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8-22 22:54:48

찬드 비비

Chand Bibi
(1550 ~ 1599)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비자푸르 술탄국의 섭정, 아흐마드나가르 술탄국의 왕족이자 섭정. 후세인 니잠 샤 1세의 딸, 무르타자 니잠 샤 1세의 여동생, 부르한 니잠 샤 2세의 누나.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마라타어, 칸나다어 등 다양한 언어에 능통했으며, 시타르를 연주하고 꽃을 그리는 것이 취미였다.

2. 생애

동맹으로 알리 아딜 샤 1세와 결혼했고 알리 아딜 샤의 아버지인 이브라힘 아딜 샤는 수니파와 권력을 나누었으나, 알리 아딜 샤는 시아파를 선호했다가 1580년에 죽자 수니파에서 이브라힘 아딜 샤 1세의 조카를 옹립해 이브라힘 아딜 샤 2세를 옹립해 카말 칸이 섭정이 되었다.

찬드 비비는 하지 키시바르 칸의 도움을 받아 카말 칸을 몰아냈으며, 키시바르 칸이 섭정이 되어 아흐마드나가르를 공격해 승리하고 키시바르 칸이 모든 코끼리를 자신에게 주라고 하자 여러 장군이 화를 냈다. 찬드 비비는 무스타파 칸의 도움을 받아 키시바르 칸을 몰아내려 했다가 실패하고 사타라 요새에 투옥되었다.

이클라스 칸이 이끄는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키시바르 칸이 축출되고 찬드 비비는 일시적으로 섭정 역할을 했으며, 이어서 이클라스 칸이 섭정이 되어 독재를 했지만, 아마드나가르의 니잠 샤히가 골콘다와 동맹을 맺고 비자푸르를 공격하자 혼자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찬드 비비에게 섭정 자리를 넘겼다.

찬드 비비가 임명한 이부 울 하산이 마라타에 군대를 요청하고 이들을 막았으며, 이클라스 칸이 딜라 바르 칸을 공격해 비자푸르의 통제권을 장악했다가 패배하고 딜리 바르 칸이 1591년까지 9년간 섭정이 되었다. 찬드 비비는 비자푸르 왕국의 질서가 회복되자 아흐마드나가르로 돌아갔다.

1595년에 부르한 니잠 샤 2세가 사망하면서 데칸의 장관 미얀 만주가 사촌 타히르를 옹립하려 들자 귀족들이 반대했고, 미얀 만주가 무굴 제국의 황족인 무라드 미르자에게 요청해 아마드나가르를 공격하기를 요청했다. 무라드가 진군하자 반대했던 귀족들이 미얀 만주에게 합류했으며, 미얀 만주는 무굴 제국을 끌어뜰인 것을 후회하면서 찬드 비비에게 섭정을 맡겼으며, 찬드 비비는 바하두르 니쟘 샤를 아흐마드나가르의 왕으로 세웠다.

1595년 11월에 무라드 미르자가 아흐마드나가르를 공격했고, 1596년에 무라드 미르자가 철수하자 베라르를 양도하고 평화를 맺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무굴 제국의 군대가 공격하자 비자푸르, 골콘다에 무굴 제국의 군대에 대항해달라고 요청했으며, 무하마드 칸을 장관에 임명했지만 무하마드 칸은 무굴 제국에 접촉해 아흐마드나가르를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무굴 제국의 군대가 연합군을 격파당했고 1597년에 무굴 제국의 군대가 돌아갔다가 1599년에 다니얄 칸이 이끄는 무굴 제국의 군대에 대항했으나,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하자 협상하려고 했다. 귀족인 하미드 칸이 무굴 제국과의 조약을 맺었다고 과장해서 퍼뜨리자 분노한 군중에게 살해당했으며, 찬드 비비가 죽고 4개월 4일 동안 아흐마드나가르는 무굴 제국의 군대에 포위당했다가 함락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대항해시대 6에서 3성 급의 항해사로 등장한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에서 사용 가능한 제독 중 한 명으로 나온다. 성우는 윤아영(한국)/ 한 메구미(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