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의 동생에 대한 내용은 최주평 문서 참고하십시오.
崔均
생몰년도 미상
1. 소개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원평(元平)으로 최열의 장남이자 최주평의 형. 기주 박릉군 사람.2. 생애
어려서 영웅호걸과 사귀면서 명성이 있어 서하태수가 되었으며, 영제 때 호분중랑장을 역임했다. 이 때 돈을 주고 관직을 사는 세태라 최열이 사도라는 관직을 샀다가 평판이 떨어졌는데, 최열이 최균에게 관직을 얻은 것에 대해 묻자 젊어서 명성이 높아 훌륭한 삼공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가 천하 사람들이 실망해 동취가 난다고 해서 최열을 비판했다.최열이 분노해 지팡이로 때리려 하자 도망갔는데, 최열이 아버지가 때리는데 도망치는 것이 효자가 할 짓이냐고 하자 순 임금도 아버지가 작은 지팡이를 들면 맞고 큰 지팡이를 들면 달아났다고 하지만 불효한 것은 아니라고 해서 최열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헌제 초에 원소와 함께 산동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동탁이 최열을 미의 감옥에 감금시켰다. 당시 왕공들은 복건을 쓰는 것을 고상하게 여겼는데, 최균은 원소와 그의 무리들과 함께 장수가 되었어도 겸건을 썼다고 한다.
최균은 아비가 돈으로 사도 자리 먹었다 욕하면서 정작 자신도 돈으로 호분중랑장직을 얻었고, 원소가 맹진에서 호족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학살해도 원소 지지자를 자처하면서, 동탁이 일가를 어떻게 하든 말든 가산 털어서 거병하는 행적을 보였기에 원소와 비슷한 무리라면서 위선적 청류라며 비판받기도 한다.
192년에 최열이 이각, 곽사 등의 공격으로 장안이 함락되면서 피살되자 복수하려 했지만 얼마 후에 병으로 죽었다.
3. 창작물에서
삼국지 천도의 주인에서는 흑산적의 난 때 유성이 교위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파견되었으며, 종군하면서 유성에게 여러 질문을 하면서 그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 흑산적의 난 이후에는 유성을 따르면서 조지를 천거했다.소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동탁 집권 이전에는 조조와 교분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동탁이 집권하자 발해로 도망쳐 원소 휘하에서 원로대신이 되었는데, 원소가 친분이 있던 장도, 유자황 등을 죽이는 것을 보고 불안감에 떨었다. 홀대를 받으면서 원소를 섬기다가 원소 사후 조조가 업성을 점령하자 사로잡히고 조조에게 죄를 용서해달라고 청하고 조조가 풀어주기로 하자 그대로 물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