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스트링가라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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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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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이름 |
파올로 스트링가라 Paolo String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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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9월 22일 ([age(1962-09-22)]세) | ||||
토스카나주 그로세토도 오르베텔로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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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8cm, 72kg | ||||
직업 |
축구 선수 (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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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선수 |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78~1980 / 유스) AC 시에나 (1980~1986) → 렌데 칼초 (1983~1984 / 임대) 볼로냐 FC (1986~1990)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0~1992) → US 아벨리노 (1991~1992 / 임대) 볼로냐 FC (1992~1993) US 아벨리노 (1993~1994) US 아오스타 (1994~1995) 이페르촐라 (1995~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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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페르촐라 (1995~1996) AS 리보르노 칼초 (1996~1998) 모데나 FC (1998~1999) 비테르베세 카스트렌세 (1999~2000) ASD 라퀼라 (2000~2001) AC 피스토이에세 (2001~2002) 스페치아 칼초 (2003~2004) 토리노 FC (2005) AC 페루자 칼초 (2006~2007) AS 루케세 리베르타스 (2007~2008) 타란토 FC (2008~2009) 카베세 1919 (2009~2010) 코센차 칼초 (2010~2011) 칼초 포자 (2011~2012) 바를레타 1922 (2012~2013) US 그로세토 (2015) 미국 대표팀 (2015~2016 / 코치) 리보르노 소르젠티 (2021~2022) 한국 대표팀 (2023~2024 / 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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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등번호 |
볼로냐 FC - 4번, 8번 인테르나치오날레 - 10번, 7번, 4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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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2. 선수 경력
1978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유스팀에 입단하여 1980년에 세리에 C의 ACN 시에나에서 공식 프로 선수로 데뷔하였다.시에나에서 5년 동안 활약하며 팀이 세리에 C와 세리에 B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세리에 A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1986년에 볼로냐 FC로 이적하여 세리에 B에서 다시 한 번 더 우승하고 세리에 A에서도 챔스권 성적을 차지하며 이 때 주장 완장을 차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였다.
1990-91 시즌에는 UC 삼프도리아에 이어 세리에 A 2위를 차지하며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였고, 이 때 잠시 다른 팀을 찾기 위해 자신의 유스팀인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하여 훗날 미국 대표팀과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코치 신분으로 함께하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선수 신분으로 한솥밥을 먹게되었다.
그는 세리에 B의 US 아벨리노로 임대 이적하였으나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결국 팀이 세리에 C로 강등당했다. 이후 1992년 볼로냐로 돌아갔으나, 돌아오기 전에 팀이 이미 세리에 B로 강등당한 상태였다.
그는 다시 아벨리노로 돌아왔으나 오른쪽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되었고, 이후 US 아오스타를 거쳐 1996년 이페르촐라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그와 동시에 이페르촐라의 감독 직을 맡게된다.
그의 통산 기록은 366경기 21골[1]로, 볼로냐 FC에서 7골로 최다 골을 기록했다.
3. 지도자 경력
주로 세리에 B~ D 리그의 감독직을 맡았으며, 2015년에는 친구인 위르겐 클린스만과 함께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다.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미국 대표팀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2] 이후 2015년부터 미국 대표팀 코치로 부임하여 클린스만과 동행했다. 하지만 미국 대표팀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북중미 최종 예선에서 부진하자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사임했다. #
최근 지도자 경력으로는 세리에 D 소속의 리보르노 소르젠티의 감독을 맡은 바가 있는데, 리그 최하위 성적을 기록하면서 2022년 3월, 감독직을 맡은지 5개월만에 경질되었다. 이외에도 리보르노 소르젠티 감독직을 맡기 바로 전 소속 클럽이였던 세리에 D의 US 그로세토에서는 감독으로 부임한지 약 2개월만에 임기를 마쳤다. 과거부터 짧은 기간 동안 여러 하위 리그 클럽들을 전전하는 등 감독으로서는 실패를 거둔 인물로 봐도 무방하다. # #
3.1. 대한민국 대표팀 코치
위르겐 클린스만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 파올로 스트링가라 | 차두리 안드레아스 쾨프케 | 베르너 로이타르트 | 이재홍 |
2023년 2월 28일, 마이클 뮐러 전략강화위원장의 클린스만 감독 선임 관련 기자회견이 종료된지 4시간만에 클린스만호의 코칭스태프들 중 가장 먼저 합류 확정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한민국 대표팀과 동행하게 되었다. #
A매치가 없는 시기에는 다른 유럽 출신 코치들처럼 유럽에 상주하며 해외파 선수들을 관리할 예정인데, SSC 나폴리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김민재가 첫 관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23년 3월 16일, 대표팀의 3월 A매치 일정을 앞두고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 코치, 안드레아스 쾨프케 골키퍼 코치, 베르너 로이타르트 피지컬 코치와 함께 입국했다.
감독부터 코치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와중에 스트링가라는 한국에 상주하고 있다. 2023년 10월 기준 감독인 클린스만과 헤어초크 수석코치에게 비판 여론이 상당하여 묻히는 감이 있지만, 스트링가라의 경력 또한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기에는 부족해서[3] 이러한 코치 선임을 허가한 대한축구협회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예 경력조차 불투명한 감독 말동무 카를로스 아르무아와 비교되는 실정이다.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이 경질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표팀을 떠났다. 그리고 후속 취재를 통해 팬들의 예상대로 아르무아와 다를 것 없이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능함의 극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4. 전술 스타일
감독 시절 주로 4-4-2 포메이션을 주로 썼다.5. 기타
- 위르겐 클린스만과는 선수 시절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함께 뛴 동료이기도 하다. 스트링가라가 클린스만보다 두 살 더 많다.
- 같은 대표팀 스태프인 클린스만이나 쾨프케가 워낙에 레전드 선수라 묻히지만, 스트링가라도 현역시절 최전성기 세리에 A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을 정도의 선수였다.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89/90시즌, 볼로냐 FC에서 핵심 주전으로 리그 8위를 찍은 활약으로 바탕으로 인테르라는 빅클럽으로 이적한 선수로, 나름 성공적인 선수였다.
[1]
1993-94 시즌
US 아벨리노에서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므로 제외
[2]
대회 15위
[3]
기껏해야 1990년대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나마의 장점만이 있을 뿐 1부 리그가 아닌 세리에B ~ D까지 수많은 팀들을 전전하며 실패한 경력이 대다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