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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22:31:08

질베르 모티에 드라파예트

이름 질베르 모티에 드라파예트
Gilbert Motier de La Fayette
출생 1380년
프랑스 왕국 오베르뉴
사망 1462년 2월 22일
프랑스 왕국 오베르뉴
아버지 질베르 모티에 드라파예트
어머니 카트린 브린 뒤 페신
형제자매 바르톨로메오, 알게, 질베르
배우자 도핀 드 몽트린요, 잔 드 조이유즈
자녀 샤를, 앙투안, 프랑수아즈, 장, 루이, 카트린, 안, 질베르, 루이즈( 사생아)
직위 프랑스 원수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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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군과 맞섰다.

2. 생애

1380년경 프랑스 왕국 오베르뉴 지방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라파예트, 퐁지보, 아이즈, 네부자크, 생로마, 몽텔 드 젤라트 영주 질베르모티에 드라파예트였고, 어머니는 카트린 브린 뒤 페신이었다. 형제자매로 볼트의 기사 바르톨로메오, 몽텔과 질베르테의 영주 베르나르 뒤 라크의 부인 알게, 바셀의 영주 장 드 바셀의 부인 질베르가 있었다.

일찍이 부르봉 공작 루이 2세 드 부르봉의 궁정에서 자랐고, 1401년 '부시코 원수' 장 2세 르 맹그르가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제노바 공화국의 총독으로 부임할 때 동행했고, 그의 지휘하에 여러 작전을 수행했다. 1409년 장 2세 르 맹그르가 제노바에서 축출된 뒤 프랑스로 귀환할 때도 따라갔고, 부르봉 공국의 대의원이 되었다.

1413년 샤랑트마리팅의 수비즈에서 부르봉 공작 장 1세 드 부르봉의 지휘하에 부르고뉴군과 맞서 싸웠으며, 1415년 콩피에뉴에서도 부르봉 공작의 지휘하에 부르고뉴군과 싸웠다. 이후 도팽 샤를의 시종이자 고문으로 발탁되었고, 랑그독과 비에누아의 보안관을 역임했다. 1417년 리옹과 마코네의 보안관을 맡았으며, 1417년 캉과 팔레즈를 부르고뉴군의 침략에 맞서 사수했고, 1419년 볼리외를 부르고뉴군으로부터 지키려 했으나 끝내 빼앗겼다. 이후 1420년부터 1422년까지 도피네 총독을 역임했다.

1421년 3월 21일, 도팽 샤를에 가담한 스코틀랜드 지휘관 뷰컨 백작 존 스튜어트와 함께 앙주에 쳐들어온 클라렌스 백작 랭커스터의 토머스의 잉글랜드군을 격퇴하기 위해 출진해 루아르 강을 건너 보제 마을 인근에 숙영했다. 3월 22일, 적이 어디에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정찰을 나갔던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잉글랜드군에 체포되어 토머스 앞으로 끌려왔다. 그들은 심문 끝에 아군이 보제 마을에 진을 치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에 토머스는 즉시 그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이후 벌어진 보제 전투에서, 그는 토머스가 섣불리 공격하느라 궁수병을 한 명도 대동하고 오지 않은 틈을 타 뷰컨 백작과 함께 역공을 가해 잉글랜드군을 격파하고 토머스를 사살했다. 그는 공적을 인정받아 프랑스 원수에 선임되었다.

1424년 베르뇌유 전투에 참전했지만 참패를 면치 못하고 생포되었고, 얼마 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1429년 오를레앙 공방전에 참여해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을 구원하는 데 일조했으며, 뒤이은 루아르 원정 랭스 행진에 참여한 뒤 샤를 7세의 프랑스 국왕 대관식에도 참석했다. 1435년 부르고뉴파와 샤를 7세간의 평화 협약인 아라스 조약의 협상가이자 서명자 중 한 명이었으며, 1445년부터 1448년까지 프랑스 각지에서 약탈을 자행하는 자유 용병대를 진압하기 위해 상비군을 강화하는 샤를 7세의 정책을 지지했다. 1449년 제2대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와 협상해 루앙을넘겨받고 잉글랜드군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협약을 성사시켰다.

1462년 2월 23일 오베르뉴에서 사망했고, 라셰즈디외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1] 1424년 8월 장인과 함께 베르뇌유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