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소크라테스 (영어: Socrates of Constantinople, 그리스어: Σωκράτης ὁ Σχολαστικός) |
출생 | 380년경 |
사망 | 미상 |
직위 | 평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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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기 4~5세기경에 활동한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교회사>를 집필했다.2. 생애
380년경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반적인 생애와 사망년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스승이 391년 알렉산드라에서 이교도 사원에 대한 공격을 피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달아난 이교도 문법학자 헬라디우스와 암모디우스 사카스였다고 하며, 말년에 파플라고니아와 키프로스를 여행하면서 <교회사>를 집필할 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439년에서 450년 사이에 교회사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3.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소크라테스의 교회사는 305년 콘스탄티노스 1세의 치세에서 시작하여 439년 테오도시우스 2세의 시대로 끝난다. 총 7권의 책으로 쓰여졌는데, 각 책마다 황제의 시기를 다루었다. 다만 율리아누스(360~363)와 요비아누스(363~364) 치세는 개별적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짧기에 한 권으로 통합했다. 이 책의 목적은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를 이어가는 것이었으며, 주로 교회의 분열상을 다루었다. 그는 처음엔 티란니우스 루피누스의 교회사를 주요 자료로 썼지만 나중에 여러 곳에서 저서를 수정하면서 루피누스를 버리고 더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았다. 가령 에우세비우스, 아타나시우스, 사비누스의 시노그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라바니우스와 테미스티우스의 연설, 가이나스의 반란에 대한 에우세비우스 스콜라티쿠스의 서사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사건 기록 등 여러 자료를 폭넓게 사용했다.소크라테스의 저서는 여러 면에서 균형이 잘 잡혔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교회와 정부의 저명한 인물들을 언급할 때 가급적 과장된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생애>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를 지나치게 찬양한 에우세비우스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문체는 단순하고 담백했지만, 종종 속담과 풍자를 인용했으며, 독자에게 흥미를 주기 위해 일화를 자주 사용했다. 한편 그는 전쟁의 잔혹행위를 혐오하고 평화를 갈망했으며, 신학적 차이 때문에 서로를 헐뜯고 해치는 걸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아리우스파, 노바시아노파(Novatianism), 도나투스파 등 3~4세기에 정통교회와 대립한 이단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면서, 자신은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이들을 다루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소크라테스의 교회사는 알렉산드리아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 히파티아를 다룬 몇 안 되는 문헌 자료 중 하나이다. 그는 히파티아 살해 사건에 대해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알렉산드리아 총독 오레스테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가 대립했을 때 오레스테스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살해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히파티아를 살해한 폭도들에 대해 "대학살, 전쟁, 그리고 그와 같은 종류의 처리를 허용하는 것만큼 기독교 정신에서 멀리 떨어진 것은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