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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9 22:47:05

조지 투포우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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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4.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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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지 투포우 2세는 통가의 2대 국왕이었다.

2. 생애

1874년 통가의 바바우 제도 네이아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족으로 4대 투이 펠레하케(Tuʻipelehake)[1]를 지냈다. 조지 투포우 2세의 친할머니 살로테 공주(Sālote Pilolevu)는 선대왕이었던 조지 투포우 1세의 딸이었다.

어머니는 엘리시바(Elisiva Fusipala Taukiʻonetuku)로 조지 투포우 1세의 맏아들이었던 테비타 웅가(Tēvita ʻUnga)의 딸이었다.

즉, 투포우 2세의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남매였다.

선대 국왕인 조지 투포우 1세가 워낙에 장수하는 바람에 계승권자인 자식대와 손자대가 사망하면서 계승 서열이 증손자인 조지 투포우 2세에게까지 온 것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인 조지 투포우 1세가 서거하면서, 1893년 2월 18일에 왕위에 올랐다.

1918년 4월 5일에 스페인 독감으로 서거했다. 딸인 살로테가 왕위를 계승하여 살로테 투포우 3세에 오른다

3. 가족 관계

즉위하였을 때 18세로 독신이었다. 부족장 원로들은 투이 하아타칼라우아(Tuʻi Haʻatakalaua) 계열의 여성인 오파키바바우(ʻOfa-ki-Vavaʻu)를 추천하였으나 왕은 응하지 않았다.

이미 결혼 전에 조지 투포우 2세는 영국인인 마거릿 코커와 사생아 둘을 두었다.

1898년에 독일 부영사였던 트레스코(Waldemar von Treskow)의 자녀로, 통가-독일 혼혈인 제인(Jane (Eugenie) von Treskow)과 결혼하려고 하였으나 의회가 이의를 제기하여 무위로 돌아갔다.

이후 1899년에 라비니아 베이옹고와 결혼했다. 라비니아는 투이 통가(Tuʻi Tonga) 계열의 후손이었다.

1902년 라비니아가 세상을 떠나면서 1909년에 다시 아나세이니 타키포와 결혼하였다. 아나세이니는 조지 투포우 2세가 결혼을 거부했던 오파키바바우의 이복자매였다.

두 번의 결혼 동안 세 명의 적통 공주를 낳았고, 최소 세 명의 사생아를 두었다.

4. 재위

그의 치세에 통가 정부는 부패와 비효율성으로 유명했다. 1900년에 통가 의회는 그의 통치 능력에 의문을 품고 수천 파운드의 재정 유출을 조사하기 위해 왕의 계좌를 수사하기도 했다. 해외의 통가인 커뮤니티는 통가가 뉴질랜드에 귀속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1905년엔 아버지인 4대 투이 펠레하케가 총리를 지내며 대원군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의 치세인 1905년에 통가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 명목상 통가에서 두번째로 높은 직위이다. 작위는 Prince에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