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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7:05:35

투팍 아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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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잉카 제국 황제2. 페루의 원주민 독립운동가3. 페루의 반정부 무장단체

1. 잉카 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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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사파 잉카
투팍 아마루
Túpac Amaru
파일:TupacamaruI.jpg
신잉카국[1] 제4대 황제
<colbgcolor=#DAA520><colcolor=#fff,#fff> 출생 1545년
사망 1572년 9월 24일 (향년 26~27세)
페루 부왕령 쿠스코
재위 기간 제18대 사파 잉카
1571년 ~ 1572년 (1년)
전임자 티투 쿠시
칭호 최후의 사파 잉카
부모 아버지: 티투 쿠시
종교 잉카 종교
[clearfix]
잉카 제국의 후신인 신잉카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제18대 사파 잉카였다.

스페인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켰던 망코 잉카(1516~1544)의 손자였으며 티투 쿠시(1529~1571)[2]의 아들이었다. 그가 즉위했을 때 잉카 제국은 이미 프란시스코 피사로 형제 디에고 데 알마그로를 선봉으로 한 스페인의 침략을 받고 점령당했으며 피사로가 세운 괴뢰 황제였던 망코 잉카가 쿠스코에서 도망쳐 험준한 산 속의 빌카밤바에 세운 망명 정권인 신잉카국이 스페인에 저항하던 상황이었다.

부황인 티투 쿠시가[3] 붕어하자 제위를 이어받았지만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왔고 이에 빌카밤바를 불태운 뒤 일행을 3갈래로 나누어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모두 붙잡히고 말았다. 포로로 잡힌 후 쿠스코로 끌려가 우상숭배, 스페인에 대한 반란 선동 등의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으며 결국 교수형당했다.

그의 처형에 대해 원주민들뿐만 아니라 스페인인들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4] 수많은 선교사들이 그의 담담한 태도에 감명받아 총독의 재판이 위법이며 그에게 황제를 죽일 권한이 없다는 탄원서를 넣었으나 총독이 워낙 강경하게 나오면서 사형을 막지는 못했다. 참고로 당시 스페인을 다스리던 펠리페 2세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황족에 대한 예우를 이유로 그를 죽이는 것을 껄끄럽게 여겼으며 실제로 그를 처형시킨 총독은 결국 국왕에 의해 해임되었는데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식민지 원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뿐만 아니라 신분제 사회에서 법으로 군주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훗날 아래의 투팍 아마루 2세를 포함한 페루 원주민들의 대스페인 독립운동이 계속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페루가 독립하면서 그러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2. 페루의 원주민 독립운동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투팍 아마루 2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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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페루의 반정부 무장단체

파일:external/dialogo-americas.com/images_2012_07_01_FAR-EPT_2010-11d_Pag_opt.jpg

1983년에 결성된 페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계열 반정부 무장단체. 약어는 MRTA(Movimiento Revolucionario Túpac Amaru)이며 조직명의 유래는 2번 문단이다.

페루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며 마오주의 계열 무장단체인 센데로 루미노소(Sendero Luminoso, 빛나는 길)와 함께 반정부 무장투쟁, 요인 암살과 같은 테러 활동을 벌였다. 1996년에는 일본 대사관을 점거하고 700여 명을 인질로 삼아 체포된 단원들의 석방 및 몸값 지불을 요구했으나 당시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던 알베르토 후지모리에 의해 진압되었으며[5] 이후 살아남은 대원들은 밀림으로 퇴각해 무장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1] 잉카 제국이 멸망한 후 일부 황족들이 산중 요새인 빌카밤바로 도망쳐 세운 망명 국가였다. 보통 잉카 제국의 후신으로 여겨진다. [2] 망코 잉카 황제의 차남이었으며 형인 사이리 투팍(1535~1561)이 스페인에 투항하자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3] 망코 잉카의 적남이자 투팍 아마루의 큰아버지인 사이리 투팍 유판키는 스페인의 회유에 넘어가 투항했고 공석인 제위에 투팍 아마루의 아버지 티투 쿠시가 즉위했다. [4] 여기에 투팍은 젊은 데다 미남이었고 황족다운 당당한 품위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잉카인을 야만인이라 멸시하던 스페인인들도 그에게는 호감과 동정을 갖고 있었다. [5] 후지모리가 직접 방탄복을 입고 진압부대를 지휘해 구출작전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