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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ais des Tuileries |
1. 개요
현재 파리 1구의 루브르와 샹젤리제 사이에 있던 옛 왕궁.프랑스 혁명 직후 루이 16세 부부의 정궁으로 잠시 사용되었던 것을 시작으로 정권[1]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프랑스 군주들의 정궁으로 계속 애용되다 프랑스에서 군주제가 완전히 사라진 1871년 파리 코뮌으로 방화되어 사라진 궁전이다.
2.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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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되기 이전의 튈르리 궁의 전경을 묘사한 삽화. |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루이 14세 때부터 오랫동안 거주해 온 베르사유 궁전에서 강제로 나오게 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물렀던 곳으로 1792년 8월 10일 봉기 당시 튈르리 궁에서 루이 16세를 지키며 786명의 스위스 근위대가 전원 전사한 것을 기려 부르봉 왕정복고 시절인 1821~24년 스위스 루체른에 덴마크 작가 루카스 아혼이 빈사의 사자상을 조각했다.
이후 황제의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이곳을 황궁으로 지정하고 기거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왕정 복고 후에 역대 국왕들은 기존에 정궁이었던 베르사유 궁전이 있었음에도 계속 튈르리 궁에서 지냈다.[2] 나폴레옹 3세 때 북쪽으로 또 하나의 회랑으로 연결했다.
하지만 1871년 파리 코뮌 당시 방화로 파손되어 1882년에 철거되었고, 이후 2000년대 복원 논의가 있었지만 이미 철거된 지 한 세기가 넘게 지났기에 유서깊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궁전임에도 흐지부지된 상태다. 파손된 공간은 튈르리 정원의 일부로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