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전역을 앞둔 크리스토퍼 벡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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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hris Beck1966년 6월 21일 출생([age(1966-06-21)]세). 미국의 퇴역군인 트랜스젠더로, (지금까지 알려진) DEVGRU 출신 최초의 트랜스젠더이다. 여성으로 생활했을 때의 이름은 '크리스틴 벡(Kristin Beck)'이었다. 2022년 11월 탈성전환하여 다시 남성으로 돌아갔다. #[1]
2. 크리스토퍼 벡
1966년 6월, 농장 가족에서 남자 아이 크리스토퍼 벡이 태어났다. 몸은 남자지만 성별 정체성은 여자라고 자각했던 것 같은 크리스토퍼는 어릴 적부터 여자 옷을 몰래 입고 인형을 갖고 놀았지만 보수적인 부모님에 의해 억지로 남자다운 활동을 하며 성장했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했던 크리스토퍼는 그런 복잡한 고민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운동 같은 육체활동에 전념했고, 버지니아 군사대학에 입학했다가 3학년까지 마친 뒤 1년 더 공부하고 졸업하는 대신 미합중국 해군 수병으로 입대하고는 수병 복무기간을 거쳐 미 해군의 최강 마초들이 지원하는 특수부대 네이비 씰에 지원하였다. 진짜 사나이들도 포기하는 네이비 씰 훈련을 수료한 크리스토퍼는 네이비 씰에서 오랫동안 복무하며 DEVGRU 소속으로 발칸반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활약하며 퍼플 하트와 동성무공훈장을 포함해 수많은 훈장을 받았고 20년을 복무했다. 이혼을 하기는 했지만 2번 결혼했고 첫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도 둘이나 얻었다.크리스틴이 DEVGRU 같은 조직에서 활동한 것은 어디까지나 애국심과 전우애 등에 기반한 것이었지 자신이 딱히 마초적인 기질이 있어서 특수부대에서 활동한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성 정체성 혼란을 회피하기 위해 육체활동, 그리고 군복무에 몰입했음을 깨달았다. 남성으로서 사회화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지만 성 정체성 혼란을 진지하게 직시한 경험 또한 없었던 크리스토퍼는 고민에 빠졌다.
3. 크리스틴 벡
결국 2011년 상사(Senior Chief Petty Officer)로 전역[2]한 크리스토퍼는 결국 성전환을 결심하였다. 군 시절의 동료들에게 쭈뼛거리며 커밍아웃했다가 받은 훈훈한 격려에 힘입어 SNS에 여자로 살 것을 선언하고 성전환 치료를 시작하였다. 이로서 벡은 크리스토퍼가 아닌 크리스틴이 되었다. 치료를 하면서 크리스틴은 가족과의 마찰도 많이 겪었지만, 영혼은 성별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며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며, 트랜스젠더와 성 소수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였다.Warrior Princess
그리고 2013년에는 PTSD 교육을 받다가 만났던 조지타운 대학교 의과대학원 정신과 전문의 앤 스펙하드의 도움으로 회고록 <Warrior Princess>를 써서 책으로 냈다. 스펙하드에 의하면, PTSD 상담을 예상하고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술집이 게이바였고 온다는 특수부대원은 드레스를 입고 와서는 5시간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 저술을 도와달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 전역했던 DEVGRU 대원 마크 오웬이 냈던 회고록 <No Easy Day>가 비밀 유지 서약을 깼다고 까이고 맷 비소넷이라는 본명마저 털린 것처럼 크리스틴 벡 역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책 내용은 그렇게 군사적으로 많이 민감한 내용보다는 자기 내면에 대해 생각하는 성격이라 많이 까이지는 않았고, 평론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특히 DADT 제도가 철폐되었음에도 트랜스젠더들은 군복무가 금지되는 것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물론 성전환자의 불안정한 신체조건은 군복무에는 부적합하다는 미국 국방부의 입장도 충분히 일리는 있지만, DADT의 완전한 철폐를 위해서는 그 문제도 어떻게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 또한 많았다.
2014년 9월에는 Lady Valor: The Kristin Beck Story라는 제목으로 CNN에서 다큐멘터리 영화가 방송되었고 여러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을 활발히 했지만 미군의 기밀문서를 위키릭스에 누출하여 징역 35년을 선고받은 뒤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첼시 엘리자베스 매닝에 대해서는 조국에 대한 맹세를 저버렸다며 일갈했다. 또 트랜스젠더 단체들이 매닝의 재판이나 구명운동에 괜히 참여할 것이 있냐, 매닝은 국가 기밀을 누출한 반역자일 뿐이라는 확고한 주장으로 인해 매닝의 지지자들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20년 군경력자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고, 매닝을 시대의 양심으로 보느냐 희대의 반역자로 보느냐는 성별 정체성과는 무관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의 매닝에 대한 감정이입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크리스틴의 주장도 틀린 것은 없다.
2015년 2월에는 2015년 11월에 실시되는 연방 하원의원 선거의 민주당 경선에 출마할 의사를 피력했다. 그런데 이 지역구( 메릴랜드 제5지역구)의 인물이 스테니 호이어다. 민주당 하원 원내부대표다. 1981년부터 메릴랜드 제5지역구에 말뚝을 박은 민주당 하원 2인자를 상대로 세대교체를 외치며 도전장을 던진 것. 그런데 호이어 의원은 딸이 동성애자이며, 평소에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등 성 소수자들에게도 나쁜 소리를 듣지는 않던 의원이라 왜 하필 거기 출마하냐는 말이 많다. 본인은 호이어 의원을 좋게 보지만 세대교체의 시기가 다가왔다고 본다는데일각에서는 다른 동네에서 출마하지 그러냐며 안타까워하는 모양. 어쨌든, 만약 경선을 뚫고 당선까지 된다면 크리스틴 벡은 연방 하원 최초의 트랜스젠더 의원으로 기록될 것이다. 허나 호이어 의원에게 결국 패하였다. (결과)
도널드 트럼프가 2017년 7월 25일 트위터로 트랜스젠더 군인의 입대를 허용치 않겠다고 선언하자, 지휘관들이 잘 하면 되는 문제를 트랜스젠더 장병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며 극딜했다.
4. 탈성전환
그러나 2022년 11월 탈성전환했다. # 그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탈성전환은 2017년 8월부터 시작되고 있었다고 한다. # Robby Starbuck와의 유튜브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는데 미국 제대군인부 의사가 자신을 면담한 지 1시간도 안 돼서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결정해 주었고 호르몬을 권했다고 한다.[3] 그는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들을 믿지 않으며 그들과 운동가들이 트랜스젠더를 증거기반보다 느낌으로 정의하며 그 기원은 트랜스젠더리즘의 아버지인 알프레드 킨제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킨제이는 트랜스젠더 연구와는 무관한 인물이다. 젠더 이데올로기 "종교"가 사회를 흔들고 있고 그들이(특히 CNN) 자신을 이용했고 의사들은 성전환 시장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으며 누군가 트랜스젠더가 되는 데는 관심병 기반, 트라우마 기반, 섹스 기반이 있을 뿐이며 25세 이전에는 의료적 성전환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소아,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트랜스젠더란 젠더가 아니라 섹스에 관한 것일 # 뿐이라고 주장하며, 10년 전의 결정이 자신을 파괴했다고 한다. 참고로 크리스 벡은 중년에 이르러서 자신을 "한때" 트랜스젠더라고 여겼던 인물이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트랜스제더로 여긴 이들이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것을 경험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트랜스 경험이라고 인형놀이 등의 일화를 이야기했지만,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에 의해 저런 사람들이 거짓말로 자신을 꾸민다는 것은 정신의학계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신의학에서도 성별 불쾌감에 대해 어린 나이에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조기발병과 늦은 나이에 증상을 호소하는 후기발병으로 나눠서 분석하고 있다. 탈성전환 선언 이후에는 사실상 반트랜스진영 스피커 노릇을 하고 있다.
[1]
그가 주장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우익 프로파간다에 대한 내용들
[2]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때려잡은
넵튠 스피어 작전에 참가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인된 바는 아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활개를 치는 마당에는 숨기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크리스틴 벡의 대외활동을 좋지 않게 보는 이들 중에는 "저
아줌마 빈 라덴 때려잡은 그 팀이었다며...
IS 꼴통들한테 해코지 당하면 어쩌냐..." 같은 걱정을 하는 의견도 꽤 있다.
[3]
정보에 입각한 동의 모델(informed consent model) 이라고 하는데 의료 접근권과 장벽을 없애고 자기결정권을 존종하는 차원에서 이문제에 해박한 전문의와의 면담과 동의 없이, 치료사가 부작용을 포함한 상황을 설명하고 환자에게 할지 안할지 선택할 권할을 주는 것이다. 어른이니까 알아서 결정하고 책임지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