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1:21:14

채기목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모바라 키보쿠(茂原基穆)
자 / 호 경문(敬文) / 소산(素山)
본관 인천 채씨[1]
출생 1883년 5월 11일[2]
경상도 풍기군 서부면 고로촌리
(現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 한림촌마을 5번지)
사망 1962년 10월 23일[3] (향년 79세)
묘소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 수용골마을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2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83년 5월 11일 경상도 풍기군 서부면 고로촌리(現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서부리 한림촌마을 5번지)에서 아버지 채장환(蔡章煥, 1809. 1. 5 ~ 1909. 1. 3)과 어머니 양천 허씨(? ~ ?. 11. 29)[4] 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7월 경상북도 대구부 달성정(現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에서 박상진· 채기중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회원으로 가입해 주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했다. 이후 1918년 1월 24일 충청남도 아산군에서 광복회원 김한종· 장두환(張斗煥)의 지시하에 임봉주(林鳳柱)· 김경태(金敬泰) 등이 도고면장을 지낸 박용하(朴容夏)에게 「사형선고문」을 읽게 한 뒤 총살한 사건이 벌어진 직후 관련자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1918년 4월 23일 소위 보안법 위반 및 강도· 살인· 공갈 등의 혐의로 구류되었다가, 4월 30일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에서 같은 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했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62년 10월 23일 사망했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소감공파(少監公派)-인천군 종파(仁川君宗派) 28세 기(基) 항렬. [2] 인천채씨족보 제4권 617쪽에는 1882년 5월 10일에 태어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 [3] 인천채씨족보 제4권 617쪽에는 1957년 8월 24일에 사망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 [4] 허문(許汶)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