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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07:28:18

쿠즈류 야이치

파일:용왕이 하는 일 한국 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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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즈류 야이치 히나츠루 아이 야샤진 아이 소라 긴코
키요타키 케이카 칸나베 아유무 쿠구이 마치 츠키요미자카 료 }}}}}}}}}

<colcolor=#fff> 쿠즈류 야이치
[ruby(九頭, ruby=くず)][ruby(竜, ruby=りゅう)] [ruby(八, ruby=や)][ruby(一, ruby=いち)]|Yaichi Kuzuryuu
파일:kuzuryuu.jpg
출생 2000년 8월 1일(19세)[1]
후쿠이현 오노시
별자리 사자자리
자격 프로 九단[2]
보유 타이틀 * 용왕(竜王)
* 제위(帝位)(14권~18권)
통산 타이틀 획득 이력 * 용왕 : 3기(29기-2016년/30기-2017년/31기-2018년)
* 제위 : 1기(2018년)
순위전 C급 2조(1권) → C급 1조(7권) → B급 2조(16권)
별명 쓰레기 용왕, 서쪽 마왕
가족관계 부모님, 형, 남동생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 우치다 유우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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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c3f32> 스승 키요타키 코스케 九단
사저 소라 긴코 四단
사매 키요타키 케이카 여류 3급
제자 히나츠루 아이 여류명적
야샤진 아이 여류 3관
샤를로트 이조아드 아마추어 1급
}}}}}}}}}

1. 개요2. 상세3. 작중 행적4. 성격 외
4.1. 여성 취향
5. 이력6. 인간관계7. 대국 스타일
7.1. 기사로서7.2. 스승으로서
8. 모티브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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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용왕이 하는 일! 주인공이며 직업은 쇼기 프로기사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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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6살 때 키요타키 코스케 九단의 내제자[4]로 들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과거 키요타키 九단과의 지도대국에서 탈탈 털린 이후 그의 쇼기에 반해서[5] 전국을 누비며 키요타키 9단과 대국을 하기 위해 쫒아다녔는데, 그 근성과 열정을 높게 평가한 키요타키 九단이 제자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했다고. 5권에서 키요타키 코스케의 언급으로는 그 지도대국 당시 야이치가 가진 재능이 너무 엄청나서 '큰일났대이~ 이 아이를 그냥 키웠다간 얼마 못가서 보은 당하고 말 거대이~ 라고 겁먹어[6] 야이치가 장려회에 들어갈 때 쯤에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사형이자 영세 명인인 츠키미츠 세이이치에게 맡기려고도 했었다고 한다. 이후 내제자 생활을 거치며 키요타키가 진지하게 대국에 임하는 모습을 TV중계를 통해서 보면서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모양. 7권에서 언급에 따르면 이때 키요타키 코스케는 기력 저하로 B급으로 떨어지면서 은퇴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무렵에 막 제자가 된 긴코와 야이치가 받을 충격을 감안해서 은퇴하지 않았다.

상술한 일화도 말은 장난스럽게 했지만 정확히는 '천재가 아닌 자신이 천재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를 걱정했던 것. 코스케는 야이치가 자신과 같은 단순한 프로기사가 아니라 쇼기계를 대표하는 최정상 프로기사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자신으로서는 정상에 섰을 때의 행동거지와 마음가짐을 알려줄 수 없기에, 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츠키미츠 세이이치에게 맡기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작품 초반 야이치가 용왕 등극 이후 슬럼프에 빠진 이유가 급격하게 바뀐 환경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기 때문임을 감안하면,[7] 이는 매우 정확한 통찰이기도 하다. 그러나 츠키미츠는 이 제안에 대해 거절하면서 야이치가 키요타키를 동경해서 쇼기계에 입문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그리고 이후 야이치가 슬럼프에서 벗어나 정상급 기사로 군림하게 되었으므로 츠키미츠의 통찰 역시 옳았다.

그리고 야이치는 대를 이어 제자를 세이이치에게 떠넘기려 했는데, 야샤진의 천재성을 스스로가 다 키워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똑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초등부 명인전 준결승에서 칸나베 아유무, 결승에서 츠키요미자카 료를 꺾고 사상 최연소 우승을 달성했고, 덤으로 이때 츠키요미자카 료 쿠구이 마치에게 플래그를 꽂았다. 이후 장려회에 입회하여 단숨에 유단자가 되었다. 입회 극초기엔 강등점도 붙고 좀 고생했다가 금방 극복했다는 언급이 있지만 중학교 3학년 때 3단 리그를 돌파하고 만 15세 2개월이란 나이로 사상 네 번째 중학생 프로기사(四단)가 되었다. 장려회 3단 리그에서 최소 준우승을 기록하거나,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기록해 차점 2회를 기록하면 四단으로 승단된다. 참고로 야이치는 쇼기계에서 가장 가혹하다는 현행 3단 리그가 생긴 이후 첫 번째 중학생 통과자이다.

열 여섯살 때(만 16세 1개월) 용왕전 본선 토너먼트에서 우승, 용왕전 도전자로 결정됨과 동시에 七단으로 승단했다. 3달 뒤에 열린 용왕 타이틀전 7번기에서 승리하며 사상 최연소로 용왕 타이틀을 획득, 명인과 함께 쇼기 기사 서열 공동 1위에 등극했다.

기전 서열 자체는 우승 상금이 가장 많은[8] 용왕전이 1위지만, 타이틀 홀더로서의 서열은 용왕과 명인이 동격(同格)이다. 이는 용왕전 창설 당시 명인전보다 격이 높은 기전의 창설에 반대한 역대 명인들의 승낙을 받기 위해 그런 식으로 절충했기 때문이다. #

참고로 용왕 명인은 다른 타이틀보다 특별대우를 받는데, 예를 들어 어떤 쇼기 기사가 여러 개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타이틀 수에 맞게 N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예:소라 긴코 여류 2관) 용왕이나 명인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그냥 '용왕'과 '명인'이라고만 불린다. 용왕과 명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해당 기사를 '용왕명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왕이 명인보다 서열이 높은 것은 아니다. 일단 상술했듯이, 용왕과 명인의 서열은 동격(同格)이고, 일본쇼기연맹에서 아마추어들에게 발급하는 단증에 서명할 때의 서명 순서는 오히려 명인이 용왕보다 앞서기 때문이다.(연맹 회장, 명인, 용왕 순) 게다가 용왕 타이틀은 2회 획득해야 九단에 승단할 수 있는 반면 명인 타이틀은 1번만 획득해도 九단으로 승단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용왕은 실질적으로 명인과 동격(同格)의 대우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뿐 아니라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한 도전기까지 올라기는 과정도 다르다. 용왕전의 경우 이론상으로는 가장 하위인 6조 출신도 그해 바로 용왕전 본선까지 올라갈 수 있으나, 명인전은 그런거 없이 처음으로 프로에 데뷔한 四단 기사들은 무조건 프리클래스, 혹은 C급2조부터 시작해야 하며, 명인 타이틀 획득까지 이론적으로 C급2조에서 한 번에 랭크업을 한다 쳐도 5년은 들게 되어 있다. 이것 때문에 순위전은 명인 타이틀 도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프로 리그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심지어 순위전 역시 다른 기전들의 도전기 리그와 마찬가지의, 어찌 보면 그보다 더 악랄한 시스템이 두 개나 더 존재한다. 바로 강등 시스템과 강제 은퇴 시스템이다. 이러한 용왕 타이틀 획득과 동시에 야이치는 八단으로 승단했다. 그러나 프로기사가 된 지 얼마 안 된지라 명인전 도전자 결정을 위한 순위전 리그에선 하위에 속하는 C급 2조라고 한다. 일본 쇼기계는 A급, B급 1조, B급 2조, C급 1조, C급 2조 총 5개의 클래스로 나뉘어서 운영되고 있으며, 프로기사로 갓 데뷔하면 가장 낮은 C급 2조에 배정된다. 승급은 1년동안 치러지는 순위전 성적에 따라서 결정되므로 각 클래스에서 1년마다 승급을 한다고 해도 A급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4년이 소요된다. 그리고 A급 순위전에서 1위를 해야 명인 타이틀 도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명인에게 도전하기까지 최소한 5년은 걸린다. 게다가 이 5년도 말이 좋아서 5년이지, 실제로는 C급 2조부터 무패에 가까운 성적으로 순위전을 돌파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쇼기 기사들에게는 거의 꿈의 영역이다.

처음 프로기사로 데뷔해서 순위전 A급에 오른 후 명인 타이틀에 도전하기까지 적어도 5년은 걸리는 명인전과는 달리 용왕 타이틀 도전자를 뽑는 리그전은 실력에 따라 6개의 조로 나뉘어서 운영되며, 다른 기전에 비해 승수만 잘 쌓을 수 있다면 젊고 프로 경력이 짧은 기사들도, 극단적으로 최하위 그룹인 6조 소속이라도 도전자 결정 토너먼트에 진출해 대활약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용왕전 리그의 경우는 여류기사라 해도 참가가 가능하기에 승수쌓기만 하면 타이틀에 도전해서 획득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열려 있다. 이것이 다른 기전과 용왕전의 가장 큰 차이. 당장 야이치 본인이 3단리그를 돌파한 직후 四단으로 프로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용왕전 리그 6조에서 올라와서 용왕이 된 것으로 언급된다. 이 와중에 만난 게 자신의 내제자이며, 첫번째 제자가 되는 히나츠루 아이. 즉 야이치 같은 어린 프로기사가 용왕이 되었다는 이 작품의 설정은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현실에서도 비슷한 나이대에 타이틀을 획득한 어린 기사가 몇몇 존재한다.

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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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격 외

초반부에는 세간의 평가에 신경쓰는 편이며, 자신의 대국이 끝나면 2ch에 올라오는 반응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제자를 들인 이후로는 정신적으로도 좀 더 성숙해지고 안정을 찾으면서 쇼기에서도 순항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세간의 소문에는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2부에 들어서는 오히려 너무 신경을 안쓴다. 명인을 상대로 용왕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이후 자신에게 '서쪽의 마왕'이라는 별명[9]이 붙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정도. 다른 이들과의 교류가 별로 없는 전형적인 외로운 늑대 타입인 오이시조차 6권 시점에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초반에는 인터넷상에선 매우 평가가 박했는데, 특히 본인의 이름과 타이틀을 조합한 말장난에 의해 쓰레기 용왕이라 불릴만큼 안티가 많았다. 용왕 타이틀 보유자라 그를 쿠즈류 용왕(쿠즈류 류오/九頭竜 竜王)이란 존칭으로 부르다보니 이게 쓰레기 용왕( 쿠즈 류오/くず 竜王)과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놀림. 사실 이 놀림은 야이치의 모티브가 된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이 용왕전 빼곤 다른 기전에선 성적이 매우 부진하자, 용왕전에만 집중하는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은데서 유래한 것이다. 다만 와타나베 九단이 이후 영세기왕에 오르면서 현재는 언급되지 않는 이야기.

쿠즈류는 용왕 타이틀 획득 후 공식전 11연패를 기록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6권에서 야이치의 독백에 의하면 용왕 타이틀을 처음 획득한 다음 해에 벌어진 첫 수 의식이었다.(1권의 시작 시점이기도 하며, 히나츠루 아이를 내제자로 두기 직전 시점이다.) 최연소 용왕이 되다 보니 간사이 연맹에 소속된 기사들이 첫 수 의식에서 야이치에게 "최연소 용왕에게서 한 수 배워보자고~" 라 하며 자신들의 최신 연구를 들이댄 것이 데미지가 되어 히나츠루 아이를 만나고 내제자로 두기 전까지 공식전 11연패로 온 것. 이런 핑계도 더해 '운이 좋아서 타이틀을 딴 녀석' 정도로 안티들이 폄하했고, 이것이 어느정도 사실이라는 것을 쿠즈류도 알고 있었다. 작중 언급을 모아보면 용왕 타이틀 획득 당시 확실하게 안 만난 A급 기사만 따져도 명인, 츠키미츠 세이이치, 오이시 미츠루, 나타기리 진, 오키토 요우로 5명이나 된다. 이런 식으로 용왕 타이틀 획득 당시 유명한 강자와의 대국은 별로 없었던 걸로 보인다.

그러나 용왕전의 치열함을 감안하면 신인인 야이치가 용왕 타이틀을 차지한 일은 놀라면 놀랐지, 폄하할 일이 아니다. 작중 다른 타이틀은 최소 11기(명인) 최대 24기(옥좌)를 보유한 명인조차 6기 밖에 못했을 정도로 치열한 기전이 바로 용왕전이다. 게다가 당시 갓 데뷔한 신인으로 최하위 랭크(순위전-C급2조, 용왕전-6조)인 야이치가 용왕 도전자로 결정되려면 실력은 둘째치더라도 강자들과의 연이은 대결(본선만 해도 6연전)에서 사실상 무패에 가까운 성적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실제로도 6조 우승자의 최고 성적은 4강으로 용왕은 커녕 도전자 결정전에 조차 진출한 적이 없다.

다른 이유로는 용왕전을 제외한 다른 기전의 성적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는 점도 있다. 1권에서 승률 30%인 쓰레기 용왕이라고 언급되는데, 이때 야이치는 용왕전에서 최하위 랭크에서 시작해서 용왕 타이틀을 차지했으니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승수를 쌓았을 것이고, 제위전은 패배가 많기는 해도 일단 리그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이는 곧 예선을 돌파했다는 말이니 예선에서 어느 정도 승수를 쌓았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승률이 30% 라는 건 용왕 타이틀 획득 후 공식전 11연패를 빼더라도, 용왕전과 제위전 그리고 강등점 이야기는 없는 순위전을 제외한 다른 기전에서는 1회전 탈락 수준의 형편없는 성적을 기록 했던 걸로 보인다. 게다가 7권에서 (전년도 성적에 의해 정해지는) 순위가 38위로 낮아서 전승이 아니면 승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 있었던 점과 신인전 1회전 탈락 등의 언급을 모아보면, C급2조와 五단 이하의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딱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작중 언급되는 '신용'을 쌓기 전에, 다시말해 강자로 인정받기 전에 덜컥 타이틀을 획득해버려 폄하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다만 아유무에 따르면 야이치가 자기보다 승률과 레이팅이 낮은 이유는 타이틀 보유자이기 때문에 각종 기전에서 예선이 면제되고 강자들과의 대국을 벌이다보니 '이기고 올라오는' 대국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두 제자인 히나츠루 아이 야샤진 아이를 받아들이고 둘이 귀여움과 천재적 실력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면서 제자들의 팬들로부터 질투를 받는 바람에 로리콘이라는 말까지 듣는 중이다. 또한 이름이 야이치(八一)이고 현재 8단이라 합치면 818단이 되며 이것도 네타거리로 작중 인터넷에서 놀림받기도 한다.

본인의 자학적 지문과 험하게 또는 장난감처럼 대하는 가까운 사람들, 헤타레같은 모습이 작품 전체에 널려 있어 느낌이 잘 안오지만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천재이며, 쇼기에 임하는 자세 또한 매우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5권에서 명인이 "쿠즈류 용왕은 그 누구보다 강한 기사이며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승리를 장담 못하는 상대이다."라고 말할 정도. 천재적인 쇼기 실력을 겸비한데다 어린 나이에 용왕 타이틀을 딴 커리어가 있으니 쇼기계에선 인기인이자 상급자 취급으로, 히나츠루 아이와 야샤진 아이, 키요타키 케이카가 참가한 마이나비 여자 오픈[10]에 세 사람을 대회장에 보내고 나서 구경 삼아 혼자 어슬렁거렸더니 대회 관계자들이 발견하고는 급히 귀빈석과 내빈용 꽃을 준비하느라 허둥거리기도 했다.

친구인 칸나베 아유무의 영향도 있어서 초등학생 쇼기 꿈나무들에게는 '드래곤킹'이라 불리며 소년소녀 불문하고 매우 인기가 많다. 본인도 싫지 않은지 '나쁜 짓'을 할 때는 자신이 '악의 용왕'이라며 기세를 붙인다. 공주님을 납치해서 제자로 삼는다거나, 전국민이 기대하는 명인의 국민영예상 수상을 저지하여 기다리던 높으신 분들과 일본 전체를 좌절시킨다거나. 명인과의 용왕전 이후에는 도쿄 쪽 기사들 사이에서 서쪽의 마왕이라는 포스 넘치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단순히 별명만 붙은 정도가 아니라 정석을 파괴하는 수를 두는 탓에 고참 기사들은 두려움을,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는 압도적이 재능 차이 때문에 절망을 안겨줄 정도였으며 간토에 소속된 장려회 회원들은 긴코의 쇼기를 보면서 야이치에 대한 경외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정도다.

쇼기 자체에 대해서는 사회에 도움되는 것 없는 '놀이'라는 자괴감도 지니고 있다. 히나츠루 료칸에 방문했을 때 아이의 팬인 동네 어른들이 쇼기꾼이라니 요리사만도 못하지 운운하며[11] 대놓고 들리게 뒷말을 했을 때 한 마디도 반박 못하고 찌그러들었을 정도. 그러면서도 쇼기를 그만둘 수는 없다고, 쇼기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벗어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습은 착하고 재주 많은 사람일수록 쇼기의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다거나 쇼기기사는 쇼기반에서는 다음 수를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자학적 지문으로 자주 나타난다.

작중 설정에 따르면 위에 언급된 커리어 덕분에 현재 상금 및 대국료 순위도 상위 3등에 랭크될 만큼 아주 잘 벌고 있다. 야이치가 지난 2년 동안 프로기사로 활동하면서 번 금액을 대략 추정해 보자면 용왕 타이틀 획득+방어 성공 상금 8,400만 엔+용왕 타이틀 획득을 위해 올라갔던 승리들 중 도전자 결정전 승자의 상금은 350만 엔이고 그 외 여타 대국료 등을 포함하면 1억 엔에 가깝다.[12] 야이치 본인은 '일반적인 샐러리면 평균 평생수입의 두 배를 벌어놨으니 이제는 돈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집에는 매우 비싼 쇼기판&쇼기말 세트가 있는데 차 한 대 가격인 거 같다. 보통 이런류의 물건들이 최고급 목재를 사용해 장인이 100% 수작업으로 만드니 비싼게 당연한데[13] 야이치의 언급에 따르면 아직 할부가 안 끝났다고. 그런데 히나츠루 아이가 긴코한테 진 게 분해서 쇼기말을 깨물었다가 젖니가 부러지고 말에는 흠집이 생겨서 야이치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있었다. 물론 쇼기말보다는 아이 걱정이 먼저였고, 앞니가 빠진 모습을 야이치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히나츠루의 모습도 볼거리다.

'대국 스타일'란을 보면 알겠지만, 천재 중의 천재임에도, 본인은 그걸 잘 자각하지 못한다. 특히 6권 이후로 이런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예를 들어 본인 생각으로는 이제 슬슬 서반이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한판 붙어 볼까 하는 시점에서 상대방이 항복해오자 오히려 놀라거나 한다. 다른 사람들 생각으로는 상대방이 용왕의 맹공을 받아 도저히 더이상 둘 수 없는 상황인데 본인은 이제 좀 몸이 풀렸으니 본격적으로 해보자라는 식으로 쇼기별 왕자답게 생각에 괴리가 생겼다. 이외에도 이전에는 나타기리 8단에게 심리적으로 눌려 3연패를 할 정도로 힘을 쓰지 못했지만, 각성 이후에는 나타기리와 대국 중 재밌는 수가 생각났다며 즉석에서 생각해낸 전법을 실현하는 등 6권 이후로는 정말로 쇼기계 최정상권에 오른 값을 하고 있다. 당장 6권 이후로는 패배가 자오 9단에게 당한 1패 밖에 없을 정도고 그것도 각성 이후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가늠을 하지 못한 탓에 자오 9단에게 허를 찔린 것이다. 13권에서는 아예 기사들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프레셔를 느낀다는 묘사가 있다. 강한 기사일수록 같은 공간에 있기 힘들어 할 거라고. 오히려 자신의 재능은 괴물급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제자들 대단하다며 감탄하며 박수치는 거 보면 여자의 문제에 대해서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둔감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자세히 되돌아보면 자조의 극에 달했던 1~5권에서조차 쿠즈류가 제자들이나 아이들, 여류기사들을 잘 둔다고 평가하는 장면은 많지만 정작 같은 프로기사들을 잘 둔다고 평가하는 묘사는 매우 드물다. 막말로 명인이나 라이벌인 아유무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이는 제자들이나 여류에 대해서는 잘 둔다고 평가하는 기준치가 낮지만 자신과 동급인 프로 기사들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조적인 성격에 녹여서 내리는 이런 냉정한 평가는 독자들 사이에 있는 야이치가 기만자란 이미지를 더 강하게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자신은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들이 얼마나 어려운 것들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6권에서의 긴코 같은 경우는 멘탈 챙겨야 할 때 '아. 이거는 이렇게 하면 돼요. 간단하죠?' 그래대서 멘탈 깨지고 공교롭게도 이 부분은 야이치의 두 제자인 히나츠루 아이, 야샤진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히나츠루 아이의 경우는 4권의 마이나비 여자 오픈 챌린지 매치 때 아이와 대국한 샤쿠시 토모에 여류 2단이 그 희생자. 수 한번 잘못 뒀다가 순식간에 털리고 감상전에서 아이를 상대로 실수로 졌다며 그런 무모한 수로는 안 된다느니, 나도 과거에는 그런 식으로 뒀다느니 허세 좀 피우다가 히나츠루 아이 아마추어'간단하면서 친절하고도 잔인한' 외통수 지적에 아예 멘탈이 박살나서 첼린지에서 조용히 탈락했을 정도. 야샤진 아이는 종반력이 형편없다고 평가절하한 로쿠로바 타마요 여류 2단과의 대국에서 별 말도 없이 수를 집어넣는데, 이게 타마요에게는 정말 압박 그 자체다.

본인이 잘 인지하지 않지만 여성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이다. 긴코는 물론이고 료, 쿠구이, 이카 같은 여류기사들에게도 노려지는 대상이다. 그 외에도 어린 시절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들이 야이치에게 접근했다가 긴코에게 박살나고 접는 경우가 빈번했다. 야이치가 타마요에게 나같은 미남 프로기사가 스캔들이 나면 여성 쇼기팬들이 실망하지 않겠느냐고 드립을 쳤을 때, 쿠구이가 인정하고 넘어가거나 또 긴코가 넷상에서 야이치랑 여친처럼 군다고 시기를 받았다고 이야기한걸 보면 외모도 꽤 빼어난 모양이다. 심지어 야이치는 긴코 때문에 살해협박도 당한적이 있다고 항변했다. 이카와의 미묘했던 관계도 인터넷에는 쫙 퍼져버렸으며 사귀다 깨진 취급 받고 있는데 거짓말은 아니긴 하다. 결국 결론은 로리콘으로 수렴된다.

4.1. 여성 취향

다른 라노벨 주인공이었으면 '역시나 둔감 속성 장착 중인 놈이구나~' 정도로 넘길텐데 이 녀석을 보고 있으면 '너무 천재여서 둔감한 건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모로 대단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이다. 꾸준하게 자신에게 있는 건 쇼기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은연중에 품은 열등감이 아니었다면 6-7권에서 긴코와 선을 넘었을 수도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절대로 로리콘이 아니다. 히나츠루 아이 야샤진 아이를 사랑스러운 제자로 보기는 하지만, 이성으로 본 적은 한번도 없다. 히나츠루 아이가 6권에서 어머니로부터 배운 수법으로 야이치를 유혹했을 때도 나온다. 이 사건으로 야이치는 두 아이가 자립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각각 선물을 하나씩 준다. 그것이 히나츠루 아이의 쇼기반과 야샤진 아이의 쇼기말이다.

여성취향은 키요타키 케이카 쿠구이 마치와 같은 연상의 글래머. 특히 케이카에게는 야이치가 간간히 대시하고 있다. 다만 이건 사랑이라기보다는 미인 누나에 대한 동경에 가깝다. 애시당초 이 놈은 고작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사귀어 본 적도 없으니 사랑에 눈을 떴다고 보긴 어렵다. 아직 중요한 것은 쇼기 정도인 소년일 뿐이다. 실제로 야이치는 6권에서 일단은 쇼기 외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정말 진지하게 케이카에게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11권 긴코에게 고백할 때, 긴코 외에는 사랑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한다.주변에 기 센 여성들밖에 없어 휘어잡히기도 하지만 본인도 남 돌봐주기를 잘한다.

하지만 오해받을 구석은 더럽게 많다. 로리에 하악거리지 않는다면서 장래 희망은 소아과 의사였다고 하는 인간이니 뭐 굳이 저런 장래희망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면 어린 시절 긴코를 돌봐주던 장려회 3단 출신의 의사가 소아과 의사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지만 하필 그 타이밍에 그 말을 하고 있으니 오해받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무슨 로리 전용 페로몬이라도 흐르는 건지 로리들이 자석에 이끌리는 사철처럼 그의 주위에 모여든다는 것. 두 제자와 여초연, 특히 샤를로트 이조아드, 심지어 두 살 짜리인 하나다치 아자미의 딸 사쿠라까지 좋다고 모여드는 판이다.

12권 감상전에서 다른 기사의 발언을 빌려서 '용왕의 시점으로 된 이야기가 있다면 본인 입장에서는 진실일지라도 옆의 주변인들에게는 아니다'는 발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주인공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점 차이를 보여준다.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면 로리콘이 맞다.

사실 야이치와 아이들의 나이 차이는 고작 7~8세 정도다. 5~6살만 더 먹었어도 그다지 문제가 안 될 테지만[14] 어려서부터 경력이 시작되는 경우가 수두룩한 쇼기계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긴코만 해도 2세, 야이치는 4세부터 쇼기를 시작했다. 히나츠루 아이만 해도 9세에 입문했어도 늦었다고 야이치가 한탄했을 정도였다.

5. 이력

6. 인간관계

잘 부각이 되지 않을 뿐이지 열여섯이면 한창 사춘기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람됨됨이는 확실한 인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등장인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야이치가 싫어하는 인물은 있어도 야이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그의 재능과 인품에 매료된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꼬이고, 이와 관련된 치정싸움이 발생해 야이치가 휘말려 이런저런 고생을 한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관심은 있을지언정 쇼기에 집중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이성교제나 여심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쑥맥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변 이성들의 돌발행동에 두근거리는 등 예전보단 관심을 두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는 있지만, 쇼기밖에 없는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온갖 것을 지닌 절벽 위의 꽃이라는 자격지심이 발동해서 물러서 버리기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는 게 대부분이다.

7. 대국 스타일

7.1. 기사로서

“쿠즈류 용왕은 현재, 그 누구보다 강한 기사입니다. 제가 전력을 다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예요."
명인[26]
“긴코 양도 나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재능을 접하고 살았어. 나는 키요타키 선생님의 집에서 들락거리던 시절에 그와 장기를 둔 적이 있는데, 그는....... 그는 극약이야. 차원 자체가 달라......"
▶ 아카시 키요시[27]
그야... 그딴 건 인간이 아니잖아요?
"애시당초 쿠즈류가 본격적으로 소프트를 연구에 도입한 것이 1년도 안된다는 것이 이상하다구요. 그 후로 그 녀석 뭘 했죠? 각교환에 혁명을 일으켰죠.[28] 계단기 뛰기를 했다 라고 생각했더니[29] 몰이비차에 싱글벙글 삼간비차라는 영문도 모르겠는 전법을 성립시키고[30] 이번엔 뭘 하나 봤더니 컴퓨터를 초월했죠.[31] 그 모든 것이 1년도 안되는 기간만에 이룬 것이에요. 오키토 선생님이 수년을 걸쳐도 할 수 없을 법한 것을요. 우리같은 젊은 프로기사가 평생을 걸쳐도 할 수 없을 법한 것을 자연스럽게 해버리죠. 그 사상 최연소 용왕은 아니... 그 마왕은"
▶ 후타츠즈카 미라이[32]
"지금까지는 별명이 없었어. 다들 붙이려고 하지 않았지. 그는 이제까지 장기계가 천재라 인정한 존재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거든. 옛날에는 말이지? 천재를 정의하자면, 다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수를 두는 사람을 말했어. 명인이 종반에 보여주는 마술처럼 말이야. (중략) 그는 말이지? 넘어서 버려! 소프트가 알려주는 것 이상의 수를 두는거지. 인간이 보기엔 비정상적인 소프트의 수를 넘어서는 거야. 그 자리에서는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집에 돌아가서 소프트에 수를 입력해 보면 야이치 군의 진정한 재능을 깨닫게 돼...... 하지만 소프트가 가르쳐 주는 것에 익숙해진 프로 기사는, 그를 넘어설 수단을 찾을 수 없어."[33]
"쿠즈류 노트에 그렇게 써 있었으니까. 야이치군에게는 나도 명인도 계속 자극 받고 있어. 이번 명인전은 누가 야이치를 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싸우고 있는 격이야."[34]
▶ 나타기리 진
프로기사들은 그 기척에 위축했다. 마치 초등학교 여학생같이... 우스이조차 야이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거대한 용의 눈에 띄는 것을 무서워 하는 것처럼
▶ 17권

용왕이라 불리는 천재 주인공 포지션답게 천재들이 넘쳐나는 프로 쇼기계에서 독보적인 포텐셜을 보이는 천재 기사. 작중 야이치에 대해 농담이나 도발으로라도 '재능이 없다'는 말은 나온 적이 없다.

초반의 야이치가 왕이 되고 나서 11연패 중이었으니 자신감이 심하게 결여된 상태고, 도전자가 아닌 타이틀 홀더라는 점에서 오는 부담감 등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거기다 이런 고민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이런 처지에 타인의 재능을 띄워주는 서술이 많아 체감하기 힘들지만 야이치의 재능을 능가하는 기사는 작중 한 명도 없다. 스승인 코스케는 야이치와 처음 대국을 두었을 때, 아무리 늦어도 중학생 때는 프로기사가 될 것이며 이 아이가 쇼기의 마침표[35]를 찍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 코스케의 생각은 야이치가 중학교 3학년 때 프로기사가 되어서 이 말은 현실이 되었다. 다만 아무리 늦어도라는 전제를 단 것을 보면 코스케는 야이치의 재능을 그 이상으로 생각했던걸로 보인다.

아홉살 때는 츠키미츠와 아마추어 명인 야사진과의 대국 기록담당을 하면서 둘 모두 알지 못했던 23수 연속 장군을 알아채서 명인을 뛰어넘는 재목일지도 모른다는 평을 들었다. 기본적으로 어떤 스타일도 잘 구사하는 만능형 기사이며[36]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완벽한 올라운더이자, 현재 디지털 쇼기의 경지에 가장 근접한 기사. 오키토 요우와의 제위전 제1전에서는 오히려 컴퓨터를 능가하는, 인간만이 둘 수 있는 수를 둠으로써 오키토를 꺾었다. 디지털 쇼기에서 야이치가 오키타 제위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있다는 것인데 사실 야이치 쪽이 젊은 축이라 컴퓨터에 더 익숙하다고는 하지만 더 오래 컴퓨터 쇼기를 연구해 왔을 오키타 제위보다도 컴퓨터와 쇼기 양쪽에 대해 더 높은 경지에 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두 제자의 상위호환 격이다. 작중 히나츠루의 특출한 수읽기 묘사 때문에 묻히는 편이지만 야이치도 수읽기에 강하다. 히나츠루 아이의 수읽기가 여러개의 머리속 쇼기반, 즉 병렬사고로 최대한 많은 패턴을 분석하는 물량 수읽기라면 야이치의 수읽기는 그 상황에 최적화된 수를 찾아내는 인공지능의 딥러닝과 같은 수읽기라 볼 수 있다. 요컨데 더 효율적으로, 더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것. 1권부터 묘사되었고 5권의 용왕 타이틀 방어전 제4국 때는 '너무 수가 잘 읽혀서' 궁지에 몰려 있던 상황에서, 명인이 신중하게 수를 고민하는 찰나의 수분만에 기어코 외통수를 찾아낸다. 심지어 당시 야이치는 제한시간을 모두 사용해서 1분안에 다음 수를 둬야만하는 상황(일명 '1분 쇼기')이었는데, 너무 수가 잘 읽히는 나머지 아차하는 순간 수읽기에 들어가서 제한시간인 1분을 초과해 버릴 상황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기르기 위해 앉은비차파로서의 고집도 버리고 몰이비차를 배웠고 배운 뒤 바로 다음 대국에서 쓰는 등 전술의 학습력도 빠른 편이다. 이 역시 5권의 용왕전에서 여실히 드러나 1국에서는 힘겹게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다 2~3국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따라가고 4국에서는 비겼으며 재경기서는 이겼고, 5~7국은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언급이 있다. 물론 본인은 앞서 서술한대로 멘탈관리에 서툴러서 많이 힘들어 했지만 야이치의 학습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야이치가 보는 자신의 재능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야이치의 재능의 관점 차이는 작중에서도 자주 대조되는 편인데, 은근 잘 부각되지 않지만 사실 중요한 묘사가 5권에서 명인과의 승부 당시 나온 적이 있다. 야이치는 1~3국 내내 자신이 꼴사납게 패했다고 스스로 보잘것 없는 존재였다며 자학했지만, 케이카의 시점에서 봤던 1국과 3국은 야이치도 명인 못지 않게 잘 싸웠다고 묘사된다. 실제로 1국은 츠키미츠 세이이치 영세명인조차도 그 상황에서 선수(先手)가 불리해질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명인이 그동안의 쇼기를 뒤집어버리는 수를 들고나와서 그렇게 된 것이고, 특히 3국은 둘 모두 1분 대국까지 갔던데다가 야이치가 시간만 있으면 분명 장군을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상황인 만큼 접전이었다. 야이치는 자신과 명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통곡의 벽을 체감했지만, 일반인의 눈에는 그냥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로 보였던 것이다. 특히 야이치 자신이 역대급으로 추한 꼴을 보였다며 심하게 멘붕한 3국은, 케이카 시점에서 이전보다 강해진 야이치가 명인을 이기기 직전까지 간 아까운 승부였다고 평가된다. 명인에게 궁지에 몰리는 와중에도 야이치는 계속 강해지고 있었고, 이를 본 케이카는 이미 야이치의 재능은 명인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 보았으며, 4국째부터는 명인을 이길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들이맞았다. 케이카는 자신이 천재도 고수도 아니지만, 오히려 스스로가 범재임을 인정하고 있기에 냉정히 볼 수 있었다고 독백한다.

초반 전술은 선수일 경우 서로걸기, 후수일 경우 한 수 버리기 각교환을 즐겨 사용한다. 이것이 두 제자에게 나누어져 이어졌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러다가 5권에서 명인과의 대결을 기점으로 야이치의 수읽기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게 되고, 이후부터 컴퓨터란 요소가 새로운 변수로 부각된다. 작가가 초기 구상은 5권까지였고, 불안했던 신진 기사의 정상권 등극기가 주로 펼쳐지던 전개였다. 6권부터는 신전개로 돌입하면서 야이치의 쇼기도 약간 전개에 맞게 변경되었다. 5권까지 컴퓨터 쇼기는 주류하고 거리가 먼 형세판단 정도에만 사용되다가 주요 연구주제로 다뤄지면서 컴퓨터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덕분에 한수버리기 각교환과 올라운더라는 야이치의 쇼기 특징에 컴퓨터 기반의 이질적인 쇼기 스타일이 추가되고 크게 부각되는 중. 다만 정 고집을 버렸다지만 몰이비차보다는 앉은비차 쪽을 좀 더 좋아하는 것은 남은 듯하다.

주로 엄청난 수 읽기 능력과 빠른 습득능력 정도만으로 묘사되던 야이치의 능력은 이제 명인의 쇼기로 대표되던 구 체계를 배격하는 컴퓨터 기반의 새로운 쇼기를 누구보다 잘 구사하고 실현하는 능력으로 비춰진다. 용왕전 직전과 용왕전 당시에는 신의 한수, 쇼기의 답 등을 찾는 것을 논하다 용왕전 직후 시간 간격이 한두 달도 차이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에 추구하던 것을 싹 치워버리고 컴퓨터로 도배함을 고려하면 작가가 다소 급격히 전개를 비튼 게 체감될 정도. 아무래도 체스나 바둑 등에서 컴퓨터가 패러다임을 장악하듯 쇼기도 이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 더 이상 작가가 시류를 모른 척하기 힘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복선 자체는 5권부터 깔아두고 있었는데, 용왕전에서 명인에게 3연패를 당한 야이치가 스스로를 믿지 못한 나머지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를 상대로만 연구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 당시에는 컴퓨터에 의존하는 모양새가 다소 부정적인 느낌으로 묘사됐지만, 6권부터는 이 때의 경험이 그를 괴물로 각성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식으로 언급된다. 사실 이때 야이치의 문제는 실력 그 자체보다는 정신적인 문제로 쇼기 실력만큼은 케이카가 말한 대로 일취월장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정작 본인이 자기 실력에 확신을 두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7권에서 쿠누기 소타는 야이치가 두고 있는 쇼기는 컴퓨터가 구사하는 쇼기에 가장 가깝다고 발언했다. 소타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 쇼기는 인간의 연산능력으로 수를 다 읽을 수 없으니 방어를 강화해서 수읽기를 줄이고 나머지로 쿡쿡 찌르듯이 싸우는 것이며, 위부터 아래까지 같은 사상을 공유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전술만 발전시키고 있으니 위아래가 고정된 봉건제도가 되었다고 거하게 까댄다. 명인마저도 "그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자신이 만든 것은 없다."고 비판할 정도. 반면 야이치는 적진에 뛰어들어 방대한 수읽기로 아슬아슬하게 방어선을 유지하면서 나머지를 전부 공격에 투입하며, 소타가 과거부터 야이치를 잘 따르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수읽기 자체가 컴퓨터 형식인 소타로서는 자신과 같은 세계를 보는 사람이 야이치밖에 없는 것. 심지어 6권에서 소라 긴코를 멘탈붕괴 시킨 부호로 이루어진 쿠누기 소타의 머릿속 쇼기판을 야이치는 명인과의 용왕전 즈음 시작한 컴퓨터 쇼기로 비슷하게 습득하기 시작했다. 쿠누기는 처음부터 컴퓨터를 통해 쇼기를 습득했기 때문에 쇼기와 컴퓨터를 연계하는데 익숙하지만 야이치는 명인전을 계기로 폭발하는 수읽기를 대응할 만한 게 컴퓨터밖에 없어서 컴퓨터로 연계한다는 느낌. 그렇긴 해도 6권 이후 야이치의 모습은 컴퓨터 쇼기보다는 야이치의 실력 그 자체가 더 강조된다. 컴퓨터 쇼기를 둔다기보다는 아예 머리 자체가 전뇌화가 되었다는 느낌으로 필요할 때마다 머리 속 데이터에서 쇼기 수법을 꺼내다 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오히려 세간의 컴퓨터를 이용하는 쇼기는 오키토 요우나 쿠누기 소타, 카라코 쇼지같은 기사들이 구사하는 편이었다.

야이치도 스스로가 쇼기계에서 가장 수읽기가 빠르다고 단언하였고, 컴퓨터의 전술을 '신이 사용하는 마법을 인간용으로 마이너 어레인지하는 느낌으로' 연습 중이다. 이게 어지간한 상대는 즉사시켜버려서 친구이자 젊은 기대주인 칸나베 아유무 정도가 아니면 연습조차 안 될 지경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야이치가 "자 이제 슬슬 몸을 풀었으니 이제부터 중반전이다!"하는 시점에서 상대방은 이미 떡실신이 된 상태였다. 명인과의 대국 전까지 야이치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 아유무에게 제시할 것이 없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건만, 그것이 대국 후 완전히 바뀐 것. 대국마다 기존 정석을 완전히 깨부수면서 돌풍을 일으키는지라 고참 기사들 중에는 당혹해하다 못해 공포에 질린 사람까지 있고 그간 신나게 야이치를 씹었던 팬들도 실력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그러다가 순위전 C급 2조 최종국에서 이 대국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최고령 기사 자오 타츠오 9단[37]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패배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당시의 정석으로 대처가 가능하여 사장되어버린 수가 지금은 정석이 바뀌면서 대처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인데, 야이치는 얼마 전 관계자들 앞에서 자기 입으로 이젠 한물 갔다는 식으로 말한 망루 싸기가 순위전같은 장시간 대국, 특히 절대 져서는 안되는 대국에서는 믿음직하다고 생각해 선택했으나 패하고 말았다. 쿠누기 소타는 재능만 놓고 보면 야이치가 명인보다도 뛰어난 것 같은데 현대 쇼기가 오히려 야이치를 약하게 만들었다며, 그 사람은 정석을 배우지 않는 편이 낫다고 평가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쿠누기 소타는 긴코가 보는 앞에서 현대 쇼기를 '단순한 수읽기 과정의 생략'이라고 하면서 대차게 깠다.

대국 후 자오 九단의 발언에 따르면 자오 九단 본인, 그리고 세이이치 9단조차도 비슷한 방식으로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베테랑한테 진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자오는 3분, 세이이치는 7분, 야이치는 14분 동안 버티다가 투료했는데, 자오는 그 14분이 야이치의 재능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야이치는 긴코를 찾아가 용왕이 이런 꼴이어서는 안된다며 거의 절규하듯이 울었다. 승부욕보다는 용왕 타이틀 홀더로서의 책임감이 너무 컸던 것이다. 스승인 키요타키 코스케 九단이 자책했듯 타이틀 홀더로서의 태도를 가르치지 못한 것이 야이치의 비교적 약한 멘탈과 안좋은 방향으로 시너지를 일으켰다.

본작에서는 1~2권부터 꾸준히 컴퓨터와 인간을 비교한 바 인간이 컴퓨터에게 지는 패턴이 초반에 우세하다가 중후반에 수읽기에서 밀려 패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히나츠루 아이의 승리 패턴과 유사하다는 점도 비교대상. 아이는 '후반에 이길 수 있으니까 됐어'라는 느낌으로 초반에 좀 밀리다가 후반에 압도적인 수읽기로 역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방대한 수읽기를 하는 독특한 묘사까지 있으니 더더욱 연관성을 보인다. 야샤진 아이 역시 야이치 스타일인데다가 히나츠루의 공격을 가볍게 회피하는 대국이 작중에서 나오는 등 '쿠즈류 일문'의 공통적인 스타일이 되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참고로 야이치는 쿠구이 마치의 기풍에도 영향을 미친 적이 있다. 초등학생 명인전 준결승에서 료에게 져서 울고 있던 마치에게 재밌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료와의 결승전에서 특이한 동굴곰 전법을 써서 승리한 것이 쿠구이 마치의 이후 기풍을 정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38]

야이치가 주인공이다 보니 야이치의 시점에서 다른 기사들이나 제자들의 대국을 감탄하는 장면이 나와 부각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야이치는 재능이 전부인 쇼기계에서 괴물이라 평가받는 천재다. 11권에서 긴코의 담당의였던 아카시가 야이치의 재능에 대해 극약이라며, 이를 보고도 꺾이지 않고 3단까지 올라온 긴코의 정신력은 대단하다며 간접적으로 한번 언급하고, 12권 감상전에서 후타즈즈카 미라이가 대놓고 같은 세대라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야이치의 재능은 프로기사들마저도 좌절감을 느끼게 할 정도라는 것. 학습 속도, 수읽기, 디지털 쇼기같은 이질적인 기풍, 상성을 타지 않는 올라운더 스타일 등 멘탈의 기복만 제외하면 동년배 기사들은 물론이고 다른 타이틀 홀더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이다. 당장 야이치보다 어린 프로기사는 없으며, 비슷한 나이대에서 그와 비벼볼만한 기사는 2살 위인 칸나베 아유무가 유일하다. 그러나 나중에 쿠누기 소타라는 사기 캐릭터의 등장으로 최강의 재능, 최연소 프로기사 타이틀을 물려줄 가능성도 적진 않다.

덤으로 긴코가 자신을 지구인에, 진짜 천재 프로기사들을 쇼기별 사람들에 비유했는데, 이 때 야이치를 가리킨 표현은 쇼기별 왕자님이었다. 야이치에 대한 긴코의 콩깍지를 떼고 봐도 실로 적절한 표현이었다.

7권에 나온 레이팅[39]은 1881점으로 4위다.(1위는 명인, 2위는 오키토 요우 제위, 3위는 칸나베 아유무)

참고로 7권 시점에서부터 관동 기사들이 야이치를 두려워하며 어떤 별명으로 부르고 있지만, 정작 야이치는 그게 뭔지 모른다.는 떡밥이 있다. 12권에서 밝혀지기로 '서쪽의 마왕(西の魔王)'. 별명에 대한 떡밥은 6권에서 오이시 미츠루의 대사 중 "이걸 하룻밤 만에 생각한 거냐? 진짜로 ......왕이군"로 복선이 주어졌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대로라는 반응. 참고로 긴코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7.2. 스승으로서

아직 17세에 프로에 데뷔한 지도 얼마 안된 신진 기사지만 제자를 키워내는 능력도 경험 부족이 문제일뿐 천재적이다. 첫번째 제자인 히나츠루 아이의 경우 첫만남에서 아이의 재능[40]을 간파하고 이 능력을 어떻게 키울지 파악했다. 10권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단순히 아이의 종반력 자체에만 주의를 기울인 게 아니라, 아이가 쇼기를 배운지 3개월뿐이라 서반전술과 정석을 몰라 위기 상황에 처해 종반력을 무지막지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순수함이란 포텐셜까지 내다보고 일부러 서반 정석을 최소한만 가르치고 묘수풀이와 여초연을 통해 교육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종반에 재능이 있더라도 서반 전술과 정석을 배우면 정작 위기 상황에 들어설 가능성이 적고, 결과적으로 종반력이란 재능을 키울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서반과 정석을 가르치지 않은 것. 여초연 역시 단순히 친목도모 목적이 아니라 접쇼기를 통해 처음부터 열세인 상황에서 주도적인 공격을 가능하게+아마추어 다운 공격적인 쇼기에 익숙해져 정석보다 종반력의 재능을 키우도록 유도했다.

두번째 제자인 야샤진 아이인 경우 창의적인 서반전술과 구상력을 첫 대국에서 파악, 또한 야샤진 아이의 쇼기에 아이의 부모님의 기풍이 순수하게 남아 있는걸 파악해냈다. 이는 야샤진 아이가 홀로 부모님이 남겨준 기보만 보고 인터넷 대국 외에는 다른 사람과 대국을 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데, 이미 어느 정도 기력면에서 완성된 야샤진 아이를 위해 신세카이 내기 쇼기 도장에서 실전 경혐을 쌓게 해주는 식으로 순식간에 타이틀 도전자급으로 성장시켰다. 덤으로 야샤진 아이가 부모를 여읜 탓에 주변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것도는 점, 멘탈적인 문제 등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사제간의 정을 나누는 식으로 안정시키는 등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스승의 모습이다.

여초연 멤버들 역시 묘사는 적지만 환경에 익숙해지는 방법, 옥을 지키는 구상을 암기해 공격력을 올려 단기 대회에서 성적을 내도록 만드는 등 스승으로써 탁월한 모습이다.

다만 야이치 역시 프로기사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엄격한 면모도 있다. 히나츠루 아이가 미오와 대국에서 승리하고도 역으로 과로워 슬퍼해 울어버리자 쇼기는 결국 승패가 나뉜다며 쇼기의 냉혹함을 가르쳐주거나, 그런 아이의 재능을 위해 여초연이나 여류기사, 아마추어 선수[41]들을 경험치 취급하거나, 쇼기판에서는 결국 혼자 싸울 수밖에 없음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그래서 10권에서 귀여운 아이들을 경험치 취급해왔다는 것을 깨달은 케이카는 작중 처음으로 야이치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케이카가 야이치의 재능을 질투한 적은 있어도 야이치에게 분노한건 이 때가 최초. 물론 야이치는 진심으로 아이의 친구들을 잘 보살펴주고, 쇼기에 대해서도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그와 동시에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한 밑거름 취급해 온 것. 야이치가 아이의 실력이 연수회 수준에서 벗어나 정식 여류기사가 된 뒤에도 여초연과 연구회를 지속시킨 이유 중 하나는 아이의 성장 때문인 건 확실하다. 애당초 여초연 아이들이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기도 힘들고, 원래 이런 연구회는 실력차가 크게 나면 지속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다만 주로 가르치는 두 제자가 종반까지 중구난방으로 버티다 한 번에 난투판을 만들어 물어뜯는 히나츠루 아이와. 받아주기를 한 다음 탈진한 상대방을 끝장내는 스타일의 야샤진 아이이기에 스승으로써는 결국 자잘한 여러 번의 공격을 지속하는 공격성보다는 큰 한 방을 좀 더 중시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8.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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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즈류 야이치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영세용왕(永世竜王)과 영세기왕(永世棋王) 칭호를 보유하고 있는 쇼기 기사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이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와타나베 아키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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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젊은 나이에 용왕 타이틀을 따내고, 일본 쇼기계 최강의 기사와의 대국에서 리버스 스윕으로 타이틀을 방어한 기록들이 위에 언급된 야이치의 행적과 똑같다. 그러므로 야이치는 탈모 예정 사실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으로부터 딴 야이치의 특징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붓글씨가 서툴다. 용왕이 된 후 면허장이나 기념 부채에 붓글씨로 서명/휘호를 할 기회가 늘어났는데, 붓글씨가 서툴러서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서예가로도 활동 중인 쇼기 여류기사 이시바시 사치오(石橋幸緒)[42]의 지도를 받아 붓글씨 실력을 어느 정도 향상시켰지만, 시간이 지나자 도로 원상태가 되었다고. 덧붙여서 와타나베는 자신의 붓글씨에 대해 개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작에서 히나츠루 아이가 야이치의 개인 부채를 찾을 때 그걸 이리저리 숨기느라 고생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글씨가 너무 개성적이라 넷에서 또 놀림당했다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마왕, 마타로라는 별명이 있다. 야마자키 타카유키 8단과 같이 엮여서 "서쪽의 왕자, 동쪽의 마왕"이라 불린다. 쿠즈류 야이치의 별명인 서쪽의 마왕과는 반대편이며 작중에서 칸토 소속의 동쪽의 왕자가 등장할지도. 마타로라는 별명은 후지코 후지오의 작품인 마타로가 온다의 캐릭터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며 본인도 닮았다고 인정했다.

또, 와타나베는 특이하게도 만 19세인 2004년에 결혼하여 다음 해에 장남을 낳았다. 왜 일찍 결혼하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설의 전개에 한 가지 변수가 될 수도 있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야이치는 18세 명인 모리우치 토시유키(森内俊之) 九단과 센자키 마나부(先崎学) 九단의 유명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은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센자키 九단은 용왕이 하는 일!처럼 쇼기를 메인 소재로 다루고 있는 만화 3월의 라이온의 감수를 맡고 있기도 하다.

모리우치 토시유키는 한때 하부의 라이벌이었고, 2002, 2004~2007년에 명인 타이틀을 획득, 통산 5회 우승을 달성해 영세명인 자격을 획득했고, 하부는 2008년에 모리우치를 4-2로 꺾고 영세명인 자격을 획득한 기사이다. 그런데 이 모리우치가 2010년대 들어 3할 승률인 상황에서 2011~2012년에 귀신같이 명인 타이틀을 탈취해서 3할명인&쓰레기 명인이라며 조롱당한 적이 있는데 초기에 야이치가 먹던 욕과 딱 맞아 떨어진다.

그 외에 내제자는 아니지만 어린 여류기사의 스승이란 것도 모리우치 토시유키의 이야기고, 나타기리 진에게 패하고 61km를 달린 것도 모리우치 18세 명인의 이야기. 사실 야이치의 기본 모티브인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 역시 용왕전을 제외한 다른 기전에서 성적이 별로라 쓰레기 용왕이란 별명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다른 기전에서도 승수를 쌓아올리고 있어서 그나마 낫지만. 이건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이 영세용왕에 오른 후 영세기왕 칭호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은 현재 명인, 기왕, 왕장 타이틀 홀더다.

센자키 마나부 九단은 키요타키 코스케의 모티브가 된 요네나가 쿠니오(米長邦雄) 영세기성의 제자인데다 같은 문하 선배이자 소라 긴코의 모티브 중 하나인 하야시바 나오코(林葉直子) 전 여류기사에게 짓궂은 장난을 많이 당했다는 게 긴코-야이치 관계와 비슷하다. 하야시바 나오코 전 여류기사는 원래 여류왕장 보유자로 퀸 왕장 칭호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일본쇼기연맹을 탈퇴해서 퀸 칭호를 상실했으며, 시온의 왕이라는 쇼기 관련 작품에서 원작을 맡았다.

9. 기타



[1] 16세(1권) → 17세(4권) → 18세(12권) → 19세(18권) [2] 일본쇼기연맹에서 정한 승단 규정에 따라 용왕전 도전자가 되면서 四단에서 七단으로 승단했고, 용왕 타이틀을 획득하여 八단으로 승단, 5권에서 용왕 타이틀 방어 성공으로 용왕 획득 2기를 달성하여 九단으로 승단했다. 작중에서는 최연소로 九단에 승단했다. [3] 이후 히나츠루 아이 역의 히다카 리나랑 결혼하게 된다. [4] 스승에 집에 살며, 집안일 등을 도우며 직접 배우는 제자. 현실에서는 하부 세대까지는 그럭저럭 명맥이 유지되었으나 90년대 이후로는 모리 문하의 야마사키 타카유키, 요네나가 문하의 타카자키 잇세이를 끝으로 거의 명맥이 끊겼다. [5] 패한게 분해서 쫒아다닌 건 사저인 긴코 쪽이었다. [6] 보은(報恩)이란, 바둑이나 쇼기계에서 제자의 실력이 스승을 뛰어넘은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제자가 스승의 은혜를 갚는(보은) 방법은 스승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격언에서 유래.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한국의 전설적인 바둑기사인 조훈현 이창호의 관계를 들 수 있다. # [7] 용왕 등극 이전의 야이치는 25년만의 중학생 프로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데뷔전에서 나타기리 진에게 패배부터 시작해서 부진을 거듭해 순위전 C급 2조 38위에 신인전에서도 1회전 탈락했을 정도로, 정상급은 커녕 C급2조와 五단 이하의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딱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8] 작중에서는 4,200만 엔, 실제로는 2020년 기준 4,400만 엔. # 작중에서는 명인전 우승 상금이 2,000만 엔이지만, 실제로는 미공개라서 정확한 상금은 알 수 없다. [9] 딱 보면 알겠지만 오즈의 마법사에서 가져온 별명. [10] 사저인 소라 긴코가 타이틀 홀더다. [11] 이는 히나츠루 아이의 아버지가 요리사로서 데릴사위로 들어왔다는 것과 비교하는 것으로 보인다. [12] 웃자고 하는 얘기고 애당초 어지간한 중견 기업 이상인 료칸의 매출과 개인의 수입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 없다. 당장 저 매출에서 각종 비용과 세금을 빼고 남은 최종수익(= 당기순이익)을 비교해야 하며 그것도 기업의 수익vs개인의 수입이라면 비교하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다. [13] 희귀한 목재로 만든 바둑&쇼기판은 억대를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6권에서 히나츠루 아이에게 준 쇼기판이 500만 엔 정도 한다고 야이치가 언급했다. [14] 이 경우 야이치 23세, 히나츠루 아이 및 야샤진 아이가 16세로 여고생 정도의 나이다. 최소한 로리콘이라고 욕먹을 정도는 아니고 2년만 지나면 혼인도 가능한 나이다. 다만 동거하긴 힘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약혼을 하거나 하면 오히려 대놓고 인정받을 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 [15] 해당 사건 이후 11연패를 하고 나서 용왕이 하는 일 1권이 시작된다. [16] 작중 제위전의 원전에 해당하는 왕위전의 예선은 토너먼트지만, 본선은 리그전 형식으로 진행한다. [17] 이때는 아직 야이치가 생일이 지나지 않아 16세였다. [18] 타이틀 홀더의 경우 다른 타이틀전 예선은 면제가 되는 특권이 주어지지만, 현왕전은 일반기전이므로 얄짤없이 예선을 돌파해야 한다. [19] 상금 획득 순위 상위자 12명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기전. 일단 일본쇼기연맹이 주최하는 공식전이긴 하지만, 이벤트 대회 성격이 강하다. [20] 소설 1권에서 아이를 연수회에 등록시키기 위해 같이 쇼기연맹 회관에 간 시점에서 보면 나온다.이 때 사저가 야이치 곁을 슬쩍 지나쳐가면서 야이치에게만 들리게 한 말이 "로리왕." 정발판 1권 p.113. [21]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려준 보물이다. [22] 소라 긴코 게시판에서는 사귀는 게 틀림없다, 아직 사귀지 않지만 언젠가 사귈 거다라는 글이 꾸준히 올라왔고, 장기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루머였다고 한다. 소라 긴코도 야이치 팬으로부터 여친인척 나대지 말라는 악플을 받기도 했고, 야이치는 살해협박까지 받은 적이 있었다. 다만 아이를 내제자로 받은 이후부터는 사실은 로리콘인가. 로리콘이라서 빈유인 긴코를 좋아했을 뿐인가라는 누명이 써지면서 조금 식은 모양새. [23] 참고로 긴코는 장려회 입회 실패 이후 강해져서 멀어지는 야이치에게 타이틀을 따고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고, 야이치도 자신을 인정했다는 표현으로 생각해서 좋아했었기에 딱히 딴지를 걸거나 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호칭인줄 알았는데, 계속 그렇게 존칭을 쓰며 존대를 하면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처음에 딴지를 걸지 못했다보니 지적하기 어려워서 뭐라고 하지 못했고, 결국 처음으로 딴지를 건건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24] 야이치가 멋지다고 말하는 아이한테 긴코가 너 머리가 이상한거 아니냐라고 하자 속으로 어이, 긴코 임마하고 화내기도 했고, 연구회 이후 호텔로 끌려갔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긴코한테 너라고 지칭하며 반말로 화내기도 했다. 그 외에 자오 타츠오 九단에게 패배하자 긴코의 이름을 부르며 울면서 엉겨붙기도 했다. [25] 한 번은 아이의 역린을 건드려서 반성까지 한 적도 있다. [26] 5권 [27] 11권 [28] 7권의 (9사보를 생략한) 6오동계. 원래 후수의 한수버리기 각교환은 선수의 무리를 기다기리거나 천일수를 노리는 방어적인 전술이었는데, 야이치는 측면공격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됐던 9사보를 생략하고 바로 6오동계를 둠으로서 기존의 상식과는 다르게 후수가 공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괜히 '혁명'이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다. [29] 이쪽은 전술의 혁신성보다는 계단기 뛰기를 실전에서 둔다는 점이 놀라는 포인트다. 당장 계단기 뛰기로 재미를 본 야이치조차 요구하는 수읽기의 깊이가 너무 깊다며, 설령 다른 이가 쓴다고 해도 별로 무섭지 않다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작중 최고의 재능을 가진 야이치조차 인정하는 고난이도의 전술이라는 것. [30] 오이시 마코토로부터 몰이비차를 전수받은 뒤 오키토 요우에게 싱글벙글 중비차 전법이 밀리는 것을 보고 이를 보완하여 만든 신전술이다. 원래 쿠즈류 본인의 주 전술인 한 수 버리기 각교환이 상당부분 파훼되자 새로운 전술을 연구하다 나온 결과물이다. [31] 12권에서 제위전 1차전에서 컴퓨터를 통해 장기를 연구하던 오키토를 컴퓨터는 절대 구사하지 못하는 수를 둠으로써 승리했다. [32] 12권 감상전 中 [33] 14권, 야이치가 오키토를 상대한 제위전을 해설했을때 얘기했다. [34] 칸나베 아유무와의 대국 中 [35] 쇼기를 완전히 해명하여 필승법을 발견할 수 있는 경지 [36] 8권에서 마치의 회상에 의하면 원래 야이치는 동굴곰 파였던 듯하다. 라는 건 오해다. 후술되었다시피 야이치 본인은 뭐든 가능한 올라운더고 다만 초등학생 명인전에서 사실 그냥 마치에게 재밌는 걸 보여주겠다면서 들고 나왔던 것이 동굴곰이었을 뿐이다. 어떤 의미로는 더 무시무시한게 야이치가 이 때 재미로 보여준 동굴곰을 보고 기사 한 명의 인생관을 바꿔놓은 것이다. [37] 키요타키 코스케의 스승인 사카이 쥬조 九단과 동문 사제지간이다.(사카이 九단의 사형이다. 즉, 키요타키 코스케의 사백.) 즉, 일문 항렬상 야이치와 긴코에겐 큰 할아버지 뻘, 두 명의 아이에겐 증조 할아버지가 되는 큰 어른이다. [38] 이전에는 이 에피소드 때문에 야이치가 원래 동굴곰 파가 아니었냐는 말도 있었지만 그런 말은 작중에서 한번도 나온 적이 없고 야이치가 올라운더의 천재고 주 전술도 서로걸기나 각교환이 주로 나오므로 동굴곰 파라고 보긴 힘들다. [39] 대국의 승률 등을 비교해 수치화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 전투력'. 물론 숫자 하나로 기사의 실력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참고용으로 흔히 사용된다. [40] 어마어마한 수읽기 능력과 종반력. [41] 일본에서는 각종 아마추어 쇼기 대회에 출전하는 아마추어들을 아마추어 기사(棋士)라고 부르지 않고 선수(選手)라고 부른다. [42] 2014년에 은퇴했다. [43] 아이러니하게 1부 이후 작품 전개가 인공지능, 장려회 및 긴코의 프로 도전기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야이치에 대한 묘사는 대놓고 최종보스처럼 나온다. 야이치 1인칭 서술이 줄어들고 제3자의 시점이 많이 나오면서 이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프로 기사, 장려회 회원들 시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압도적인 재능으로 앞을 가로막는 벽으로, 긴코 입장에서는 따라잡을려 해도 잡을 수 없는 머나먼 존재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