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토머스 블라운트 Thomas Blou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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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1400년 1월 12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도싯 콥톤 밸런스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옥스퍼드셔 옥스퍼드 성앞 | |
아버지 | 토머스 블라운트 | |
어머니 | 조앤 해클루트 | |
아내 | 이사벨라 보테투르, 조앤 우드펠드 | |
직위 |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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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기사. 헨리 4세를 모살하고 리처드 2세를 복위하려는 음모에 가담했지만 발각된 뒤 처형되었다.2. 생애
도싯 콥톤 밸런스의 기사 토머스 블라운트와 허드퍼드셔의 롱포드 기사 에드먼드 해클루트의 딸인 조앤 해클루트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크레시 전투에 참여했으며, 1376년과 1377년 도싯 의원으로서 의회에 출석했고, 1381년과 1382년 옥스퍼드셔 의원으로서 의회에 참석했다. 그는 일찍이 기사 작위를 받았고, 1376년 6월 아버지와 함께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 케임브리지 백작 랭글리의 에드먼드의 휘하에 들어갔다. 1382년 뉴 포레스트에서 앨리스 웨스트의 재산을 강탈한 자들을 체포해 윈체스터 감옥에 수감했다.1380년대 초에 리처드 2세의 기사가 되었고, 1383년 5월 잉글랜드 재무부로부터 20마르크의 연금을 받았으며, 1384년 봄에는 스코틀랜드 주재 프랑스 대사와 동행하여 40마르크를 받았다. 이후 스코틀랜드 국경지대에 위치한 버캄프스테드 성에서 복무했고, 이후에는 칼레에서 복무했다. 1385년 왕실 기사로서 리처드 2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맨앳암즈 1명과 궁수 2명을 데리고 참여했다. 그해 10월, 리처드 2세는 블라운트가 "빈약한 생활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에게 후견인 자격과 옥스퍼드셔 지주의 상속녀와 결혼할 권리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는 며칠 후 평생 연금 40파운드를 받는 대가로 이 선물을 거부했다. 1386년4월 우스터 백작 토머스 퍼시의 지휘아래 맨앳암즈 2명, 궁수 4명, 포병 2명으로 구성된 수행원들을 데리고 칼레에서 복무했다.
1387년 제2대 보테투르 남작 존 보테투르의 딸이며 재무 담당관 휴 세그레이브의 미망인 이사벨라와 결혼했고, 아내로부터 버크셔의 버그필드 매너를 물려받았다. 1388년 1월 리처드 2세의 측근들을 대거 숙청한 청원파에 의해 왕실에서 추방되었지만, 훗날 권력을 되찾은 리처드 2세에 의해 직위를 회복했다. 1389년 마일즈 윈저 경의 어린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재산을 관리하는 후견인을 맡았으며, 1391년 리처드 2세로부터 프랑스 대사로 선임된 뒤 파리로 파견되어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에게 프랑스와 평화 협약을 맺기를 원하는 리처드 2세의 뜻을 전했다. 1394년 리처드 2세의 아일랜드 원정에 동행했고, 1397년 9월 하원에 참석해 리처드 2세가 청원파 인사들을 처형하는 걸 도왔다. 이후 기사 존 우드펠드의 딸이며 기사 휴 체니의 미망인인 조앤 우데필드와 재혼해 햄프셔와 레스터셔의 영지를 물려받았다.
1399년, 헨리 4세가 리처드 2세를 폐위하고 잉글랜드 국왕이 되었다. 헨리 4세는 그의 지위와 왕실 연금을 받을 권리를 확인했지만, 블라운트는 자신을 총애한 리처드 2세에 대한 충심을 유지했고, 그를 복위하기 위한 음모에 가담했다. 솔즈베리 백작 존 몬타구, 헌딩턴 백작 존 홀랜드, 켄트 백작 토머스 홀랜드, 디스펜서 남작 토머스 르 디스펜서, 럼리 남작 랄프 럼리, 칼라일 주교 토머스 머크를 비롯한 음모자들은 주님 공현 대축일을 축하하기 위해 윈저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석한 헨리 4세와 자식들을 죽이기로 결의했다. 주님 공현 대축일 축제는 성탄절부터 시작해 12일간 이어져 1400년 1월 6일 토너먼트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들은 킹스턴에서 무장부대를 모으고 야밤에 윈저성에 들어간 뒤 1월 6일 토너먼트에 참석한 헨리 4세와 아이들을 모조리 죽인 후 리처드 2세를 복위하기로 했다. 여기에 웨스트요크셔의 폰테프랙트 성에 감금되어 있는 리처드 2세를 빼돌리는 작전도 수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음모는 실패했고, 그는 동지들과 함께 도주했다가 시렌세스터에서 체포된 뒤 옥스퍼드로 끌려간 후 1400년 1월 12일 옥스퍼드 성 앞에서 반역 혐의로 교수형 후 시체를 4등분으로 잘라서 잉글랜드 각지에 보내는 형벌을 받았다. 전승에 따르면, 곤트의 존과 헨리 4세를 대대로 따른 기사인 토머스 아핑햄이 죽어가고 있던 블라운트에게 이렇게 조롱했다.
"가서 당신을 치료할 수 있는 주인을 찾아라!"
이에 블라운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너는 진정한 반역자이자 거짓말하는 기사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축복하고 오늘을 축복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주권자인 고귀한 리처드 왕을 섬기면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에 2번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고, 그의 재산은 왕실에 몰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