4] 흑인 노예가 여자인 경우 강제노동이 덜 가혹한 편이었으나 대신 백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까닭에 브라질에서 제일 먼저 개발이 이루어진 북동부 지역의 흑인 및 파르도 주민들은 대부분 포르투갈계 혈통을 지니게 되었다.
포르투갈 해양왕국이 쇠퇴하는 18세기에는 브라질에서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개발된 것을 계기로 포르투갈 본토에서 브라질로의 이민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주로 리스본과 포르투, 마데이라에서 출발한 포르투갈인 이민자들은 영국 상선들을 빌려타고 이주하였다. 당시 골드 러시를 두고 페레이라 마차도는 "포르투갈의 절반이 브라질로 이식되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과장은 아닌게 1700년 포르투갈 전체 인구가 200만명이었지만 1700년대 내내 이주한 포르투갈인의 숫자가 60만여 명에 달했다. 물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인생역전을 하지는 못하고 결국 포르투갈로 돌아가지 못해 브라질에 영구적으로 눌러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브라질 중서부 지역에 많은 도시들이 세워졌다. 물론 금광을 찾아 몰려온 포르투갈인 이민자들은 당연히 남초였고, 이는 브라질 내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백인과 다양하게 혼혈되는 결과를 낳았다. 1872년 이전까지는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이민오는 사람 중 여성 인구는 10% 미만에 불과했다.[5]
1808년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하자 포르투갈 왕실과 귀족들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피신하였다. 나폴레옹이 물러간 이후 브라질에서 자체적으로 황제를 세우고 독립하는 과정은 브라질/역사 문서 참조. 결국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면서 브라질 역사에 중요한 변수가 생기는데, 더 이상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럽 다른 나라의 이민을 받는데 제한사항이 줄었고, 19세기 산업혁명 시대 이후 저임금 중노동 혹은 농토 부족에 시달리던 유럽 각국의 빈민층 상당수가 포르투갈로 이민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 때는 브라질 백인의 주류가 포르투갈인 및 일부 스페인계 브라질인 가우초 등이었다면, 19세기 이후에는 이탈리아계 브라질인, 스페인계 브라질인, 독일계 브라질인, 레바논계 브라질인, 시리아계 브라질인, 폴란드계 브라질인 등등 이민자들이 몰려오며 브라질 백인 중에서 포르투갈계의 비중은 점자 감소한다. 비교하자면 20세기 중반 멕시코에서 스페인계 멕시코인 하면 "베레모 쓰고 괜히 비싼 와인 마시며 쿠바산 시가로 길빵을 피는 재수없는 백인"들을 의미했다면, 브라질에서 포르투갈계 브라질인은 그냥 브라질 내 흔하디 흔한 여러 혼혈인을 의미하는 단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나오는 포르투가 같은 경우로 변화한다.
일단 포르투갈 출신 이민 비율은 이탈리아인과 스페인인 이민자들을 합친 인구에 비하면 적기는 했지만 포르투갈어가 쓰이는 신대륙이라는 이유로 포르투갈 출신 이민자들의 수 자체는 결코 적지 않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리우데자네이루나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에서 바, 레스토랑, 제과점 같은 자영업에 종사하였다. 1881년부터 1900년까지 약 30만여 명, 1900년부터 1930년까지 약 75만여 명의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에 정착하였으며, 이후로도 경제대공황기인 1930년대를 제외하면 1970년대 전반기까지는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로 매년 수만명 단위로 이주하였으며, 브라질 군사정부 초반기인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브라질의 경제가 매년 10% 가량 성장하는 호경기 시대인 반면에, 포르투갈은 식민전쟁으로 많은 병사들을 해외로 파병보내고 있던 상황인지라, 병역을 기피하려는 포르투갈인들은 브라질로 많이 이주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는 브라질의 경제가 외채문제와 초인플레이션으로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오히려 브라질에서 포르투갈로 이주해오는 경우가 많았으며,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이민하는 경우는 은퇴이민이나 투자이민 이외에는 적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포르투갈의 청년 실업난으로 브라질로 취업이민을 가는 포르투갈인 인구가 다시 증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가 되어 포르투갈 등 유럽 경제가 회복되고 브라질이 헬게이트의 수렁에 빠지자 포르투갈인의 신이민은 끊겼고 이제 현실은 브라질 부자들이 스페인으로 도망가는 판국이다. 포르투갈이 식민 모국이지만 산업이 발달한 이웃 스페인으로 가고 그 다음은 역시 산업 기반이 있는 이탈리아로 간다.
3. 문화
오늘날의 브라질 요리는 빵보다는 쌀밥이 베이스가 되는데 이는 초창기 포르투갈계 브라질인들이 남긴 문화이다. 포르투갈도 스페인처럼 쌀을 많이 먹던 나라인데 이들이 아랍인의 지배를 받은 시절에 쌀농사를 전수받은 영향이다. 특히 브라질 농업은 엄연히 플랜테이션 중심이었기 때문에 농지 분배가 밀보다는 쌀 위주로 이루어졌다. 지력을 많이 소모하며 윤작이 불가능한 밀보다는, 남는 노동력만 있으면 비교적 적은 토지로도 많은 수확이 가능한 벼농사가 확실히 남는 장사였다.브라질 문화는 포르투갈인들이 전수한 이베리아 문화가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 그리고 노예로 잡혀온 흑인 문화와 섞여 브라질만의 독특한 문화가 되었다. 그러나 기후가 쾌청하여 포르투갈보다 더 열정적인 문화를 보인다. 삼바 축제 같은 게 대표적이다. 정작 포르투갈은 파두 등 음울하고 한 맺힌듯한 음악이 주류인 것과 다르다.
4. 관련 문서
- 브라질인
- 브라질-포르투갈 관계
- 포르투갈인
- 브라질 흑인 - 상술한 이유로 거의 다 포르투갈어를 쓰며, 대다수가 포르투갈인 혈통을 어느정도 물려받았다.
[1]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다. 대항해시대 절정이
마젤란의 세계일주와
스페인
콘키스타도르 미겔 로페스 레가스피의
필리핀 정복이다.
[2]
아랍어로 백인 노예 출신 군인을 지칭하는
맘루크가 어원이다.
[3]
농장과 광산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밀림이 급속도로 파괴되었는데, 원래 강우량이 많던 지역에 숲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니 표토층이 유실되면서 토양이 급속도로 척박해졌다. 오늘날 브라질에서 가장 척박하고 가난한 지역이 바로 제일 먼저 개발이 이루어졌던 북동부 지역이다.
[4]
노예 소유주들 입장에서도 노예를 오래 부려먹고 싶어했으나 당시에는 영양학이 부족했던 이유로 노예주들이 밥을 한두가지만 줘서 과로와 영양 불균형이 겹쳐서 빨리 죽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5]
대량 이민의 결과 포르투갈 본토는 안 그래도 부족한 남자가 훨씬 더 부족해졌다. 애초에 포르투갈이
일부다처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흑인 해방노예 출신 남성과 백인 자유민 여성 간의 결혼 등등이 흔하게 일어났다. 애초에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 당시 인구 부족으로 식민지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나라였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킨 현지인들을 군인이나 선원으로 징집하였는데, 이렇게 징집된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선원 상당수가
아소르스 제도,
마데이라 제도를 중심으로 포르투갈 본토 각지에 정착했다. 여담으로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대항해시대 패권을 장악한
네덜란드의 경우 이웃한
독일에서 온 빈농 출신 이민자들을 선원으로 활용해서 대신 소모시켰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