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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고 모타/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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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티아고 모타의 선수 시절 활약상을 서술한 문서.

2. 클럽 경력

브라질에서 태어나 지역의 CA 주벤투지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9년 17세의 나이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B팀과 계약하였고, 유스팀에서부터 시작하였다. 2001-02시즌 1군팀으로 승격하였다. 왼쪽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활약하였다.

이듬해 2002-03 시즌에는 리그 21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 최우수 신인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FC 바르셀로나 재적시에는 거듭된 부상에 시달렸고, 특히 2004년 9월 11일의 세비야 전에서 왼쪽 십자인대가 끊어져 7개월의 재활 기간을 가졌다. 2005년 4월 17일 헤타페 전에서 데쿠 대신 교체 투입되며, 환성과 박수로 그의 재기를 반겼다.

2007-08 시즌 개막전에서 팀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선수로 밀렸고, 2007년 8월 31일 이적료 200만 유로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무릎 부상에 시달렸고, 불과 1년 만에 결별하였다. 미국에서 부상 치료를 할 동안, 영국의 포츠머스의 트라이얼에 참여하지만, 어느 팀에도 소속하지 않은 채 2008-09 시즌 개막을 맞았다.

2008년 9월 14일, 이탈리아로 건너간 모타는 제노아와 계약을 맺었다. 이탈리아에서 주위의 예상을 뛰어 넘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이며 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의 공격 축구를 지원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공수 모두 고른 활약을 보이며 팀의 5위 약진과, UEFA컵 진출권 획득에 기여하였다. 시즌 종료 후, 디에고 밀리토와 함께 인테르로 이적하였다.

2008-09 시즌 세리에 A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정되었다.

2.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9-10 시즌 개막전부터 출장하였고, 밀라노 더비에서 선제골을 넣어 팀 승리에 기여하였다. 친정팀 바르셀로나와 맞붙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세르히오 부스케츠에게 파울을 범해 퇴장당했다. 퇴장으로 인하여 결승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서 팀이 4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경기를 피치 밖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2010-11 시즌은 부상으로 중도 탈락하였으며 11월에 복귀하고 나서는 호조를 보여 복귀 후 7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였다.

2.2. 파리 생제르맹 FC

2012년 1월 31일에 인테르 시절의 은사 레오나르두 아라우주가 GM을 맡고 있는 PSG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 반이다. 등번호는 28번이었으나, 2013-14 시즌부터 인테르 시절에 사용한 8번으로 바뀌었다.

모타는 파리에서 커리어 내내 준유리몸에 가까웠던 체질이 뜬금없이 철강왕이 되면서 애시당초 터프했던 플레이 스타일과 리그 1의 떡대 흑인 수비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체격, 본인이 인테르 트레블의 일원이었음을 알리는 듯한 클래스있는 실력으로 파리의 핵심적인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하며 인테르 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실력있는 미드필더였는가를 입증하였다.

요앙 카바예가 PSG로 이적해올 당시만 하더라도 모타 아니면 마르코 베라티가 자리에서 밀려나리라 다들 예상했으나 도리어 주전에서 밀린 것은 카바예. PSG에서 공수 전환 능력, 준족, 침투 상황에서의 침착성에서 강점을 보이는 블레즈 마튀이디, 플레이메이킹, 시야, 패스에서 강점을 보이는 베라티와 더불어 터프한 플레이, 체격, 나쁘지 않은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미들 라인 보호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인 모타가 불러 일으킨 시너지 효과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2014-15 시즌에도 주전으로 나서고 있으나 다시 은근한 잔부상을 앓는 등, 파리서도 이전의 준유리몸 기질이 조금씩 도지는 듯하다. 2015-16 시즌에도 모타는 잔부상을 드러냈었다. 허나, 챔스에서는 당시 스쿼드 중 가장 클래스를 보여줬다고 언급할 만 하다.

2016-17 시즌에는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의 존재로 밀리는것을 몇몇이 예상했으나, 애초에 모타급의 빌드업 능력이 없던 크리호비아크가 모타를 밀어낼리가 없었다. 다만 PSG가 전술적으로 과도기에 있는 시즌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폼은 널뛰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2016-17 시즌이 계약 만료 기간이었지만 구단과 1년더 계약을 체결했다.

2017-18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서는 은퇴하고, 다음 시즌부터 PSG의 U-19 팀 감독을 맡는 것이 확정되었다. 리그앙 37R 스타드 렌과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PSG로부터 레전드로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만 커리어 전체를 볼 때 로드리고 데 파울의 행보와 많이 유사하다. 두 선수 모두 라리가 시절에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몇 년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고 두 선수 모두 세리에로 이적해 본인의 기량을 만개시키고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까지 올라왔다는 점.

3.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로는 U-23 브라질 대표로 2003년 골드컵에 출전하여 2경기에 출장한 경험이 있지만, 정식 성인 국가대표는 아니었기에 타국가의 대표팀으로 선발 가능했다. 모타 본인은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참가하기를 희망하였다. 할아버지가 베네토 이민자로, 이탈리아 국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발탁하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

이후 2011년 2월 9일,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처음 소집되어 A매치에 데뷔하였다. 같은 해 3월 25일 유로 2012 예선 슬로베니아 전에서 결승골이 되는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유로 2012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모타는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했지만 곧바로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때마침 교체 선수를 모두 사용한 이탈리아는 10명으로 남은 시간을 경기하며 수적 열세에 시달린 끝에 0-4로 참패하게 된다.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들어가 32세에 생애 첫 월드컵을 경험하게 된다.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나 이탈리아는 2대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유로 2016에도 선발되어 8강전을 제외한 전 경기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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