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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07 02:47:46

파사로비츠 조약

1. 개요2. 언어별 표기3. 배경4. 결과5.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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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18년 7월 21일, 오스만 제국 스메데레보 에야레트의 포자레바츠(Пожаревац)에서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

조약 장소인 포자레바츠는 현대 세르비아에 속해있으며 파사로비츠(Passarowitz)는 포자레바츠의 독일어 발음이다.

카를로비츠 조약에 이은 오스만 제국의 두번째 굴욕으로 평가받으며 오스만 제국에서는 이후 튤립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2. 언어별 표기

독일어 Friede von Passarowitz
이탈리아어 Pace di Passarowitz
튀르키예어 Pasarofça Antlaşması

3. 배경

7차이자 마지막 베네치아-튀르크 전쟁 (1714 ~ 1718년)과 사부아 공자 외젠이 활약한 것으로 유명한 6차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1716 ~ 1718년)을 마무리 짓기 위한 평화 협상이 시작되었다.

4. 결과

이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은 합스부르크 제국에게 보스니아 북부, 세르비아 중북부, 왈라키아 서부, 테메슈바르 일대의 바나트 등을 할양하며 도나우 강 - 사바 강 방어선이 붕괴되는 굴욕을 겪었으나 카를로비츠 조약에서 베네치아에게 빼앗겼던 모레아 ( 펠로폰네소스 반도) 일대는 회복하였다.

5.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에게 두번 연속으로 털리며 꿈도 희망도 없어 보이던 오스만 제국은 1737~1739년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과 벌인 전쟁의 결과 벨그라드 조약(합스부르크 제국), 니시 조약( 러시아 제국)을 차례로 맺었는데, 벨그라드 조약을 통해 파사로비츠 조약으로 상실하였던 영토 중 일부[1]를 회복하며 서유럽 세력에 대한 자신감을 다소나마 회복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바로 오스만 제국이 단독으로 서양 열강에게 승리를 거둔 마지막 전쟁이었고, 파사로비츠 조약에서 상실한 영토를 다 회복한 것도 아니고 일부만 회복한 것에 그친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카를로비츠와 파사로비츠 조약, 이후 크림 전쟁만 나온다.

[1] 보스니아, 세르비아, 왈라키아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