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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18:09:47

초사


楚辭 / 辭賦(사부)

1. 소개2. 상세3. 기타

1. 소개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때 등장했고, 한나라 때 궁중 등의 상류 사회에서 유행한 문학 장르. 보통 초나라 때 지어진 것들을 사(辭)라고 하고 한나라 때 지어진 것들을 부(賦)라고 부르며, 둘을 각각 초사(楚辭)와 한부(漢賦)라고도 부르나, 학계에서는 이 둘을 딱히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굳이 사와 부로 구분하려 하면 송대에 유행한 문학 장르인 사(詞)와 헷갈리게 되기도 한다.

2. 상세

초사는 한나라 때 편찬된 《초사》라는 책[1]을 통해 전해졌다.

대부분의 작품을 굴원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초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밝혀진 것 중에 그가 지은 것이 아닌 경우에는 그의 제자 송옥(宋玉)과 경차(景差)가 지은 것이고, 한대의 작가들의 작품도 들어있다. 중국 북부에 성행하던 민요풍의 고시(古詩)와 달리 초사는 개인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했던 귀족들의 문학이었으며, 노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읊기 위한 문학이었다.

《초사》에 기록된 작품들은 각각 '이소(離騷)', '구가(九歌)' 11편, '천문(天問)', '구장(九章)' 9편 등 초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과 '원유(遠遊)', '복거(卜居)', '어부(漁父)' 등 한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 총 25수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나라 때 지어진 것들로 추정되는 것들은 보통 각 구가 6~7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의 중간이나 끝 부분에 兮(어조사 혜, 뜻 없이 글자수와 박자만 맞춤)가 들어 있는 경우가 있고, 한나라 때 지어진 것들로 추정되는 것들 중에서는 각 구가 8자로 이루어진 것이 등장하고 그들 중에는 끝부분에 些(어조사 사, 兮와 비슷한 용도)가 있는 구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후 진(秦)나라를 거쳐 한(漢)나라가 등장하는데, 한나라를 세운 한고제와 그의 신하들 대다수는 북방인 장안에 진출하였음에도 본래 초나라 땅 출신이었기 때문에 평소에 초사를 즐겼다. 이리하여 고대 중국 남부의 문학을 대표하던 초사가 북방의 시가와 큰 영향을 주고받았으니, 한시 중에 각 구가 7개 글자로 이루어진 칠언시(七言詩)와 구가 8개인 율시(律詩), 12개 이상인 배율(排律)이 생겨난 것이 초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초사 중 각 구 중에 8개 글자로 이루어진 구가 있는 초사는 북방 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무제 집권기에는 사마상여(司馬相如) 등의 문인이 기존 초사의 형식과 성격을 약간 바꾸고 그 명칭이 시경의 분류법인 육의(六義) 중 하나인 부(賦)와 같은 한부를 짓는다.

한부는 초사와 같이 엮여 '사부'라고 불리지만,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초사'는 문인들이 자신의 서정을 글과 말로 표현하여 읊기 위해 만든 것으로 그 내용은 서정적이었고 때로는 이상적인 세상을 노래하였다. 하지만 '한부'는 권력이 안정된 환경에서 문인들이 단순히 자기 글재주를 뽐내거나 황제와 같이 자기보다 높으신 분들에게 아첨하기 위해 읊은 것으로서 주로 영물적, 묘사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이 때문에 한부는 작가들이 더욱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하는 데 집중하여 자연스럽게 미사여구가 많아져 초사에 비해 운율감이 떨어져 후대로 갈수록 산문에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한부는 위진남북조시대부터 지어진 산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3. 기타

굴원 이소(離騷)가 유명하다.


[1] 현존 최고(最古) 판본은 후한대에 왕일(王逸, 89년?~158년?)에 의해 지어진 《초사장구》(楚辭章句)이나 《초사》 자체는 전한 유향(劉向, 기원전 77년 ~ 기원전 6년)이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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