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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1 17:46:12

캔터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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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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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anterbury.[1]

영국 동남부의 켄트 주에 위치한 유서깊은 도시. 런던에서는 동남쪽 85km 지점에 위치한, 인구 5만 5천의 도시이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가 대학 도시라면 캔터베리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적인 도시다. 대성당 수도원 등이 위치한 성공회(영국 국교회)의 본산이며 동시에 가톨릭의 성지[2]이기도 한 종교 도시이다. 예술대학 크리에이티브 아츠 대학교의 소재지 중 하나다.

2. 역사

로마 제국 브리타니아 정복 시에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고, 이후 켄트 왕국의 수도였다. 잉글랜드에서 가톨릭이 처음으로 전래된 도시이며, 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성 어거스틴[3] 수도원[4]은 대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중세 내내 캔터베리 대주교는 잉글랜드 왕국에서 국왕 다음가는 영향력을 자랑하였다. 헨리 2세에게 캔터베리 대주교 성 토마스 베켓[5]이 암살된 후로는 성지가 되어 순례객들이 몰렸는데, 캔터베리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다. 현재 영국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며, 적은 인구에 비해 엄청난 인지도를 자랑한다.

1070년부터 1089년 사이에 지어진 캔터베리 대성당은 1174년의 화재로 소실된 후 4년 후에 재건되었고 1495년에 증축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독일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되었다. 영국 특유의 퍼펜디큘라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성당은 지금도 잉글랜드인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영국 왕실의 전례를 책임지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바로 이 대성당을 주교좌로 하고 있다.

서양 천문학사에서도 이름을 남겼는데 1178년 이 일대에 있던 수도자 5명이 우연히 달에 유성 천체가 충돌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후대의 달 탐사로 명명된 크레이터 중 조르다노 브루노 크레이터가 1178년의 캔터베리 유성우 이벤트와 연관성이 있다고 연구되었다. 영어 위키백과 설명

1381년 와트 타일러를 중심으로 일어난 켄트주 농민봉기인 와트 타일러의 난의 진원지였으며, 헨리 7세부터 찰스 2세 시대(15세기 말 ~ 17세기 초반)까지 특허를 받아 자치 도시의 특권을 누렸던 역사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하위 장르인 캔터베리 록이 발흥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1] 현지 발음은 '캔터브리'에 가깝다) 외래어 표기 용례는 캔터베리를 내세우고 있으며, 실제로 이 발음이 범용적으로 표기되고 있다. [2] 헨리 8세 수장령 선포 이전의 영국 성공회의 역사는 영국 가톨릭의 역사와 공통분모다. [3]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 [4] 현재는 폐원되고 켄트대학교 내에 폐허 유적만 남아있다. [5] 제40대 캔터베리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