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18:56:26

추성훈/논란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추성훈
1. 유도선수 시절
1.1. 일본 귀화 전
1.1.1. 한국활동 시작시기1.1.2. 일본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1.1.3. 편파판정 의혹과 파벌문제1.1.4. 아시아선수권 선발 문제1.1.5. 용인대 파벌과 차별 논란1.1.6. 편파판정을 위한 맞춤전략 논란1.1.7. 귀화전까지
1.2. 일본 귀화 후
1.2.1. 도복의 미끄러움 논란
2. 격투기 데뷔 후
2.1. 보습제 논란
3. 추성훈의 불편한 진실?

1. 유도선수 시절

1.1. 일본 귀화 전

1.1.1. 한국활동 시작시기

일반적으로 알려진 추성훈의 이미지는 KBS스페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에서 방영된 내용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4세로서 일본에서 유도를 했으나 일본 국적이 아닌 추성훈은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추성훈은 98년 4월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 부산시청에 입단해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며 훈련 뒤에는 동료랑 아리랑을 부르며 한국어 공부를 하는 내용이 방영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추성훈이 생전 처음으로 한국에 온 것처럼 보여지지만, 추성훈은 이미 고교시절부터 한국의 유도 시합에 틈틈히 참여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대학 재학 시절인 96년에 전국체전 은메달을 얻은 전적이 있다. 96 전국체전 한국일보 2000.12.01

1.1.2. 일본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

KBS에서 방영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와 과거 신문기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이야기로서, 정식으로 귀화하기전 추성훈이 일본으로부터 귀화를 전제로한 스카웃 제의를 여러차례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성훈 본인이나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뚜렷한 출처가 없어 이를 확실히 증명할 길이 없다. 반대로 한국의 애국심에 호소하려고 지어낸 일화라는 의혹도 있지만, 이 역시 확실치 않다.

1.1.3. 편파판정 의혹과 파벌문제

추성훈은 일본으로 귀화한 직접적인 계기는 한국 국가대표 선발에서 파벌 문제를 비롯한 편파판정이라고 주장했다. 선수시절 여러차례 판정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으며 격투기 전향 후에도 동일한 언급을 했다.

당시 추성훈과의 편파논란이 있던 선수는 용인대 출신 조인철이었다. 조인철은 전국체전 결승전에서 추성훈을 한판승으로 이기기도 했다. 또 81kg급에서 그 당시 한국은 물론 세계권에서도 정상급 선수였다. 추성훈이 조인철을 넘어서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지만 번번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조인철에게 패했다. 그러나 경기 자체에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는데, 점수를 이기고 있다가도 후반쯤에 주의 혹은 경고로 점수를 내주게 되어 패하는 양상이었다. 추성훈의 팀 동료들은 물론 다른 유도인들도 판정에 문제가 있다는 언급을 하였고 이에 편파판정 의혹이 짙어졌다.

이에 조인철을 옹호하는 의견으로, 조인철은 이미 검증된 강자로 94 세계 청소년 유도 선수권 은메달을 시작해 95 아시아 선수권 은메달, 96 올림픽 동메달, 97 세계 선수권 금메달, 98 아시안 게임 금메달, 또한 97년에는 세계 랭킹 1위 조인철 랭킹를 달성하는 업적을 남겼던 선수로 단순히 파벌과 편파판정의 득을 본 선수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 또 추성훈은 일본으로 귀화 후 부산아시안게임 결승전에 만난 안동진을 압도하지 못했는데, 안동진은 조인철에게 한번도 이기지 못한 선수인 점을 감안하면 간접비교로 조인철이 추성훈 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커리어나 간접 비교했을 때 "추성훈과 조인철 중 누가 더 쎈 선수라고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추성훈과 조인철의 대결중 편파판정이 있었는가"의 문제의 답변으로는 맞지 않는 의견이다. 순수하게 두 선수가 경기를 치를때 실력 이외의 무엇이 개입했는지가 문제이기 때문.

굳이 커리어를 비교하자면 추성훈이 조인철보다 낮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애초에 이런 비교가 무리인 것이, 조인철은 사실상 파벌로 유도계를 장악한 용인대 출신으로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최고의 대회들을 수차례 나갔던 것에 비해 추성훈은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 전국대회 우승경력과 대학랭킹 5위라는 최상위권을 기록했음에도 국적 문제로 당시에는 일본 대표로 국제대회를 나갈 수 없었다. 한국에 온 뒤로 판정 문제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어려움을 겪었기에 그나마 겨우 코리아 오픈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만을 출전할 수 있었다. 때문에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추성훈과 그와 반대인 조인철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실제 추성훈과 조인철의 전적은 4승 2패로 조인철의 우위였는데, 판정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1승이라도 추성훈 쪽을 들어주면 3승3패 박빙이 된다. 이는 추성훈이 판정 문제라는 어려움이 있음에도 상당히 선전했다는 의미. 실제로도 조인철은 가장 까다로운 상대로 추성훈을 언급했다. 일례로 2000년 코리아 오픈 국제유도대회 당시 제3국의 심판들이었기에 비교적 공정한 판정으로 진행될 수 있었는데, 여기서 추성훈은 조인철을 한판승으로 꺾는다.

그러나 결국 추성훈은 일본으로 귀화하기로 결정하는데, 코리아 오픈 우승 이후 2001년 몽골 아시아선수권 유도대회에서 전경기 한판승을 기록하며 우승했음에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여전히 판정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파벌로 얼룩진 판정문제에 지친 추성훈은 분노가 폭발했고, TV 인터뷰 화면에서 분을 삭히지 못하고 표출했다. 당시 영상 후반부 쪽을 보면 알겠지만 "(국적을)바꿔야지..... 말을 해도 안됩니다. 여기는..... 귀화한 다음에 일본에서 유도해야죠....."이라고 직접적으로 귀화를 언급한다. 인터뷰 영상

추성훈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귀화 후 일본 국가대표에 도전한다. 그리고 일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쟁쟁한 경쟁 상대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국가대표 선발을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 일본에 간지 몇 달 만에 종주국의 대표선수가 되었던 것을 보면 편파판정 문제가 추성훈 혼자만의 착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추성훈과 유도대표팀 감독이었던 권성세 씨의 인터뷰를 근거로 파벌, 판정 문제가 아니라 실력 문제였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인터뷰
―일본으로 귀화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알려진 대로라면 국내 유도계의 심한 텃세와 해외파 출신에 대한 차별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런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그게 전적인 이유는 아니다. 텃세 운운하는 말은 내가 한 얘기가 아니다. 난 실력이 안됐다. 세계선수권자였던 조인철은 분명 세계적인 타이틀을 가질 만한 큰 선수였고 난 그를 이길 실력이 모자랐다. 조인철을 이은 권영우도 강한 선수였다. 사실 조인철이 은퇴하면 그 자리는 내 차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유도는 뿌리가 깊었고 선수층이 두터웠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중략)
한편 권성세 한국 유도대표팀 감독은 “유도계의 텃세는 추성훈한테만 있는 일이 아니다. 전기영, 윤동식 등 모두 힘든 환경에서 유도했고 1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추성훈의 귀화 이유는 실력 부족을 인식한 최후의 선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인터뷰에서는 추성훈 본인이 직접 실력 부족을 언급했으므로 당연히 그 부분을 넘겨볼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추성훈이 실력으로 조인철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선수였다고는 보기 어려운 일이고, 애초에 조인철이 세계정상권 강자였으니 추성훈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인터뷰 이후, 즉 일본으로 귀화 후에도 추성훈은 한국의 방송을 통해 파벌과 관련된 판정 문제가 있었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실력 부족을 언급한 저 인터뷰가 2002년 10월인데, 2005년 KBS에서 방영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 2008년 MBC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서 파벌 문제와 판정 문제를 언급한다. 고로 실력 문제를 언급한 인터뷰 하나만을 전적으로 판정 문제가 없었다고 보기에는 무리다.

다른 종목은 몰라도 유도는 일본의 선수층이 훨씬 두껍고 유도에 대한 관심과 애착도 우리와 비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그런 일본으로 귀화를 선택한 것을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다른 나라 양궁 선수나 쇼트트랙 선수가 실력이 부족해서 우리나라로 귀화를 했다는 소리를 듣는 기분이랄까...
실력 이외의 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인가? (MC 강호동의 질문))
▲있었다. 그...... 하바츠?(일본어로 파벌이라는뜻) 파벌....(통역이 알려준다) 그런 것(파벌)이 있어가지고..... 실력이 있어도 안됐다.
"확신하냐?" (MC 강호동의 재차 질문)
확신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때는 우리팀 선수도 그렇고 다른팀 선수도 그렇고 실력이 있어도 안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릎팍도사 추성훈편

또한 그가 태릉선수촌에서 한국 대표팀의 운동 방식에 힘들어했다는 점을 들어 그것이 귀화 문제에도 영향을 줬다고 의견을 주지만 사실 그 문제는 그가 매번 불만을 표출했던 파벌과 판정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추성훈은 소속팀 부산시청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연습벌레"였다. 추성훈의 자서전 "두개의 혼"에서 그가 언급한 내용을 보면 한국유도 대표팀의 훈련 방식은 빡빡하고 단체 생활을 중시한 방식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국가대표에서 선발되었을 때 대표팀 자격으로 훈련했을 때의 경험담이지, 이것이 넘기 어려운 장벽이라 귀화 문제에 영향을 줬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두개의 혼"을 들어 반론하는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치 추성훈이 국가대표훈련에 적응을 못해 귀화를 결정한 뉘앙스로 의견을 내지만, 애초에 추성훈은 한국 국가대표팀을 목표로 부산시청에 입단했다. 국가대표팀이 되었을 때야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을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이나 그 외로는 소속팀인 부산시청에서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일본에 돌아가서 몇 달 만에 일본 대표팀이 될만한 선수가 단순히 한국 대표팀의 훈련 방식이 힘들다하여 귀화를 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착각이다.

또한 용인대 파벌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 과거 조인철과 더불어 세계 정상권이었던 윤동식을 비롯해 여러 선수가 파벌 문제의 희생양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추성훈 개인만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무게감이 실린다.

1.1.4. 아시아선수권 선발 문제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일이지만 추성훈은 실제로 일본으로 귀화하기 이전에 한차례 귀화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그가 출전해 전경기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얻은 01 아시아선수권 대표에 선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영우와 1, 2차 선발전 점수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가운데 대표선발권을 쥔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와 유도회 상임이사들이 대부분 권영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었다. 이 결과를 추성훈은 편파로 받아들이고 일본으로 귀화하겠다는 소동을 벌였는데 결론적으로 “기회를 줘야 한다”는 김정행 대한유도회장(용인대 졸)의 의지에 따라 최종적으로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래대로라면 출전 가능한 3등에 들었음에도 추성훈에게 자리를 양보한 권영우는 용인대 출신이 아닌 한양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추성훈과 똑같이 편파판정을 당하고도 3위를 한 권영우가 도리어 피해를 입은 것이다. 마침 추성훈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던 김정행씨 역시 용인대 출신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이사건으로 추성훈은 용인대 파벌 김정행의 실력 행사에 힘입어 정당한 노력으로 그자리에 올라갔던 비용인대 출신 권영우의 노력을 도둑질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은 옳지 못하다. 추성훈은 줄곧 용인대 출신 조인철과의 경기에서 편파 판정 피해를 입어왔고 엄연히 파벌의 피해자다. 또한 선발전에서 점수가 비등비등한 상황인데 상대 선수가 선발되었기에 충분히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로 추성훈이 입었던 파벌 피해를 추성훈에 의해 권영우가 입었다는 식의 논리는 옳지 않다. 설령 이때의 선발이 문제가 된다하더라도 협회의 행정처리가 미숙한 것이지, 추성훈의 잘못이 아니다.

현재까지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단순히 협회에서 결정을 내렸다고만 되어있기 때문에[1] 정확한 것은 당사자인 권영우가 직접 발언하여야 알 수 있다. 문제는 이권이나 조직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면, 당사자가 직접 이에 대해 솔직하게 발언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1.1.5. 용인대 파벌과 차별 논란

용인대 출신 김정행의 도움이 있어 2001년 몽골 아시아유도선수권 대회도 나갔으니 용인대가 파벌 문제가 있다고 몰아가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으나 그 근거가 박약한 것이, 애초에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가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과 비교하면 권위와 위상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2001년 몽골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추성훈의 자격은 국가대표 2진이었다. 애초에 권위와 위상이 그닥 높지 않은 대회니 체급당 3명이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추성훈은 선발전에서 한차례 귀화 소동까지 벌이고 나서야 협회쪽에서 회의를 거쳐서 간신히 선발될 수 있었던 것. 고로 메이저 대회도 아닌 국제대회 출전을 용인대 출신에게 도움받아 간신히 한번 나간 것으로 용인대가 파벌 문제에서 멀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또 非용인대 출신이나 재일교포 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된 점을 들어 반론을 했는데, 대표적으로 정부경과 강의계라는 선수가 있다.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시 동점으로 재대결을 하게된 정부경(한체대)과 최민호(용인대)의 경우 판정을 배제한 서든데스에 협회측도 이례적으로 주심에 남자대표팀 박종학 감독을 배정하는 등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용인대가 파벌의 힘을 이용하여 편파판정 하려 했다면, 용인대 출신인 최민호가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될 대표선수로 뽑혀야 됐지만, 결국 마지막에 웃은 사람은 한체대의 정부경이었다. 정부경

추성훈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시기 100kg 이상에서 재일동포 출신의 강의계라는 선수가 01 세계선수권 대표로 선발되었고 03 세계선수권도 출전한 기록이 있다. 강의계는 국내에 연고도 없는 재일동포 선수. 강의계

이같이 非용인대 출신이나 재일교포 선수가 활약한 적이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모든 선수들이 파벌에 피해를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추성훈이 활동할 당시의 같은 체급의 경쟁 선수도 아닌 인물들을 비교해 추성훈을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떠나서 "추성훈과 용인대 출신 선수와의 대결에서 판정에 문제가 있었느냐"이지, "추성훈 외에 다른 재일교포나 非용인대 출신이 국가대표가 되었던 적이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 선수가 용인대 출신이라도 어떤 선수였냐는 것도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 추성훈의 라이벌인 조인철은 그 당시 세계정상권이었고 정부경의 경쟁 상대였던 최민호는 그때 당시 세계정상권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신인 선수였다. 같은 용인대 출신이라도 올림픽 금메달도 가능성이 컸던 선수와 신인 선수에게 파벌 혜택을 동등하게 줄 리가 없지 않은가.

또한 세계정상권으로 평가받던 윤동식이 추성훈과 더불어 대표적인 파벌 피해자로 알려져있고, 그의 코치이자 유도 그랜드 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모두 제패한 김재엽 역시 협회측에 항의를 하다 제명을 당했다. 김재엽도 추성훈과 마찬가지로 파벌 문제를 여러차례 언급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4458

심지어 같은 용인대 출신도 파벌 문제의 피해를 봤다는 사건이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당시 73kg급 세계최강의 선수였던 이원희는 왕기춘과의 베이징올림픽 선발전에서 어이없는 판정에 패배를 해야했다. 이원희는 왕기춘에게 업어치기를 성공했지만 득점으로 인정받지 못해 무득점했고, 패자결승전 김원중과의 경기에서도 뒷걸음질치며 위장공격을 한 김원중에게는 지도가 주어지지않고 이원희에게만 주의 2개가 내려져 결국 패배했다. 결국 모친인 이상옥씨는 “판정을 이렇게 해도 되나요. 봐주려면 몰래 할 것이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도 되는 겁니까.”라고 분노했고 “부심이 고등학교 때 왕기춘을 키운 감독”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805071814595

같은 용인대 출신이자 2003년 오사카 세계선수권 우승자 방귀만 선수도 왕기춘과의 경기에서 성공한 기술이 무득점 처리되었고, 방귀만이 우세했던 경기도 판정은 3-0으로 왕기춘이 우세승을 거두게 된다. 심지어 승자인 왕기춘도 "판정 덕을 봤다."라고 할정도였다.

이러한 사례들을 볼 때 非용인대 출신들에게 좀 혜택을 준 경우나 공정한 판정이 있었다고 해서 용인대가 파벌 문제와 판정 문제에서 거리가 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애초에 용인대가 그러한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1.6. 편파판정을 위한 맞춤전략 논란

“조인철이나 최선호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선수 입니다. 그런데 성훈이하고 경기를 할 때면 일단 방어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성훈이는 못 돌리면(한판승) 진다는 생각에 무리한 공격을 하다 힘만 엄청 쓰죠. 경기가 끝날 즈음 지친 성훈이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했다 싶으면 바로 지도를 줍니다. 결국 승부는 그렇게 끝나는 거죠. 유도를 조금 아는 사람이 경기를 보면 심판이 편파판정을 한다는 걸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겁니다.”(이 부분은 추성훈과 유종호 감독의 주장.) 오마이뉴스
추성훈측의 주장을 들으면 추성훈을 상대하는 용인대 선수는 추성훈에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판정 혹은 후반에 지친 추성훈에게 실점을 당하게 만드는 외통수로 몰아간다고 주장하지만 권영우(한양대)의 언급을 들으면 다르게 받아질 수 밖에 없다.
추성훈도 뛰어난 선수였지만 권영우에겐 유독 약했던 것 같다. 권영우는 추성훈과 상대 전적에서 3승1패로 앞섰다. 그는 “(추)성훈이 형은 기술은 좋지만 체력이 강하지 않다. 초반에 ‘간’을 좀 보다 후반에 승부를 걸면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1년 대표 선발전에서 추성훈은 권영우에게 쓴맛을 봤다. "추성훈이 두려워한 권영우 “후반에 승부 걸면 쉽게 이겨”
권영우는 추성훈의 체력이 약해서 방어적으로 가다가 후반전에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권영우가 용인대가 아닌 한양대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용인대 출신만 편파판정을 위해 추성훈을 상대로 장기 방어전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추성훈의 약점인 체력을 노린거라면 용인대 선수들도 권영우와 마찬가지로 전략적인 경기운영을 했을 뿐이지 편파판정을 노리고 그러한 경기운영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추성훈은 용인대 에이스급에게 약하지만은 않았다. 추성훈은 용인대 김기수에게 6전 전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기수가 02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되었을 때 김기수의 스태프들은 추성훈의 승리를 예측한 게 중론이었다. 김기수

1.1.7. 귀화전까지

이후 추성훈은 2000년 11월 1차, 2001년 3월 2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했고 마지막인 2001년 6월 3차 선발전은 배탈로 불참했다. 그런데 3차 선발전은 그 동안 성적과는 관계없이 최종 선발전에서 3위 안에 들어야만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즉 1, 2차 선발전 1위라고 해도 3차에서 3위내로 들지 못하면 바로 탈락인 것이다. 3차 선발전 선발전 당시 기사 내용 추성훈은 복통으로 경기를 참가하지 못하였고, 그저 관중석에서 바라만 봤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4달 뒤 추성훈은 일본으로 귀화한다.

1.2. 일본 귀화 후

1.2.1. 도복의 미끄러움 논란

추성훈이 종합격투기 시절 경기 전 몸에 로션을 바른 사쿠라바 사건으로 부각된 것으로 추성훈이 고의적으로 도복에 기름칠을 한다는 논란이 있다. 실제로 02 세계선수권 일본예선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올림픽(1996)·세계선수권(1997) -71kg 우승자 나카무라 겐조는 추성훈과의 경기에서 같은 항의를 했었고, 2003년 2월 4일 일본 후지티비의 ‘정크스포츠’에 유도선수로서 출연한 추성훈은 “방한용 속옷을 미끄럽게해 게임을 유리하게 진행한다”는 발언을 하는 등 추성훈의 ‘미끄러운 도복’은 다분히 의도적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데일리안

또한 홈그라운드인 오사카에서 열린 03 세계 유도 선수권에서 추성훈은 2회전부터 4회전까지의 대전 상대인 프랑스, 몽골, 터키로부터 "유도 도복이 미끄러진다"는 항의를 받고 도복 교체 후 2연패해서 세계 선수권 5위로 입상조차 실패하는 등 절대강자의 이미지는 없었다. 이후에도 2004년 일본 선발유도선수권에서 -81kg 준결승 진출에 그치면서 올림픽행은 좌절됐고 그는 종합격투기(MMA)를 택한다.

2. 격투기 데뷔 후

2.1. 보습제 논란

2006년 12월의 대결에서 사쿠라바는 파운딩을 당하는 내내 심판에게 '미끄럽다.'라며 어필을 했다. 그러나 심판은 계속 경기를 진행시켰다. 경기 후에도 사쿠라바는 심판에게 계속 항의했으나, 심판은 추성훈의 몸을 직접 만져보고 괜찮다는 의미로 추성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해서 커졌다. 당시 다니카와 사다하루 FEG(K-1 주최사) 프로듀서는 '추성훈의 몸에서 기름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급소를 찌르거나 하면 모를까 사쿠라바의 주장만으로는 부정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라고 밝혔다. 추성훈 측은 2007년 1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몸이 미끄러웠던 것은 다한증으로 인한 땀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1월 11월 다시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기 전 크림을 발랐으며, 이 크림은 바셀린이나 글리세린 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추성훈이 평소 다한증 때문에 사용해온 것이었다. 그는 오일 성분이 아니면 괜찮은 줄 알고 있었으며, 주최사인 FEG는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하게 바른 것으로 보아, 악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다한증 때문에 몸이 미끄러웠다는 것에서 크림을 발랐다는 점이 뒤늦게 발각되면서 그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떨어지게 된다.

사실 옛 영웅인 사쿠라바를 새로운 영웅인 추성훈이 쓰러뜨리는 것이 모두가 원하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이러한 찝찝한 결과는, 히어로즈 규정 상 경기 전 몸에 뭔가를 바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던 점과 합쳐져 그는 규정 위반 판정을 받아 경기는 무효 처리되고, 파이트머니 전액을 몰수당했다. 이윽고 1월 17일, FEG는 자사가 주최하는 경기에는 출전을 금지한다는, 매우 이례적인 처분을 추성훈에게 내리게 된다. 이는 사실상 추방과 다름없는 판정이었기 때문에, Pride로의 이적설까지 나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여론은 추성훈에게 큰 실망의 목소리를 보냈다. 게다가 히어로즈의 스폰서가 떠나고 중계를 담당했던 방송국에 비난 여론이 날아오는 등 파장이 커졌다. 모델인 그의 일본인 여자친구(지금은 아내)까지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게다가 K-1에서 사용하는 글러브와 외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글러브 안에 너클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짤방까지 돌아다녔는데, 이건 아무래도 혐한 여론까지 겹친 지나친 디스다. 맨주먹으로 때리는 것과 너클로 때리는 건 전혀 다르다. 진짜로 너클을 넣었다면 사쿠라바는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경기에서 사쿠라바는 약 200대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 200대를 너클 낀 상태에서 맞았다면...

이에 한국에서는 사쿠라바가 일본의 레슬링 영웅이기 때문에 그렇게 괘씸죄를 씌우는 것이 아니냐는 반대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6년 김태영 선수와 경기 당시 김태영 선수가 몸에 바셀린을 발랐다가 경고를 받는 걸 직접 봤을텐데 로션을 바르는게 잘못된 것인지 몰랐을 리가 없다는 말도 있다. 결정적으로 징계를 받기 전 병명이 다한증이 아니라 피부 건조로 바꾸었다. 이와 관련된 그의 주장은 자서전에서는 손바닥과 발바닥에만 땀이 많은 피부건조로 최종 정리되었다.

종합격투기에서 바셀린, 크림은 최악의 반칙 행위중 하나다. UFC에서는 안면에 한하여 바셀린 도포를 금지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불필요하게 안면커팅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고, 입식타격이면 몰라도 관절기가 허용되는 종합에서 바셀린은 치트키나 다름없다. 일례로 PRIDE에서는 안면에조차 도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정도로 끝난 것도 FEG가 한일 양국의 시장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 팬들 역시 그의 복귀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인데, FEG 공식 홈페이지에서 있었던 여론 조사에서 추성훈의 복귀를 바라는 팬들의 의견이 약 60%였다. PRIDE 해체 이후 DREAM과 SRC가 만성적으로 겪고 있는 중량급의 인재 부족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능할 듯.

이렇게까지 추성훈이 비난을 받게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누구나 이기길 바랬던 그의 승리 뒤에 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눌한 한국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서 그는 추성훈이 아니라 아키야마 요시히로이며, 재일교포라기보다 한국인의 피가 섞인 일본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일본인이 선호하는 유도 베이스의 선수이지만 타격없는 지루한 그라운드 경기만을 하지않는 선수였기 때문에 그의 인기는 상당히 높았던 편. 그러한 그가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썼기에 그 누구보다도 배신감이 컸을 듯 하다.

추성훈은 이 사건 이후 기자 회견에 나올 때마다 사과를 했으며, 그 후에도 평생 이 잘못을 안고 가겠다며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사건 이후 혐한성이 큰 2ch에서는 추성훈의 반칙왕 이미지가 더더욱 부각되게 되었고, 누루야마(미끄러운 아키야마)라는 별명을 부르며 까고 있다[2]. 참고로 크림 사건 이전 일본에서 불리던 별명은 '반골의 유도왕'.

다만 국내에서는 학연, 혈연의 피해자 이미지가 더 강해졌고 사쿠라바는 가해자, 비열한 선수 취급을 받게 되었다. 애초에 대부분 한국인은 사쿠라바가 어떤 선수인지는 잘 모르는 것도 있고, 재일교포가 차별 받았던 것은 대부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추성훈 또한 출신에 따른 희생양이 되었다는 이미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3] #

3. 추성훈의 불편한 진실?

2008년 하반기 경[4] 재일 교포로 추정되는 필자 미상의 아키야마, 추성훈의 진실이라는 글이 돌기 시작했다. 해당 글은 신뢰의 호불호가 갈리지만 K-1 히어로즈 및 드림 내에서의 전적이나 유도 선수 시절 기사 등을 볼때 많이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현재는 격투 갤러리에서 가장 많이 까이는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 극도로 싫어하는 팬들은 추키야마라고 부른다.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유도 시절 차별을 받긴 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기존 선수의 은퇴로 1군 진출이 유력해졌으나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본에 귀화하였다.
  • 부산 아시안게임당시 획득한 금메달은 명백한 편파판정으로 딴 것이다. 그렇게 혐오하던 용인대와 같은 편파판정 혜택을 받은 추성훈은 깔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5]
  • 과거 유도선수 시절의 유도복 비누칠 논란 이후 성적이 시원치 않았다고 한다. 일본 귀화후에도 그렇지만 아테네 올림픽 대표 선수로 뽑히지 못한 건 애초에 실력이 없다는 것.
  • 추성훈은 극우파이다.[6][7] 또한 민족학교 출신도 아니고 한국에 올때까지 한국어도 거의 못하는 그가 한국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그냥 일종의 마케팅이다.
  • 추성훈이 로션을 바른 것은 고의였으며, 후에 있던 모든 해프닝은 그의 전 매니저 박지일이 관여한 일종의 연극들이다.[8]
  • 추성훈이 K-1과 재계약하지 못한 이유는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기 때문.

한줄로 요약하자면 '추성훈은 박지일이 만들어준 애국마케팅을 이용한 일본인 사기꾼'이라는 내용이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많아 논란이 있기 때문에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게다가 주요 음모론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알아서 찾아보라는 투로 적혀져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한마디로 수준낮은 열폭 글에 불과하다. 일단 자신이 재일교포라고 지칭하는 것부터가 의심된다. 재일교포 아니더라도 재일교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재일교포가 사용하는 이름의 형태를 잘 인지하고 있다. 필자는 추성훈은 정대세처럼 한글이름을 쓰는 것도 아닌데 무슨 차별을 당하느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추성훈의 자신의 이름(추성훈-秋成勲)에 뫼산자를 하나 추가해 추산성훈(秋山成勲)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이것을 일본음독으로 읽으면 아키야마 요시히로가 된다. 과거에 재일교포들이 이 방식의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재일교포들의 이름을 매우 어색하게 생각하거나 못읽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추성훈이 여기에 해당된다. 성훈의 한자를 요시히로로 단번에 읽는 사람이 매울 드물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추성훈은 순수 일본인의 이름을 작명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에 불과하다. 필자가 재일교포라면 자신이 쓴 글보다 이러한 교포들의 작명방식을 분명 알고 있을터인데 이름으로 태클거는 것부터가 수상하다. 한마디로 재일교포 코스프레하는 키보드 워리어로 추정된다. 자칭 재일교포가 저렇게 한국어를 유창한게 서술하는 것부터가 의심되는게 재일교포들은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한국어로 사용하는게 있어 표현자체가 어색하다.

추성훈이 일본에서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말한적이 없는데 무슨 차별을 운운하냐고 써놨는데, 추성훈이 일본에서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차별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로 일본국적이 필요한 대회에서는 한국국적의 추성훈의 출전이 불가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언급했지만 여러대회에서 우승했지만 막상 일본국적이 필요한 대회에는 아예 참가가 불가했다고 한다. 또 애초에 일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뽑힐 실력이 안됐다고 필자는 말하지만, 귀화한 후 당당히 전 올림픽 우승자를 꺾고 선발됐는데 무슨 실력이 부족 운운하는지..... 정확한 팩트체크도 안 돼있다.

추성훈이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을 다바치는 마음올 귀화했다."라고 거의 추성훈을 군국주의 신봉자에 가깝게 언급했는데 이건 그냥 정신병자 수준의 언급, 아니 추성훈을 아예 모독하는 수준이다. 애초에 추성훈이 미쳤다고 전쟁 운운, 일본에 목숨바치겠다라는 언급을 할정도로 사회성이 낮은 사람이 아닐뿐더러 저런 언급을 한 적이없다. 또 자신의 선수생활을 위해 국적을 바꾸는게 말이 되느냐라고 말했는데, 왜 말이 안되는지가 궁금하다. 물론 한국의 일본의 역사적 특수성이 있기때문에 한국인들이 화를 내거나 섭섭해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추성훈은 일본에서 자란 재일교포이다. 외국에서 자란 재외국민들은 사실상 그나라의 국민과 동등한 문화와 생활방식을 몸에 지니고 있다. 뿌리는 한국인이지만 자라온 환경은 일본이기에 생활방식 자체가 일본인이나 다름없었는데 그가 뿌리의 국가인 한국에서 국가대표를 못한다면 자신이 자란 일본에서 도전하는 것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다른 한국인 선수들이 귀화해서 외국의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양궁 선수였던 엄혜랑은 일본으로, 김하늘은 호주로 귀화해 둘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

조인철의 은퇴를 앞두고 국가대표 2진이었던 추성훈이 1진으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이며, 그런 혜택을 받지 않고 일본으로 귀화한것은 꿍꿍이가 있다는 식으로 써놨는데 국가대표 2진었다해도 자동적으로 1진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회를 앞두고 선발전을 치러 뽑히는 것이다. 또 부산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안동진이 종주국인 일본의 추성훈에게 편파판정 당했다고 하는데 유도에 대한 지식이 좀 있는 사람이었다면 엄밀히 그건 추성훈이 "이긴" 게임이었다. 점수를 딸만한 공격은 없었지만 분명 추성훈이 공격을 주도했으며 안동진에게 기대할만한 것은 홈어드밴티지 뿐이었다. 필자가 "일본에서도 조차 안동진이 이긴 게임"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느 매체에서 그런 언급을 했는지 궁금하다.

"직접 찾아봐라" "알면 상상을 초월한다"이렇게 써놓고 정작 팩트나 팩트출처는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재일교포 코스프레를 하는 키보드 워리어의 열폭글에 불과하다.

이 소스를 전부 가지고 있다는 전 매니저 박지일이라는 인물 자체가 미스터리한 인물인데 일본 기자들이 그에게 기사 소스를 요구하는 데 엄청난 돈을 요구한다는 루머가 있다. 한 기자는 박지일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해 봤는데 이 인간 말이 앞뒤가 안 맞아서 기사화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국내에서 박지일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다는 소스가 정식으로 기사화 된 것은 강대호 기자의 기사가 전부다. 나머지 기사들은 그냥 위 필자 미상의 글을 기사로 풀어 쓴 것이 전부.

이 글이 돌면서 추성훈의 이미지가 많이 깎여나가고, 디시인사이드 격투 갤러리를 중심으로 안티가 많이 늘어났다. 이런 분위기를 살짝 반전시킨 것이 바로 UFC 이적. K-1 재계약 결렬 사유가 상대를 선택하는 권리였다는 것이 저 글을 통해 알려져서 '떡밥만 먹으며 적절히 돈 벌다 은퇴하는게 아니냐'는 안티들의 조소를 받았다. 당시 추성훈의 위치를 고려하자면 진짜 저 연금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추성훈의 지지기반이 거의 없다시피한 UFC로 이적함으로써 일본 격투기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포기하는 것이 되었기에 까는 여론이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또한 UFC에서 추성훈이 상대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탑급 파이터들이었기에 예의 '상대를 가린다'는 오명을 약간 벗게 되었다.

추성훈의 국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추성훈의 외삼촌은 이 이야기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였으며,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 제기된다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런 추성훈 측의 주장이 나온 이후 한동안 격투계 전반을 들끓게 했던 추성훈의 진실 관련 떡밥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2014년 기준으로는 격갤 등지에서 싫어하는 사람만 까고 거의 언급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

또한 다른 글의 주장에 의하면, 2005년 방영하였던 KBS 스페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방송은 FEG와 박지일의 공동 합작품, 즉 추성훈의 한국 진출을 위한 포장용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을 담당하였던 PD는 사실이 아니다는 의견을 밝혔고, FEG 대표 다니가와 사다하루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의견을 밝혔다.

"추성훈의 신화 설계사"로 알려진 박지일은 2007년 일본에서 이런 책을 내려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의 박지일 항목

독도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답이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이지만 일본 국적자이기도 해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상황이다. 김장훈마저도 저 대답에 대해서 고심 끝에 내린 우문현답이라 칭했을 정도로 매우 예민한 질문이다. 한국 국적이 아닌지라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속으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맞고 그러한 행동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니 본인은 물론이고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밖에. #

[1] # [2] 지금도 일본 유튜브에서 추성훈이 거론되면 댓글에서 반드시 누루야마라는 멸칭이 보일정도. [3] 물론 일부에서는 최소한 일본 격투기에서 한국인이 차별받을 일은 없다고 반박한다. 현대 일본 격투기의 시작이 된 프로레슬링의 역도산부터 Rings같은 종합격투기에도 한국계가 주축이 되어 시작을 열었는데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 [4] 시기는 대충 K-1과의 재계약이 결렬될 무렵이었다. [5] 또한 이 글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은 "한국인이 금메달 따겠다"고 말했을 때 박지일 혼자 "추성훈이 따겠군."이라고 말했다고... [6]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해설에서 일본어를 섞어서 해설을 하자, 일본 극우들이 매우 좋아했다는 한 기자의 말을 인용하였으며, 과거에 친일적 발언을 많이 했다는 증거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7] 근데 정작 일본의 극우 커뮤니티인 2ch에서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같은 놈이라고 까인다. [8] vs 데니스 강과의 경기에서 얻은 승리까지 그의 입김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UFC 진출 시기에 데니스 강이 추성훈과의 경기를 앞두고 여러 부분(대전 상대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점, 경기 도중 손톱에 찔렸는데 아무런 제제가 없었다는 점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