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최경호(崔京鎬) |
본관 | 전주 최씨 |
생몰 | 1890년 7월 28일 ~ 1965년 2월 27일 |
출생지 |
전라도
남원도호부 지사면 방계리 (현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방계리)[1] |
사망지 | 전라북도 임실군 |
추서 | 대통령표창 |
최경호는 1890년 7월 28일 전라도 남원도호부 지사면(현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방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0일 지사면 방계리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동료인 최원호(崔沅鎬)·이영보(李永甫)· 최영기 등과 함께 마을 주민 다수를 규합하여 뒷산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임실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5년 2월 2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최경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