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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4 12:49:46

존 맥페일

스코틀랜드의 前 축구 선수
파일:John McPhail.jpg
<colbgcolor=#eee><colcolor=#000> 이름 존 맥페일
John McPhail
출생 1923년 12월 27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포실파크
사망 2000년 11월 6일 (향년 76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스코틀랜드|]][[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 선수 ( 공격수 / 은퇴)
저널리스트 (은퇴)
소속 <colbgcolor=#eee><colcolor=#000> 선수 스트래스클라이드 FC (미상)
셀틱 FC (1941-1956)
기타 데일리 레코드 (미상 / 저널리스트)
국가대표 5경기 3골 ( 스코틀랜드 / 1949-1953)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
3.1. 이후
4. 수상
4.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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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의 전 축구 선수.

2. 클럽 경력[1]

맥페일은 스트래스클라이드를 거쳐 1941년에 셀틱에 입단했고 처음에는 라이트 윙 하프에서 뛰었다. 그는 처음에 아웃프런트 킥을 자주 사용해서 후키(Hooky)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는 평생 그를 상징하는 별명이 되었다.

맥페일이 활약하던 당시 셀틱의 최대 라이벌인 레인저스의 강세가 오래 유지되었기에 맥페일은 셀틱에서 스코티시 풋볼 리그 디비전 원 우승 1회, 스코티시컵 우승 2회로 다소 적은 숫자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오렸다. 이 우승 기록들은 맥페일이 센터 포워드로 포지션 변경을 했던 1950년 이후에서야 나왔다.

1954년 무렵부터 맥페일은 노쇠화가 시작되어 셀틱에서의 출전 횟수가 줄어갔고, 푸슈카시 페렌츠의 훈련법을 따라할 정도로 노쇠화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맥페일에게 푸슈카시의 방법은 맞지 않았고 여기에 가족사와 사업 실패도 맥페일의 빠른 은퇴에 영향을 줬다.

맥페일은 1956년에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맥페일은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 1954년 월드컵 지역 예선을 포함해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총 5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맥페일은 FIFA 월드컵 본선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는데 1950년에는 스코틀랜드 대표팀이 월드컵 출전을 거부해버렸고[2] 1954년에는 맥페일이 본선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3.1. 이후

맥페일은 은퇴 후 10년간 데일리 레코드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4. 수상

4.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2]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스코틀랜드가 속했던 1조는 FIFA의 특혜로 영연방 4개팀끼리 지역 예선을 치러 2위까지 진출권을 줬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밀려 2위를 하게 된다면 월드컵 출전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순위가 자기들이 말한 대로 나오자 월드컵 출전을 진짜로 거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