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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0 20:24:18

키키 앙테넨

파일:Kiki Antenen.jpg
이름 샤를 앙테넨
(Charles Antenen)
생년월일 1929년 11월 3일
사망년월일 2000년 5월 20일 (향년 70세)
국적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출신지 라쇼드퐁
포지션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신체조건 174cm | 68kg
소속팀 FC 라쇼드퐁 (1945-1952)
FC 로잔 스포르 (1952-1953)
FC 라쇼드퐁 (1953-1965)
국가대표 57경기 22골 (1948-1962)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수상
4.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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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별명인 "키키"로 더 유명한 앙테넨은 12살때부터 고향 라쇼드퐁을 연고로 하는 FC 라쇼드퐁의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45년 1월에 성인팀에 데뷔했다. 1945-46 시즌부터 앙테넨은 본격적으로 성인팀에서 자리를 잡았고 1949년에는 SS 라치오가 앙테넨에게 계약을 제의했다. 12만 프랑의 계약금에 연봉과 보너스도 따로 나오는 계약이었지만 앙테넨은 거절했는데 납득할 만한 거절의 이유는 그가 밝히지 않았다.

앙테넨은 1952-53 시즌을 FC 로잔 스포르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20년이 넘는 선수 커리어를 모두 라쇼드퐁에서 보냈다. 앙테넨이 뛰던 시기, 그리고 이르지 소보트카 감독이 팀을 이끌던 시기가 바로 라쇼드퐁의 전성기였고 라쇼드퐁은 나티오날리가 A 우승 2회, 스위스컵 우승 5회의 성과를 냈다.[2]

2.1.2. 국가대표

1948년 6월 20일, 나티에 데뷔할 당시 앙테넨은 만 18세였다. 상대는 스페인이었고 결과는 3:3이었다.

앙테넨은 1950년, 1954년, 1962년. 총 3회의 FIFA 월드컵에 참가했고 1950년 대회에서는 멕시코를 상대로 골을 넣었다. 1954년 대회에서 앙테넨은 3경기에 출전했지만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8강에서 오스트리아에 5:7로 패했다.

1956년부터 나티의 주장 완장을 달기 시작한 앙테넨은 1961년 10월부터 정식 주장이 되었고 스위스를 1962년 월드컵으로 이끄는 2경기 연속 골을 넣었다. 그러나 본선에서 스위스는 3전 전패로 탈락했고 이것이 앙테넨의 마지막 대표팀 경력이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앙테넨은 다소 몸싸움에 약점이 있었지만 모든 기술적 재능과 전술을 갖추고 있었다. 앙테넨은 뛰어난 운동 능력과 저항력으로 엄청난 가속력을 필드에서 선보였으며 권위 있게 공을 분배하며 뛰어난 점프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오른발, 왼발, 발리, 런닝슛, 다양한 드리블, 게임 지능, 득점자, 숙련된 패서 등 모든 것을 할 줄 알았으며 그의 게임에서는 사소한 결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4. 수상

4.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2] 라쇼드퐁은 앙테넨의 은퇴 전 시즌인 1963-64 시즌에 컵대회 우승을 추가했는데 이때 말고는 컵대회 우승 기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