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2:47:46

프란체스코 톨도

톨도에서 넘어옴
프란체스코 톨도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베스트팀
파일:UEFA 유로 2000 심볼.svg
파일:ESM.png
}}} ||
프란체스코 톨도의 기타 정보
[ 펼치기 · 접기 ]
파일:internazionale_hof.png [br] FC INTERNAZIONALE MILANO HALL OF FAME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4905a,#a5915a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GK DEF MID ST
2018 [ruby(쳉가, ruby=발테르)] [ruby(사네티, ruby=하비에르)] [ruby(마테우스, ruby=로타어)] ㅤㅤㅤㅤ
호나우두
[ruby(ㅤㅤㅤㅤ, ruby=루이스 나자리우 지리마)]
2019 [ruby(톨도, ruby=프란체스코)] [ruby(파케티, ruby=자친토)] [ruby(스탄코비치, ruby=데얀)] [ruby(메아차, ruby=주세페)]
2020 [ruby(세자르, ruby=줄리우)] [ruby(베르고미, ruby=주세페)] [ruby(캄비아소, ruby=에스테반)] [ruby(밀리토, ruby=디에고)]
2021 [ruby(팔리우카, ruby=잔루카)] [ruby(마테라치, ruby=마르코)] [ruby(스네이더, ruby=웨슬리)] [ruby(에투, ruby=사무엘)]
2022 [ruby(보르돈, ruby=이바노)] ㅤㅤㅤ
마이콘
[ruby(ㅤㅤㅤ, ruby=도글라스)]
[ruby(마촐라, ruby=산드로)] [ruby(비에리, ruby=크리스티안)]
}}}}}}}}}}}} ||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Francesco Toldo.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프란체스코 톨도
Francesco Toldo
출생 1971년 12월 2일 ([age(1971-12-02)]세)
이탈리아 파도바[1]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96cm / 체중 90kg
직업 축구 선수 ( 골키퍼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AC 밀란 (1990~1993)
엘라스 베로나 FC (1990~1991 / 임대)
→ 트렌토 칼초 (1991~1992 / 임대)
→ 라벤나 칼초 (1992~1993 / 임대)
ACF 피오렌티나 (1993~2001)
인테르나치오날레 (2001~2010)
국가대표 28경기 ( 이탈리아 / 1995~2004)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

피오렌티나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유로 2000에선 이탈리아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AC 밀란의 유스팀 출신으로 1990년부터 3시즌간 하위권 클럽으로 임대생활을 했다. 그러나 주전 수문장인 세바스티아노 로시는 건재했고 1993년 피오렌티나로 이적한다. 피오렌티나에서 톨도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함께 8시즌간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고 2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피오렌티나가 구단주 비토리오 체키 고리의 막장짓으로 파산 위기에 몰리자, 톨도는 팀 동료였던 후이 코스타와 함께 파르마에 팔리게 되었는데, 여기서 톨도는 부폰의 뒤를 이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뛰고 싶지 않다며 파르마 이적을 거부했고, 인테르로 이적하게 되었다. 인테르에서 첫 시즌 톨도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팀은 UEFA컵 4강에 진출했고 리그에서는 최종전 라치오에게 패배하며 아쉽게 3위를 기록했다. 인테르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그는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2-03 시즌 발렌시아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 찬사를 받았고[2] 이 시즌 인테르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다. 이 시즌 유벤투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극적인 동점골을 돕기도 했다. 톨도는 이후로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으나 2005년 브라질 출신의 줄리오 세자르가 팀에 합류하면서 주전에서 밀려나 세자르의 백업 골키퍼가 된다. 2009-10 시즌에는 트레블이라는 영광을 함께한 뒤 해당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1995년 크로아티아와의 유로 1996 예선전, 골키퍼 루카 부치의 퇴장으로 인해 지안프랑코 졸라와 교체투입되며 대표팀에서 데뷔했다. 이탈리아는 팔리우카, 페루치, 마르케지아니 등 엄청난 골키퍼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잔루이지 부폰이 데뷔하자 톨도는 국가대표팀과 멀어졌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으니, 유로 2000 대회 직전에 부폰이 부상당한 것이었다. 톨도는 대회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고 엄청난 선방을 선보였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4강전, 알레산드로 네스타의 파울로 내준 PK에서 프랑크 더부르의 슛을 선방하는 등 1골도 내주지 않았다.[3] 이후 승부차기에서도 더 부르와 보스펠트의 슈팅을 선방하며 이탈리아의 결승 진출을 이끌며 MOM에 선정되었다. 결승전에도 선발출전했으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삽질과 막판 수비수들의 실책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했다.

이후 2002 월드컵 유로 2004에도 부폰의 백업 골키퍼로 참가했으나[4] 1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2004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큰 키와 선이 굵은 몸매로 공중 경합에 능했고,[5] 길고 육중한 몸매와는 별개로 굉장한 민첩성과 선방 능력을 선보였으며, 특히 PK 선방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이정도 능력을 지닌 골키퍼는 웬만하면 당연히 국가대표 주전 키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탈리아엔 잔루이지 부폰이라는 넘사벽 존재가 있는데다 부폰은 기복이 적고 꾸준했음에 비해 톨도는 다소 기복이 있었던지라 2인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6]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같이 보기

1 톨도 · 2 베르고미 · 3 말디니 ⓒ · 4 칸나바로 · 5 코스타쿠르타 · 6 네스타 · 7 페소토 · 8 토리첼리 · 9 알베르티니
10 델 피에로 · 11 바조 D. · 12 팔리우카 · 13 코이스 · 14 디 비아조 · 15 디 리비오 · 16 디 마테오 · 17 모리에로
18 바조 R. · 19 인자기 · 20 키에사 · 21 비에리 · 22 부폰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체사레 말디니

1 아비아티 · 2 페라라 · 3 말디니 ⓒ · 4 알베르티니 · 5 칸나바로 · 6 네그로 · 7 디 리비오 · 8 콘테 · 9 인자기
10 델 피에로 · 11 페소토 · 12 톨도 · 13 네스타 · 14 디 비아조 · 15 율리아노 · 16 암브로시니 · 17 잠브로타
18 피오레 · 19 몬텔라 · 20 토티 · 21 델베키오 · 22 안토니올리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디노 조프


[1] 베네토주에 있는 도시다. 참고로 이 주의 주도가 베네치아이다. [2] 사실 2000년대 초반 발렌시아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가 톨도인데, 직전 시즌 UEFA컵 8강에서도 전성기를 구가하던 발렌시아의 앞길을 막은 게 인테르였고, 톨도의 미친 선방쇼였다. 게다가 이 두 시즌 인테르의 감독은 발렌시아를 1999-00, 2000-01 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렸던 엑토르 쿠페르였다. [3] 사실 운도 좋았던 것이 데니스 베르캄프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온다거나 파트릭 클라위버르트의 PK도 골대를 맞고 나왔다. [4] 사실 2002년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는 부폰과 반반씩 나누어서 출전할 정도로 경쟁은 했다. [5] 키를 활용한 리치도 리치지만 피지컬도 좋아서 경합 상황에 상대 선수들과 뒤엉킬 때에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이 장점들을 활용해서 공격(!)을 거든 적도 있는데, 2002-03 시즌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동점골을 거든 것이 바로 이것. [6] 이는 후에도 계속돼서 부폰은 대표팀에서 2010년대 끝까지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다른 유망한 골키퍼들도 2인자로 남거나 로테이션 키퍼 자리 경쟁을 해야만 했다. 부폰이 은퇴한 뒤에도 똑같은 이름을 가진 키퍼가 부폰과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압도적인 실력으로 다른 골키퍼들을 제치고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