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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16:56:33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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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
2.1. 다양한 주제2.2. 양적인 방대함2.3. 무료 강의2.4. 질문자에 맞는 설법 내용 (맞춤 법문)2.5. 불교에 바탕을 둔 ‘법문’2.6. 다양한 관점에 따른 의견과 질문자의 '자각'

1. 개요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법륜스님의 하루

파일:external/blogfiles7.naver.net/%B9%FD%B7%FB%BD%BA%B4%D45.jpg

파일:20160430155148_e2fed3f5e5b0afca2e9c0c7bcbf30660.jpg

‘즉문즉설(卽問卽說)’은 뜻 그대로 풀면 '즉시 묻고 즉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며, 달리 말하면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에 대해 종류와 무관하게 묻고 대화하는 자리'이다.[1]

그 시작은 법륜인 것으로 보이며, 그 뒤를 따라 여러 스님들이 '즉문즉설'을 진행중에 있다. 본 문서에서는 이른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대해 서술한다.

법륜은 2000년대 초반부터 즉문즉설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2][3]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국내와 해외에서 강연을 진행하고 있었고 코로나 시대에는 온라인으로 강연을 진행했다.[4] 2012년에는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타이틀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300회 강연을 진행하며 3천 개가 넘는 질문을 받았으며[5], 2014년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6] 일본 오사카까지[7] 전세계 115개 도시를 찾아가 그곳에 사는 교민들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세계 100회 강연)을 하였다.[8] 2018년은 '법륜스님 즉문즉설 행복한 대화'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진행되었고 2024년은 북미서부강연 시애틀을 시작으로 오렌지카운티까지 순회강연을 하였고 10월 현재 국내 오프라인 강연을 진행중에 있다.[9]

2. 특징

2.1. 다양한 주제

즉문즉설의 내용은 다수를 차지하는 개인적인 고민, 가정사에 대한 것에서부터 사회, 정치, 철학, 과학, 종교적인 것까지를 포괄하며, 질문자의 연령대도 초등학생부터 7, 80대까지 다양하다.[11]

그 중 몇 가지의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2.2. 양적인 방대함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즉문즉설 영상의 개수는 헤아릴수없다.[12] 또한 해당 영상들이 평균 10여분 정도로 편집되어 있는데 실제 강연장에서의 즉문즉설이 한 번에 대략 3~4시간이 진행된다는 점을 보면[13] 실제의 즉문즉설의 양은 그보다 더 많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즉문즉설의 내용이 담긴 법륜의 저서가 1998년에 발간되었고[14] 많을 때는 연 300회의 강연[15]이 열렸다는 점을 보았을 때 그 동안 행해진 즉문즉설의 양과 내용은 방대하다고 볼 수 있다.

2024년 10월 기준 팟빵에는 약 1577여 개의 팟캐스트들이 올라와 있다.

2.3. 무료 강의

즉문즉설은 모두 무료 강의다. 법륜스님은 일반 대중강의뿐만 아니라 기업체 강의나 지자체 초청강의까지 모두 무료 강의를 기본으로 한다. 무료 강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강당이나 공연장을 빌리는데 비용이 들고 이 비용을 스님(정토회)이 부담하기 때문에 실제는 자선사업에 가깝다. 실제로 이 비용조차도 아끼기 위해 대강당보다는 중소강당 위주로 빌려서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간혹 행사장에 왔다가 입장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무료로 강의하는 이유는 먼저 부처님도 돈 받고 강의하지 않았으니 본인도 돈을 받고 강의할 수 없다는 대원칙과(하다못해 진행요원이나 정토회 직원, 사업들도 모두 자원봉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꾸려간다. 이 이유도 부처님 시대에 돈 받고 따라다니며 일한 사람이 없다는 이유와 같다.) 돈을 받고 강의를 하면 돈에 쫒아가게 되고,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신 강의를 마치고나면 로비에서 법륜스님의 책을 판매하고, 저자 싸인도 해준다. 그 이익금으로 적자를 줄이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자를 면할 수 없는 구조다.

즉문즉설 유튜브 조회수도 회당 크게는 몇백만, 보통 몇십만을 찍지만 그 흔한 광고 하나 안 붙인다.

2.4. 질문자에 맞는 설법 내용 (맞춤 법문)

붓다의 문답을 통한 대화에서 중요한 특징은 질문자에 맞추어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즉 질문도 대답도 대화하는 상대방에 맞춘 대화로 이루어진 가르침이 바로 '대기설법'이다.[16]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 또한 질문이 같더라도 사람에 따라 답변을 다르게 내어주는 경우가 있었다.[17] 그처럼 법륜의 즉문즉설도 얼핏 보면 같은 질문에 대해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답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그와 같은 답변의 예이다.

(남편이 질문한 고부갈등)
Q :"어머니가 아내를 너무너무 미워합니다. 신혼초에는 음식을 못한다고 구박하더니 지금은 욕설까지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본인이 한 여인의 아들로서 살 것인지,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살 것인지 입장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선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입니까?"
Q :"(한참 고민 후) 집사람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A :"잘 선택하셨어요. (그렇게 남편은) 내 가정과 아내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어머니를 모신다 하더라도 반드시 먼저 아내의 동의하를 얻어야 합니다." [18]

(아내가 질문한 고부갈등)
Q : "시어머니에게 상처를 받아 피해의식이 있고, 상처 받을 때마다 남편이 저의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A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아내에게 어머니를 이해하라고 말하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서운하고 무시당하는 생각이 드는 것뿐입니다." [19]

이처럼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누가 질문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답변이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법륜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누가 서울로 가는 방향을 물을 때 그가 인천에서 물었다면 '동쪽으로 가라'고 말하고, 수원에서 물었다면 '북쪽으로 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질문자가가 선 위치와 관점에 따라 답변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문즉설에서 스님이 하는 말은 수행자들이 일반적으로 갖춰야할 '지혜'를 전달함과 동시에 질문자의 상황과 환경에 맞춘 대답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대답을 참고하여 스스로 본인의 상황에 맞게 응용 하도록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스님이 말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2.5. 불교에 바탕을 둔 ‘법문’

즉문즉설은 상담이나 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불교의 원리를 바탕으로 깔고 진행되는 '법문'(法文Dharma)[20]이다. ' 붓다'의 법문 역시 대화의 형식을 띠고 있었고, 소크라테스의 철학도 대화를 통해 펼쳐졌던 것을 볼 때, 대화의 형식을 통한 설법 역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법륜 스스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저는 인생 상담사가 아니에요. 저의 본분은 담마를 전하는 것, 즉 사람들이 무지를 깨우쳐서 밝아지도록 하는 겁니다.”[21]
"즉문즉설의 해답이 금강경이었나요?" "꼭 금강경이라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핵심은 중도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대승불교적으로는 공(空)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즉문즉설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 토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불교TV 대담)[22]
'술은 나쁜 것이라는 게 바른 생각일까요? 아니면 술이 좋은 것인가요? 아닙니다. 술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공(空)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술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에 근거해 술마시는 남편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미워하면 상에 집착한 것이 됩니다. 상에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술이 보약이라는 말 속에는 존재의 실상이 공하다는 표현은 없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 술은 나쁘다는 내 생각이 뒤집어 질 수 있습니다.’ .

불교는 깨달음을 위한 종교이고 법륜의 즉문즉설은 특정 상황이나 사람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번뇌를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지 않는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부모’에게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문제가 없다’라고 답한다.[* 아이는 본래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아이가 공부 잘 하기를 원하면 아이는 문제아가 됩니다. 그러나 ‘공부 잘해서 뭐하나?’, ‘공부 잘한다고 꼭 좋은 게 아니더라.’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본래 문제가 없는데 내가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있는 것이 되고, 내가 문제로 안 삼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됩니다. 문제가 있고 없음이 아이에게 있어요? 나에게 있어요? 나한테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옳다, 그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하는 모양은 내 마음이 짓는 것이지 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23]

즉문즉설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강연의 시작 또는 끝 마무리를 할 때 항상 스님이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부가 검든 희든,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적든 많든, 장애가 있든 없든, 어릴때 안좋은 경험(성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등)이 있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즉, 이말은 본인의 현재 상황과 처지가 어떻든,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든 지금 행복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6. 다양한 관점에 따른 의견과 질문자의 '자각'

즉문즉설이 바탕을 두고 있는 붓다의 설법 방식은 대화를 통해 질문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나 무지를 깨닫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의문이나 괴로움을 해결하는 방식의 대화를 말한다.[24]
이에 대해 법륜은 아래와 같은 붓다의 사례를 소개 한다. 붓다,나를흔들다
어느 날 붓다에게 가미니라는 젊은 수행자가 물었다. “붓다여, 사제들이 말하기를 성스러운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은 사람도 몸의 때가 씻어지듯이 죄업이 다 녹아서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러자 붓다는 빙긋이 웃으면서, “만약에 그들의 말이 맞다면 강가 강에 사는 물고기들이 가장 먼저 천국에 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붓다는 질문자의 질문에 '답'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질문 속에 있는 모순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즉문즉설은 어디까지나 조언에 해당되며 명확한 답은 없다. 스님이 이거 해라라고 한다고 해서 무조건 할 필요는 없고 이거 하지 마라라고 해서 무조건 하지 않아도 되는게 아니며, 이는 어떠한 스님의 말에도 예외는 없다. 즉 질문자가 스님의 말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면 반영하지 않아도 되고 어느쪽을 선택하든 나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의 책임이며, 법륜 스님 역시 이를 강조한바가 있다.[25] 그처럼 즉문즉설에서도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 스스로 모순을 보게 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고민에서 벗어나도 도와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래서 '즉문즉설'은 '즉문즉답'이 아닌 '즉문즉설'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정답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 대화를 통해 스스로 자신 문제를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 교리로 치자면 중도에 해당되는 조언을 남기는 것이다. [26]

이는 즉문즉설을 신청하는 질문자에게도 원인이 있는데, 대다수의 질문자가 즉문즉설을 신청하는 이유는 스님이라면 어떻게든 해줄것이다라는 과도한 기대를 품으며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륜 스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질문자가 어리석다고 볼수 있는데,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고 인간 관계는 심리 치료사나 카운셀러를 찾아가면 되는 일이거늘 굳이 질문할 필요 없는 고민까지 어떻게든 해달라고 구걸하다보니 문제인 것이다. 스님 역시 왜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물어보느냐자신은 해결사도 의사도 아니며 그저 조언만 할뿐이라며 이 부분을 크게 비판하고 있다.

아래는 그에 대한 즉문즉설의 예시이다.
Q : "공무원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공무원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니에요. 인생은 일반론이 아니니까요. 오늘도 어느 회사에서 강의를 요청했지만 저는 할 말이 없다고 했어요. 묻는다면 이야기하겠지만 제가 먼저 가서 ‘어떻게 해라’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27]


[1] 즉문즉설이란 [2] 정토회 홈페이지 내 정토 TV에서 올린 즉문즉설 업데이트 내용. 2003년 3월 28일 이전에도 즉문즉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3] 유튜브, 팟캐스트, 팟빵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하여 즉문즉설을 들을 수 있다. 아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유튜브 채널. # [4] 2015년에는 미국 강연을 구글에서 진행된 적이 있다. # [5] 2012년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 [6] 2014. 8. 26. 세계 100회 강연(1) 프랑크푸르트 # [7] 2014. 12. 18. 세계 100회 강연(115) 일본 오사카 大阪市 # [8] 2014년 세계 100회 강연(115회 강연)을 진행하였다. # [9] 2024년 법륜스님 즉문즉설 행복한 대화 강연일정 페이지 # [10] 2014년 스님의 하루 세계 100회 강연 # [11] 내게맞는즉문즉설 [12] https://www.youtube.com/user/jungtosociety/featured [13] https://www.jungto.org/jungto/notice.html?sm=v&p_no=41&b_no=74566 [14] 번뇌속으로세상속으로 [15]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03 [16] 붓다의 대화법과 『능가경』에 나타나는 무기설의 특징,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종교와 문화> 22권 0호 (2012), pp. 115-136 http://kiss.kstudy.com/journal/thesis_name.asp?tname=kiss2002&key=3073329 [17] 붓다는 유신론자에게 ‘신은 없다’고 답변했으며 무신론자에게는 ‘신은 있다’, 구도자에게는 침묵으로 답했다. 이를 지켜본 아난다가 혼란스러워 미칠 지경이라며 그 이유를 묻자 붓다가 대답했다. 유신론자는 신의 존재가 있다는 생각으로 정해진 대답을 가지고 와서,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옳다. 붓다도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 위해 나의 협조를 청하러 왔을 뿐이므로, 붓다가 그의 믿음을 깨트리기 위해서 신이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는 ‘신은 없다’는 주어진 대답을 들고 왔고, 붓다가 그의 불신을 강화시켜주길 원했다. 그래서 붓다는 그에게 ‘신은 존재한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같았다. 유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믿음을 깨트려주었고, 무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불신도 깨뜨려주었다. 신앙은 긍정이고 불신은 부정적이지만 양쪽 다 같다. 둘 다 아는 자도 아니고, 둘 다 경험한 구도자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1025 [18] 유튜브 즉문즉설 아내를 미워하는 어머니 https://youtu.be/cadpjntGR0k [19] 유튜브 즉문즉설 "시집살이, 참고살기 억울하고 힘들어요" https://youtu.be/exdhN1pqb1Y [20] 여기서말하는 '법문'이란 전통적 의미에서의 '불교적 법문'과는 다르다. 법륜 자신도 즉문즉설 중에 강조하듯이 종교로서의 불교와, 일반적 진리를 말하는 'Dharma'는 다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현재 서구에서는 이른바 종교는 불교가 아니지만 불교적 수행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이나, 혹은 소위 크리스천-부디스트 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101024003 [21] http://m.jungto.org/view.php?p_no=74&b_no=75957&page=1 [22] BTN대담 [23] 법륜, 희망편지 [24] 붓다의 대화법과 『능가경』에 나타나는 무기설의 특징,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종교와 문화> 22권0호 (2012), pp.115-136 http://kiss.kstudy.com/journal/thesis_name.asp?tname=kiss2002&key=3073329 [25] 붓다는 어느 것이 옳다든지 혹은 그르다든지 하여 옳고 그름을 판정하기보다는 늘 스스로 알아서 깨닫도록 했다. 상대의 주장을 부정하거나 비난하거나 배척하지도 않았다. 위 이야기에서처럼 상대방 말 속의 모순을 지적해 줌으로써 질문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했다. 이렇게 스스로 깨달은 사람은 다시는 그 문제에 대해 의문이나 의혹을 품지 않는다. 붓다는 또 합당하고 합리적인 언어로,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했다. 이론적인 이야기를 어렵게 한 적도 없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알쏭달쏭하게 한 적도 없다. 그래서 붓다의 말은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도 한 번 들으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붓다,나를 흔들다> [26] 즉문즉답이라고 하지않고 즉문즉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질문을 하는 분에게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괴로운 이유는 한 면만을 보고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화를 하면서 다른 면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코끼리가 기둥같이 생겼다고 하면 귀를 만져보게 하고 부채같이 생겼네, 꼬리를 만져보고 빗자루같이 생겼네, 배를 만져보고 벽같이 생겼네 이렇게 다른 면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전모, 전체를 다 알게 되면 코끼리가 기둥같이 생겼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 기둥같이 생긴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 이것이 깨달아 가는 것, 진리로 나아가는 것, 깨우쳐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설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님의하루2013.5.13. [27] http://m.jungto.org/view.php?p_no=74&b_no=75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