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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09:34:42

진무영

1. 개요

鎭撫營

조선 시대 강화도에 설치되어 강화도 한강 수로를 지키던 군영. 강화도 경기도 연안 뿐 아니라 충청도 일부도 위수지역으로 하였다. 지휘관은 진무사(鎭撫使)[1]라 하였으며 진무사는 강화유수가 겸하였다.

2. 역사

숙종 4년(1678) 강화도의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강화유수가 진무사(鎭撫使)를 겸하게 하였고, 숙종 26년(1700) 진무영(鎭撫營) 본영을 설치하면서 진무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진무영 설치의 계기는 병자호란 당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남한산성의 군사적 가치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었고 반대급부로 강화도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정조 대인 1779년 국가 재정이 많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통어영[2]과 병합되었으나, 10년만인 1789년 다시 분리되었다.

고종 즉위 시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서양 열강의 군대와 직접 싸워본 몇 안되는 군영 중의 하나이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시기 경기도 연안 일대 육군과 수군을 총지휘하고 진무사가 외등단에 해당되는 등 그 지휘과 영향력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고종이 친정한 이후에는 격하되었다. 1883년 친군기연해방영(親軍畿沿海防營)을 설치하면서 그 예하로 들어갔고, 1887년 친군심영(親軍沁營)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갑오개혁을 통해 친군심영이 해체되며 그 자리를 강화지방대, 강화 진위대가 대신 잇게 된다.

3. 편제

품계 관직 비고
종2품 진무사(鎭撫使) 강화유수가 겸임
정3품 중군(中軍) 부사령관, 참모장 역할
정3품 진영장(鎭營將) 5개의 영(營)의 지휘관
군영 지역 비고
전영(前營) 부평부(富平府) 전영장(前營將)은 부평부사가 겸하였다.
후영(後營) 연안부(延安府) 후영장(後營將)은 연안부사가 겸하였다.
중영(中營) 미상 중영장(中營將)은 진무영 중군이 겸하였다.
좌영(左營) 통진부(通津府) 좌영장(左營將)은 통진부사가 겸하였다.
우영(右營) 풍덕부(豊德府) 우영장(右營將)은 풍덕부사가 겸하였다.
별중영(別中營) 충청도 12개 읍 해미에 군영이 위치하였다.

[1] 종2품 [2] 조선 후기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지역 수군을 지휘하던 군영으로 정식 이름은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이다. 통어영 본청은 교동도에 위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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