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21:52:23
진왕위계승전 秦國王位繼承戰 War of the Qin Dynasty Succ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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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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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11년~
기원전 3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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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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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관중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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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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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직을 지지하는 초나라와 영탕을 지지하는 조선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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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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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직파 초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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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탕파 조선朝鮮 흉노匈奴 의거義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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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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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서장자 영직 진 대량조 위염
초 남전대부 소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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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태자 영탕 진 우서장 사마착 진 공자 영화 진 운양현령 우주대
조선 상방 조옹 조선 위장군 투제 조선 음진현령
흉노 서장자 요시코
의거 지원군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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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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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직파 진 약양 수비군 4천3백 진 함양 주둔군 6천1백 진 경양 주둔군 4천1백
초 남전군 3만6천 위수 남부군 1만2천
총합 6만 2천 5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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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탕파 진 빈양 주둔군 5천5백 진 농서군 2만7천 진 서부군 3만3천
조선 무령군 직속기병 7천3백 조선 음진 주둔군 1만
흉노군 4천1백
의거군 7천3백
총합 9만 4천 3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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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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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군 약 1만9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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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군 2천 8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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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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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군 패배, 초나라 대부 소활 전사, 태자 영탕이 왕위계승 및 남전 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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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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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위관계 파탄 및 조진동맹과 제초동맹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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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전개4. 결말5. 영향5.1. 진, 본격적인 대초투쟁의 시작5.2. 조선, 기유의 야바위5.3. 초, 견원지간이 손을 잡다5.4. 위, 고도의 유연성을 유지하며 임기응변으로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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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에 나오는 가공의 전쟁. 진왕 영사가 죽자 조선에 인질로 있던 영탕과 실질적으로 후계자로 지명된 영직이 각기 조선와 초의 지원을 받아 진국 왕좌를 두고 벌인 전쟁.자신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진왕 영사는 자신이 총애하는 자식 영직에게 보위를 물려주기 위해 계승권자들을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명목상 장자인 영탕은 멀리 조선에 있었고, 별다른 세력을 가지지 못한 영통은 유폐시켰다. 남은 공자 영휘는 처남이자 대량조인 위염을 불러 상의하니 마침 촉에서 진에게 지원군을 요청한것을 이용하여 처리하기로 하였다. 영휘에게 촉으로 가는 지원군을 맡으라는 명령을 내리자 영휘는 이번 기회를 잡아 공을 세워 후계자 낙점받을 생각에 외가의 가병까지 모아 촉으로 가기로 하였다. 영사는 내사군 1만을 위염의 절친 백기에게 맡겨 틈을 보아 영휘와 그 세력을 처리하라고 밀명을 내렸다. 그렇게 영휘가 촉으로 떠나고 얼마후 영사는 자신의 침대에서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부여잡으며 곁을 지키고 있는 위염에게 휘를 처리했냐고 묻자 위염이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고 답변하자 "...그런가" 라 답하고 눈을 감았다. 기원전 311년 파란만장한 삶을 산 진왕 영사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함양에서 진왕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남과 동으로 전령이 달려갔다. 진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초조정은 인질로 데리고 있던 공자 영직을 다시 진으로 보내어 진의 왕위를 잇게하려 했다. 초왕 웅괴는 초나라가 영직을 확실히 지지하고 있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보옥 수레와 비단 휘장과 숙련된 의장대를 들려보내고, 진의 반초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별도의 호위병력은 대동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소수가 식겁해하며 가장 중요한 일은 후계자를 수도에 무사히 갖다놓는 일이니 호위병력을 대동시켜 넘어가라 조언하였다. 이에 웅괴는 절충하여, 남전까지만 병력을 대동하기로 한다.진왕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은 상방 조옹은 즉시 인질로 있는 영탕의 방으로 달려갔다. 영탕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온 조옹에게 놀라하며 항의하였지만, 조옹은 싹 무시하고 영탕에게 짐을 싸 태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영탕이 사유를 묻자 조옹은 진왕이 죽었다는 사실과 초가 지지하는 영직이 아닌 자신들이 지지하는 영탕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답하였다. 이에 영탕은 망설임없이 조옹의 제안에 동생인 영직의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수락하였다. 그렇게 태원으로 향하여 위에 월경 허가를 요청하였지만, 이미 초와 내응하기로 결심한 위는 소려를 보내 하남에 큰 역을 동원하여, 지원해주기 어렵다는 답변하였다. 조옹은 크게 분개하였지만 이전 비의가 위나라 사정이 어려워 유사시 지원이 어려울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것을 상기하며 분을 삭이고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영탕이 어쩌냐며 묻자 조옹은 운중의 직진도를 이용해 함양으로 갈수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전령을 보내 맥성에 허가를 맡아오도록 하고 자신은 영탕과 운중으로 달려갔다.3.1. 기원전 311년
조옹으로부터 요청한 내용을 전해들은 조선조정은 무모한 계획이라며 반대하는 고질과 가능성이 있으니 해보자는 하기로 나누어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현지에 능통한 위장군 비비오까지 소환되어 논의한결과 기유는 승상 비의와 위장군 비비오를 현지로 파견하고 조정에서는 어떠한 결론이 내려지든 바로 움직일수 있게 준비에 들어갔다.3.1.4. 위왕후, 영하와 손을 잡다
3.2. 기원전 310년
4.1. 영탕 진왕에 오르다
5.1. 진, 본격적인 대초투쟁의 시작
5.2. 조선, 기유의 야바위
5.3. 초, 견원지간이 손을 잡다
5.4. 위, 고도의 유연성을 유지하며 임기응변으로 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