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니히그레츠 전투 Battle of Königgrätz |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일부 | ||
날짜 | ||
1866년 7월 3일 | ||
장소 | ||
오스트리아 제국 보헤미아 왕국 쾨니히그레츠(Königgrätz) | ||
교전국 | [[틀:깃발| | ]][[틀:깃발| ]][[프로이센 왕국| ]]
|
지휘관 |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헬무트 폰 몰트케| ]]참모총장 [[틀:깃발| ]][[틀:깃발|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 ]] 제1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콘스탄틴 베른하르트 폰 보이츠레츠| ]]제1군 참모총장 [[틀:깃발| ]][[틀:깃발| ]][[프리드리히 3세(독일 제국)| ]]제2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 ]]제2군 참모총장 [[틀:깃발| ]][[틀:깃발| ]][[에버하르트 헤르바르트 폰 비틴펠트| ]]엘베강 군 사령관 |
]][[틀:깃발| ]][[빌헬름 1세| ]]총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알베르트(작센)| ]] |
]][[틀:깃발| ]][[틀:깃발| ]] 루트비히 폰 베네덱
결과 및 영향 | ||
프로이센 왕국의 승리, 오스트리아 단일 제국 해체 및 이중제국 성립 | ||
병력 | 220,984명 | 238,000명 |
피해규모 | 사망자 1,935명 | 사망자 5,793명 |
[clearfix]
1. 개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전투이며 프로이센군의 승리로 끝났다. 사도바 근방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사도바 전투라고도 불린다.2. 배경
보오전쟁이 발발하고, 프로이센 왕국군은 프로이센 국경 근처에 배치되어 있었다. 프로이센 왕자 프리드리히 카를의 제1군은 젠프텐베르크와 괴를리츠사이에 있었으며, 프리드리히 왕세자의 제2군은 슐레지엔에 있었다. 이에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사령관, 베네덱은 올뮈츠에 있는 주둔지로 오스트리아군을 움직였고, 프로이센군의 참모총장이었던 헬무트 폰 몰트케는 오스트리아군의 주둔지 근처에 있는 지친(Jitschin)으로 진격시켰다. 우유부단했던 오스트리아군의 베네덱은 프로이센 제2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실패하였고, 프로이센은 더 나아가 쾨니히그레츠까지 진격하였다.3. 편제
3.1. 프로이센 왕국군
총사령관: 빌헬름 1세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
제1군
총사령관: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
참모총장: 콘스탄틴 베른하르트 폰 보이츠레츠
- 5사단 (빌헬름 폰 튀플링)
- 6사단 ( 알브레히트 구스타프 폰 만슈타인)
- 7사단 (에두아르트 폰 프란체키)
- 8사단 (하인리히 프리드리히 폰 호른)
- AT
- 2 군단 (슈테판 폰 슈미트)
- 3사단 (아우구스트 폰 베르더)
- 4사단 (프리드리히 헤르바르트 폰 비텐펠트)
- CT
- 기병 군단 (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알브레히트)
- 1 기병 사단 (헤르만 폰 알벤슬레벤)
- 2 기병 사단 (베노 한 폰 바이헤른)
- CT
총사령관: 프리드리히 왕세자
참모총장: 레온하르트 폰 블루멘탈
- 예비 기병 군단 (율리우스 폰 하트만)
- 근위 군단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 1 근위 사단 (빌헬름 힐러 폰 게르트링겐)
- 2 근위 사단 (하인리히 폰 플론스키)
- CT
- 1군단 (아돌프 폰 보닌)
- 1사단 (폰 그로스만)
- 2사단 (카를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클라우제비츠)
- CT
- 5군단 ( 카를 폰 슈타인메츠)[1]
- 9사단 (율리어스 루트비히 폰 뢰벤펠트)
- 10사단 (휴고 폰 키르히바흐)
- CT
- 6군단 (루이 폰 무티우스)
- 11사단 (하인리히 폰 자스트로)
- 12사단 (페르디난드 폰 프론진스키)
- CT
총사령관: 에버하르트 헤르바르트 폰 비틴펠트
참모총장: 루트비히 폰 슐로하임
- 14사단 (휴고 에버하르트 추 뮌스터마인회벨)
- 15사단 (필리프 카를 폰 칸슈타인)
- 16사단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에첼)
- AT
- 1 예비 군단(구스타프 폰 데어 뮐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