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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루이룽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름 청루이룽 (成瑞龙)
출생 1973년 1월 10일
중화인민공화국
사망 2010년 11월 2일 (향년 37세)
중화인민공화국
사인 독극물 주사형

1. 개요

청루이룽은 광둥성 롄저우시 한충촌 출신으로 1996년 6월부터 1999년 4월까지 란치롱이라는 공범자와 함께 자오칭, 푸산, 구이린, 충칭 등지에서 총기를 이용한 강도질로 6건의 범죄를 일으켰으며 2005년까지 총 범죄횟수는 10건으로 10명이 죽고 3명이 다쳤으며 그간 28.8만 위안을 강탈했다. 그 중에는 강간,총기를 이용한 범행, 강도행위 또한 포함된다. 2010년 2월 21일에 1심에서 사형을 선고하고 2010년 7월 9일엔 2심에서도 사형을 선고했으며 결국 2010년 11월 2일이 독극물 주사형으로 사망한다.

2. 생애

한충촌에서 태어난 청루이룽은 싸움질을 하고 다니며 성격이 매우 억세기로 유명했고 힘도 센 편이였다. 오죽하면 청루이룽은 친척 집에서 샌드백을 걸어두고 펀치연습을 자주 했었다. 어렸을 때 청루이룽의 아버지인 청가오량은 마을에서 촌장이 되었고 집안은 돼지도 잡고 담뱃잎도 심어서 팔았으며 한 마지기의 땅에서만 800위안의 수입이 들어왔다. 청가오량은 촌장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자식과 가족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는데 청루이룽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가 싸움질을 하고 돌아오면 그를 나무 의자에 무릎 꿇리게 시켰고 성격 답게 청루이룽은 고개 한번 내린적이 없다고 했다. 청루이룽에게는 2살 많은 형인 청루이팡도 있었는데 청루이팡의 증언에 의하면 항상 동생이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고 서로 간의 대화도 적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청루이룽과 형 청루이팡은 자주 싸웠는데 항상 내성적이던 형이 졌다고 증언했다. 21살때에는 도둑질로 인해 2년간의 노동교육형을 받고 1995년에 풀려났다.

3. 범행

1995년 - 청루이룽은 공범인 란치롱, 더불어 마을친척인 청모씨, 청하이팡과 함께 해선당이라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을 강도질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계획은 먼저 란치롱이 사장네 집의 대문을 열면 나머지 3명도 따라 들어가고 란치롱은 밑에서 망을 보는거였다. 계획대로 3명의 일행은 열린 대문을 통해 건물로 들어가 해선당 사장과 그의 일가족을 포함해 총 3명을 속박하고 청씨와 청하이팡은 일가족 2명을 작은 방에 가둬 감시하고 청루이룽은 목적인 사장에게 돈을 주면 풀어주겠다는 식으로 협상을 하자 사장은 20만 위안을 제시했다. 거래가 성사되자 청루이룽은 20만 위안을 받고 갈 계획이였으나 떠나려는 찰나 눈에 딱 들어온 사장의 휴대폰과 1만 HK, 몇천 위안도 챙겼다. 아직 가족들은 인질로 잡혀 있었기에 사장은 차에 청루이룽과 란치롱을 태워서 자신의 가게에 갔으며 그들에게 20만 위안을 건네줬다. 약속대로 20만 위안을 받자 청루이룽 일당은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훗날 만났을 때 청모씨가 안보였는데 청하이팡의 말에 의하면 청모씨가 체포되었다고 했다. 청루이룽은 우선 4만위안을 나눠주며 청하이팡에게 같이 도주하자고 했으나 청하이팡은 따로 흩어지겠다고 하며 다른 곳으로 도주했고 청루이룽과 란치롱도 도주했다. 청루이룽은 공범인 청하이팡의 행방을 나중에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청하이팡은 경찰의 포위망에 걸려 체포과정 중에 저항하다 총에 맞아 죽었다는 기사를 봤다고 했다.

1997년 - 청루이룽과 란치롱은 푸산에서 도망쳐 경찰의 눈을 피해 도주생활을 하고 있었다. 1년이 지나 구이린시에 머물 적에는 10만 위안이 넘는 돈을 흥청망청 썼고 청루이룽과 란치롱에게는 그즈음에 여자친구도 생겼었다. 청루이룽의 여자친구인 이모씨와 그의 여동생은 사우나의 안마방에서 일을 했는데 하루는 이모씨의 여동생이 그녀가 일하는 사우나의 여사장은 남편이 있는데 여사장이 일본여행을 갔을 때 50~60만 위안을 소비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 여사장의 남편 직업은 공인중개사인데 이러한 내용을 전해줬다. 1997년 4월, 구이린시의 경찰을 그때 방세를 조사하느라 청루이룽과 그의 여자친구 이모씨의 집도 차압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이 부정으로 벌은 2만 위안을 몰수당했다. 갑자기 돈이 궁해진 청루이룽은 란치롱과 함께 여자친구의 여동생에게 들었던 여사장의 남편을 강도질 할 계획을 세우며 여사장의 남편이 살고있는 구이린시 소재의 칠성공원 주변에 있는 호화로운 저택을 사전답사하러 갔다. 사전답사를 마치고 저택에 1000만 위안은 있어 보이니 그것을 가져가고 구이린시를 떠나 후난성의 용저우시로 기차를 타고 도주하자는 계획으로 결정했다. 청루이룽 일당은 공구점에서 범행도구를 구매하고 밤 10시에 다시 그곳을 찾아가 몰래 잡입했다. 저택엔 아무도 없었고 청루이룽 일당은 남편 방의 위치도 찾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새벽 1시가 되자 공인중개사 남편은 돌아왔고 당황한 그들은 일단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란치롱이 기습적으로 튀어 나와서 공인중개사 남편의 가슴을 칼로 찔렀다. 칼에 맞은 공인중개사는 저항했으나 청루이룽은 그의 손을 수갑으로 묶고 마당에 하반신만 묻은 후에 돈의 위치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기에 청루이룽 일당은 그의 핸드백을 챙겨 떠나려 했다. 떠나려는 찰나 청루이룽은 칼을 다시 집어 공인중개사의 등을 여러차례 찔렀고 공범 란치롱과 함께 뺐은 핸드백을 열어보았으며 핸드백에는 금목걸이와 10만엔, 신용카드가 있었으며 전부 위안화로 바꾸려 했다. 하지만 신용카드에 잔고는 없었고 먼저 후난성 용저우시에서 금목걸이를 1000위안으로 바꾸고 저장성 항저우시에서 10만엔을 5~6000위안으로 환전했다.

1998년 - 항저우에 있을 때에 청루이룽은 구이린시에 있던 여자친구에게 한번 전화를 해보고 대충 구이린시 경찰의 소식을 들은 후에 안들키게 구이린시에 들어가 다시 여자친구를 재회했다. 1998년 3월에 공범 란치롱에게 전화가 왔는데 광시성 베이하이시는 경제가 발전했으니 부자도 많을 거라며 다시 한번 범행을 하자고 했다. 그것을 들은 청루이룽은 자신은 지금 구이린시에 있고 범행목표는 정하기나 한건지 물어봤다. 얼마 안가 란치롱에게 다시 연락이 왔는데 비록 부자는 딱히 못찾았지만 한 늙은 경찰이 가진 권총을 훔치는거 어떻냐고 하며 자신이 그 늙은 경찰의 동행이나 뒷조사를 해본 결과 충분히 총을 훔칠 수 있을거라고 자부했다. 며칠 후에 란치롱은 원하던 권총을 훔쳤다고 했고 청루이룽은 란치롱에게 링산에서 만나자고 했다. 링산에서 란치롱은 청루이룽에게 훔친 권총을 건네줬고 우선 청루이룽 일당은 버스를 타고 광둥성으로 떠났다 버스 안에서 란치롱은 자신의 범행을 얘기했는데 그 경찰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먼저 숨어 있다가 경찰이 집에 왔을 때 뒤에서 몰래 접근해 망치로 머리를 쳐서 죽이고 권총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1998년 - 청루이룽 일당이 광둥성 자오칭시에 왔을 시기에 훔친 권총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러 보고 싶어했다. 자오칭시에서 한 마르고 안경 쓴 남자가 증권거래소에서 10만 위안을 찾으러 온 것을 봤는데 은행은 하루에 5만 위안만 받아갈 수 있다고 해서 그 남자는 돌아갔다. 다음날 오후 3시에 그 남자는 마저 5만 위안을 받고 다시 일하러 돌아갔으며 청루이룽 일당은 그가 퇴근하기를 기다렸고 그 남자가 저녁에 차를 타고 집에 갈때 청루이룽 일당은 오토바이를 타서 그를 미행했다. 그가 집 근처에 도착해 계단을 오르려 하자 청루이룽은 그의 뒤에서 움직이지 말라며 총을 겨눴다. 하지만 그 남자는 겁 내는 기색도 없었고 오히려 덤벼들었고 난투속에서 청루이룽은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 자신의 팔을 쏘았다. 때 마침 란치롱이 와서 그 남자를 1층으로 끌어내 잡화점 문앞에 앉혔으나 청루이룽은 그가 경찰에 신고할 것을 우려해서 남자의 머리에 총을 대고 그를 쏴 죽였다.

1998년 - 청루이룽 일당은 다시 푸산시로 돌아갔는데 첫 범행을 일으킨 해선당 사장에게 보복하기 위해서였다. 보복 이유는 한 편으로 체포된 청모씨, 총에 맞아 죽은 청하이팡의 복수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1998년 5월 22일 저녁 9시. 청루이룽 일당은 푸산시 친런시루에서 내려서 해선당 가게까지 100m를 앞두고 보행로를 향했다. 그 때 오토바이를 탄 두 남성의 그들의 앞에서 내리더니 청루이룽 일당에게 경찰이냐고 묻고 잠시 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제복은 입지 않은 사복경찰이였으며 경찰은 그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고 청루이룽은 가짜 신분증이 있었으나 단박에 들킬게 뻔했었다. 청루이룽은 마침 핸드백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경찰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경찰이 가방을 확인할 동안 두 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핸드백을 확인하던 경찰을 쐈다. 란치롱을 조사하던 다른 경찰은 총소리를 듣고 곧장 청루이룽에게 왔으나 청루이룽은 또 한번 총을 쏴서 그 경찰도 마저 죽였다. 청루이룽은 일당은 중산공원 방향으로 달아났으나 그 때도 한 경찰 오토바이가 그들 옆에 내리려고 하자 내리기도 전에 청루이청이 총을 쏘아 경찰 한명을 맞췄다. 그리고 혼란한 틈을 타서 청루이룽 일당은 또 도주했다.

1998년 - 경찰을 죽이고 1주후에 청루이룽 일당은 구이린시로 돌아왔고 청루이룽은 여자친구 이모씨의 집에서 3일간 머물렀다. 청루이룽은 오른쪽 주머니에 계속 총을 가지고 있었기도 하고 경찰이 구이린시까지 포위망을 좁혀왔을거라는 생각에 항상 불안했었다. 하루는 청루이룽이 술집에 가는 길에 술집 입구 앞에서 어떤 사람이 계속 그를 쳐다보는것을 의식했다. 그 사람은 몇 걸음 오더니 경찰이니 꼼짝말라고 소리쳤다. 청루이룽은 어느정도 달아났으나 오토바이에 탄 경찰 2명이 자신을 쫓고 있었고 뒤에 앉은 경찰은 총을 쏘았다. 청루이룽은 근처에 작은 항구가 있는 것을 보고 뛰어 들어갔으나 문듯 생각해보니 경찰 오토바이를 따돌릴 수 없을것 같기에 경찰 오토바이에 탄 경찰을 죽이기로 결심해 다시 돌아갔다. 때 마침 경찰 오토바이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거리는 2~3m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청루이룽은 권총을 뽑아 뒤에 앉아 있던 경찰의 가슴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 경찰은 죽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경찰은 구이린시 형사 과장이였다.

1999년 - 청루이룽은 5~6개월을 숨어다니다가 춘절 전에 충칭시에 갔다. 배고픔을 견뎌가며 교외의 한 농가 풀더미에서 하루를 버티고 시내 은행에서 돈을 조금 훔쳤다. 하지만 청루이룽의 행동은 의심을 받았고 치안원이 그에게 와서 뭐하냐고 묻자 청루이룽은 못들은척 하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골목을 빠져 나올 때 앞선 치안원이 미리 손을 써서 다른 치안원들이 그를 못 도망가게 가로 막았으며 청루이룽은 그렇게 포위된다. 치안원들은 신분증을 요구하고 비닐봉지에 뭐가 들었는지 물었으며 청루이룽은 다시 한번 권총을 꺼내 치안원 중 한 명의 머리를 쏘았다. 총에 맞은 치안원은 쓰러졌고 치안원들이 청루이룽을 제압하려 달려들었다. 청루이룽은 한 번 더 총을 쐈지만 이번엔 아무도 못맞췄다. 자신에게 붙은 치안원 한명을 넘어뜨렸지만 치안원들이 계속해서 총을 빼앗으려 하자 권총에 정신이 팔렸을 때 그냥 권총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도주했다.

1999년 - 3월, 청루이룽은 장시성 신펑현으로 도망쳤다. 도주와 강도질로 먹고 살며 그 해 7~8월에 신펑현에서 다위현으로 옮겨 갔는데 한 여관이 허술하기에 그곳을 강도질하기로 결심했다. 청루이룽은 유치원에 잠입해서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간 후 목표인 여관에 들어가 3층의 방 하나를 점거했고 때를 기다렸다. 한 시간 지나서 누군가 그의 방을 찾아왔고 청루이룽은 방문을 잠갔으나 문 밖에선 문이 왜 안열리지?라고 말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는 다시 돌아갔다. 여자아이가 떠난것을 확인하고 청루이룽은 문을 열고 나왔으나 계단에서 아까 그 여자아이를 만났다. 여자아이는 경각심을 가지고 방금 자기 방에 들어갔었는지랑 도둑인지를 물었으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화가 난 청루이룽은 여자아이의 목을 조른 채로 방에 데려가 강간하고 죽였다. 그때는 점심이라 여관 손님들은 아무도 안자고 있었고 청루이룽은 여자아이 시체를 두고 잠을 자고 새벽 1시에 깨서 다시 달아났다. 달아나는 중에 창문이 열린 방이 있어서 그 방에서 핸드백을 훔쳐오고 핸드백에서 2만 위안을 얻었다.

2001년 - 여름, 청루이룽은 난캉시에서 실명을 모를 '샤오지우이'라는 가명의 한 남자를 만나고 한 집을 강도질 할 계획을 세웠다. 둘은 또 다른 공범자인 '창마오'라는 가명의 사람을 찾기 위해 신펑현으로 갔지만 결국 못찾고 다시 난캉현으로 돌아왔다. 백주대낮에 길을 걷던 청루이룽과 샤오지우이는 신축건물들을 발견하고 분명히 돈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축건물 하나를 골라 잡아 들어간 청루이룽 일당은 한 집의 문이 안 잠겨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집에 들어갔다. 그 곳엔 30살로 보이는 여자와 7~8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의 아들이 자고 있었다. 청루이룽은 그들이 잠에서 깨지 않게 몰래 집안의 재화를 훔쳤는데 샤오지우이가 신호를 냈다. 바로 잠들었던 여자가 잠에서 깼는데 당연히 그 여자는 소리를 질렀고 청루이룽은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녀는 청루이룽의 손가락을 깨물며 저항했지만 샤오지우이가 청루이룽을 도와 그녀를 칼로 찔렀고 완력으로 그녀의 입을 찢어버렸다. 그래도 입이 찢어진채로 그녀는 저항을 했고 청루이룽 일당은 결국 그녀를 죽였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이 잠에서 깨 울음을 터트리자 샤오지우이는 단칼에 그녀의 아들도 죽였다.

2005년 - 청루이룽은 첫 범행이후 계속 도주를 하고 지내다 2005년 하루는 공범과 함께 금고 하나를 털어서 많은 양의 현금을 챙겼다. 그리고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하필 경찰의 단속에 걸리게 된다. 공범은 휴대폰과 현금이 많이 있어서 경찰의 의심을 샀는데 이 상황에서 못 벗어날것 같자 청루이룽은 경찰에게 칼을 휘둘렀다. 경찰은 얼굴에서 귀까지 크게 한번 베이고 버스 안에서 자빠졌다. 또 다른 경찰이 그 상황을 보고 청루이룽을 제압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 경찰도 팔에 칼을 맞았고 청루이룽은 그 틈을 타 버스에서 내려 도주했다. 하지만 팔을 다친 경찰도 벽돌을 집은 채로 청루이룽의 뒤를 쫓아가 잡은 다음에 벽돌로 머리를 쳤다. 청루이룽은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경찰서 안이였다.

4. 판결

2010년 2월 21일, 광둥성 푸산시 법원 1심은 청루이룽의 재산을 몰수하고 경찰살해, 강도, 강간, 연쇄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고 2010년 7월 9일, 2심도 똑같이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을 선고 받을 때에는 가족이 왔는지 안왔는지 흘깃흘깃 보고 사형전에는 가족들에게 지금 이 사실이 전해졌냐고 물어봤다. 2010년 11월 2일 독극물 주사형으로 사형이 집행되어 청루이룽은 사망한다. 죽기전에 그의 아들에게 유서 하나를 남긴게 전부다.

5. 아들

청루이룽은 13년의 도주생활 중에 가장 보고 싶어했던건 자신의 아들이였다. 양모씨와 결혼한 청루이룽은 아들을 가지는데 한 중국의 기자가 롄저우시를 찾아가 청루이룽의 아내였던 양모씨를 만나서 취재를 했는데 청루이룽의 도주생활 때문에 자신도 얼굴을 거의 못 봤고 아들은 사실상 아버지인 청루이룽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 조차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양모씨는 자신의 아들이 그 일에 얽히지 않고 착실히 학교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기자에게 떠나달라고 부탁했다.

6. 여담

살인사건 6건, 6명의 사망자, 경찰 4명 사망, 상해 2명으로 다 합쳐 10건의 범행을 저질렀으며 13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청루이룽의 친형인 청루이팡은 동생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피해자가 안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생이 사형으로 죽지 않고 다시 좋은 성격으로 변해 해를 끼치고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내심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