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의 前 F1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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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톰 프라이스 Tom Pry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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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토마스 말드윈 프라이스 Thomas Maldwyn Pry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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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9년
6월 11일 웨일스 덴비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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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영국 | |||
사망 |
1977년
3월 5일 (향년 27세)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드란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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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드라이버 (F1) |
토큰 레이싱, UOP 섀도우 레이싱 팀(1974) 섀도우 레이싱 팀 (1975~1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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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colbgcolor=#eeeeee,#191919> 출전 횟수 | 42경기 | ||
월드 챔피언 | 0회 | |||
그랑프리 우승 | 0회 | |||
포디움 | 2회 | |||
폴 포지션 | 1회 | |||
패스티스트 랩 | 0회 | |||
첫 경기 | 1974년 벨기에 그랑프리 | |||
마지막 경기 | 197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랑프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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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일스 태생 영국의 F1 드라이버.2. 레이싱 커리어
3. 비극적인 죽음
197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칼라미 서킷에서 열린 경기 22랩째에, 렌초 조르지의 차량에서 연기가 나면서 멈춰섰다. 이때 2명의 마샬이 소화기를 들고 조르지의 차량으로 달려가는 순간 프라이스가 주행중인 차가 두번째로 따라온 마샬(프레드릭 젠슨 반 부렌[1])[2][3]을 치면서 마샬의 온몸이 토막나듯이 날라갔고 마샬 프레드릭이 들고 있던 소화기에 톰 프라이스가 머리를 맞고 사망하였다. 300km로 달리던 와중에 소화기가 프라이스의 헬멧을 때리면서 턱끈이 톰 프라이스의 목을 절반이 넘게 파고 들었다는게 밝혀졌다. 즉 이 당시 프라이스는 즉사했으며 사실상 참수형을 당한거나 마찬가지였다. 발견당시 그의 목덜미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고 한다.이 사고로 인해 남아프리카 그랑프리에서 2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포뮬러 1 역사에서 로저 윌리엄슨과 더불어, F1 사상 최악의 끔찍한 참사에 들어가는 사고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사건이다. 이 두 사고의 심각성이 훗날 F1 차량의 안전성 강화나 규칙 개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면서 이 두 젊은 드라이버의 희생이 그래도 헛되지는 않았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인 부분.
[1]
사고 이전의 생전 모습 [2] 톰 프라이스의 사망에 단초를 제공한(본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프레데릭 젠슨 반 부렌(Frederick Jansen van Vuuren)은 당시 19세로, 어린 나이에 투입된 경력이 일천했던 마샬이었다. 본업은 항공사 티켓 판매원. [3] 톰 프라이스의 사망에 큰 원인이 된 마샬, 프레드릭의 사망은 원래 레이스 도중 사고가 났을때 사고 처리를 위해 세이프티 카가 투입돼야 하는데 이 날은 세이프티 카가 전혀 투입되지 않았고 마샬 두명이 거의 맨몸으로 뛰어가다시피 하다 이런 참사가 야기된 것. 여기에 사망한 프레드릭이 경험이 부족한 마샬이다보니 차량 접근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진화작업에 나서다 사고가 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사고 이전의 생전 모습 [2] 톰 프라이스의 사망에 단초를 제공한(본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프레데릭 젠슨 반 부렌(Frederick Jansen van Vuuren)은 당시 19세로, 어린 나이에 투입된 경력이 일천했던 마샬이었다. 본업은 항공사 티켓 판매원. [3] 톰 프라이스의 사망에 큰 원인이 된 마샬, 프레드릭의 사망은 원래 레이스 도중 사고가 났을때 사고 처리를 위해 세이프티 카가 투입돼야 하는데 이 날은 세이프티 카가 전혀 투입되지 않았고 마샬 두명이 거의 맨몸으로 뛰어가다시피 하다 이런 참사가 야기된 것. 여기에 사망한 프레드릭이 경험이 부족한 마샬이다보니 차량 접근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진화작업에 나서다 사고가 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