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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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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 (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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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전체 영어 명칭은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이지만
영연방의 정부(내각), 관보(런던 가제트), 왕실 등 공공기관 웹사이트에서 약칭 Companion of Honour로 표기,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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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제103대 재무장관
조지 기드온 올리버 오스번
Rt Hon. George Gideon Oliver Osborne
파일:조지 오스본.jpg
<colbgcolor=#c0311a>본명 George Gideon Oliver Osborne
조지 기드온 올리버 오스번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71년 5월 23일 ([age(1971-05-23)]세)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런던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
( 현대사학 / B.A.) (1993년)
재임기간 제103대 재무장관
2010년 5월 11일 ~ 2016년 7월 13일
선임장관
2015년 5월 8일 ~ 2016년 7월 13일
경력 제53~56대 서민원 의원
재무장관 (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선임장관 (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지역구 태튼(Tatton)
배우자 프란시스 하웰(1988년~2019년)[2]
테아 로저스(2023년~)
자녀 슬하 4명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53, 54, 55, 56

1. 개요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2.2. 정계 입문 이후2.3. 재무장관 취임2.4. 영국 경제를 살려내다
2.4.1. 재정건전성 확보2.4.2.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 투자 활성화,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2.4.3. 제조업을 부활시키다2.4.4. 물가를 다시 안정시키고 실질임금을 상승세로 되돌리다
2.5. 2기 내각과 정계은퇴
3. 여담

[clearfix]

1. 개요

보수당 소속의 영국 정치인이자 보수 언론인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을 맡았으며, 정계 은퇴 이후 타블로이드 일간지인 이브닝 스탠더드의 편집장을 맡았다. 2021년 10월 4일부터 대영박물관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

런던 웨스트민스터 패딩턴에서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제17대 준남작 피터 오스번(Sir Peter Osborne, 17th Baronet : 1943~)은 오스본 & 리틀(Osborne & Little)이라는 벽지 제작 회사를 설립한 귀족 출신의 사업가이고, 어머니는 헝가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원래 이름은 기디언(Gideon)이었는데, 해당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13살에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조지로 개명했다고 한다. 이 후 오스본은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현대사를 전공하였다. 옥스퍼드 대학의 상류층 클럽인 벌링던 클럽[3]에 가입하기도 했다.

2.2. 정계 입문 이후

대학을 졸업한 오스번은 영국의 대표적인 우파 성향 신문사인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입사하였다가, 얼마 후에 보수당 당직자로 일하게 되었다. 당직자로서 오스본은 당시 보수당의 대표를 맡고 있었던 윌리엄 헤이그를 보좌했다.

뛰어난 문필력의 소유자였던 오스번은 헤이그의 연설문들을 주로 작성하였으며, 덕분에 오스본은 당 지도부의 인정을 받아 2001년 총선 당시 체셔주 태턴 선거구[4]에 보수당 후보로 공천되어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당시 오스본은 30세의 나이로 2001년 총선 당선자들 중에 최연소였다.

이 후 오스본은 당시 당 내 소장파들의 리더 격이었던 데이비드 캐머런의 심복이 되었고, 캐머런이 보수당 대표로 당선된 2005년에 그림자 내각의 재무장관으로 영전된다. 당시 또 다른 캐머런의 심복은 테레사 메이 전 총리였다.

2.3. 재무장관 취임

2010년에 치러진 제55회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면서,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 그대로 재무장관에 임명된다.[5]

당시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와 오스번 장관의 경제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감세, 규제완화 등 일련의 기업친화적인 경제정책들은 영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회복시켰으며, 이러한 경제 성과 덕분에 보수당은 제56회 영국 총선에서 단독 과반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2.4. 영국 경제를 살려내다

2.4.1. 재정건전성 확보

캐머런과 오스번은 처음부터 강력한 재정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정부지출의 확대를 억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줄이고 따라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이러한 정책은 많은 반발을 불러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 내각, 특히 캐머런과 오스번은 이러한 정책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빚으로 하는 복지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캐머런의 소신이었다.

한 때는 IMF가 경고를 할 정도로 캐머런과 오즈본의 이러한 경제 행보는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 뒤로 IMF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뚝심있는 재정보수주의 정책이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 ##

실제로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이 이끌던 노동당 정권의 첫 예산안이었던 1998년도 예산안부터, 마지막 예산안이었던 2009년도 예산안까지를 비교할 경우, 영국의 정부지출 증가액이 무려 3385억 파운드였고, 이는 같은 기간동안의 GDP 증가액인 3138억 파운드보다도 많을 정도였다. # 정부지출의 증가율도 무려 연평균 7.13%였다. 전체 GDP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노동당 정권 13년동안 9.7%p나 증가했으며, 이는 같은 기간동안 OECD 평균이 3.1%p 증가에 그친 것에 비하면 매우 급격한 정부지출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2008년부터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지출의 급격한 확대가 불가피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블레어-브라운 정권의 1998년도부터 2007년도 예산안까지의 정부지출 증가액 또한 무려 2545억 파운드였으며, 이는 같은 기간동안의 GDP 증가액의 63.1%나 됐다. 해당 기간동안의 정부지출 증가율 또한 6.52%나 됐다. 해당 기간동안에는 전체 GDP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3.9%p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동안 OECD 평균 GDP 대비 정부지출은 오히려 0.2%p 감소했다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

파일:화면 캡처 2022-05-27 092622.jpg

이러한 급격한 정부지출 증액으로 인해, 노동당 정권동안 영국의 연간 재정적자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1998년도부터 2009년도까지 영국의 연간 재정적자는 1726억 파운드로, 같은 기간동안의 GDP 증가액의 55%를 넘을 정도이다. 심지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이라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호황이었던 1998년도부터 2007년도의 경우에도 재정적자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316억 파운드 늘어났다. 대외채무 또한 1조 5000억 파운드에서 6조 파운드로 증가하여, 액수로 따지면 4조 5000억 파운드, 배수로 따지면 무려 4배나 늘어났다. 대외채무의 급증은 순대외채권에도 악영향을 주어, 1997년에 -0.2%였던 영국의 GDP 대비 순대외채권(대외채권에서 대외채무를 제외한 수치)의 비율은 2010년에는 -3.1%까지 악화되었다.

파일:화면 캡처 2022-05-27 100701.jpg

반면 캐머런 내각의 경우, 마지막 예산안이었던 2016년도 예산안이 노동당 정권의 마지막 예산안에 비해 1010억 파운드 늘어나는 것에 그쳤고, 이는 같은 기간동안의 GDP 증가액의 35.70% 정도이다. 정부지출의 연평균 증가율 또한 2.02%에 그쳤다. 전체 GDP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0년에 비해 7.3%p나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동안 OECD 평균 정부지출 대비 GDP 비율이 2.3%p 감소한 것에 비하면 그만큼 캐머런 내각이 정부지출를 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파일:화면 캡처 2022-05-27 092906.jpg

덕분에 캐머런 내각 재임기동안, 영국의 연간 재정적자는 놀라울 정도로 감축되었다. 노동당 정권 마지막 예산안에서 1750억 파운드에 육박하던 영국의 재정적자는, 2016년도에는 560억 파운드로 무려 1/3 이하로까지 줄어들었다. # 대외채무 또한 1500억 파운드 증가에 그쳤으며, 이는 노동당 정권 증가액의 1/30에 불과하다. # 대외건전성 또한 대폭 향상되어, 2009년만 해도 -433억 파운드로, 자산보다 부채가 많았던 영국의 순대외자산이, 2016년에는 3728억 파운드까지 크게 늘어났다. #

파일:Screenshot_20220527-095205_Chrome.jpg

2.4.2.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기업 투자 활성화,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파일:Amir-10-25-1.png

정부지출을 억제하는 대신, 캐머런과 오스번은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경제를 살리고자 했다. 주로 자가용 보유자들이 많이 부담하는 유류세를 동결하는가 하면, 법인세율을 28%에서 20%까지 인하했다. # 또 규제완화를 위해 규제총량제를 도입하여, 규제를 건수가 아니라 비용을 기준으로 평가함으로써,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했을 때 늘어나는 직접적인 경제적 순비용만큼 기존 규제를 풀어 전체적인 규제비용의 총량이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것을 정책적 목표로 삼았다.

2010년 9월 규제총량을 유지하는 원 인 원 아웃(One-in, One-out) 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2013년 1월부터는 기존 총량을 더 줄이는 규제감량제인 원 인 투 아웃(One-in, Two-out) 제도를 도입했다. 규제를 신설하려면 그 순비용의 2배에 해당하는 기존 규제를 철폐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규제 시행일도 국민 편의를 위해 연 2회로 정했다. 지난 1월에만 올해 상반기 동안 73개의 규제평가가 이뤄진다고 예고했다. 이러한 규제총량제 도입으로 줄어든 규제비용은 2011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모두 12억 파운드, 한화 약 2조1358억 원에 이르렀다. #

이러한 캐머런 내각의 노력들에 힘입어, 영국의 기업 투자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실제로 노동당 정권의 경제정책이 주관했던 1998년부터 2010년까지의 총고정자본형성(Gross Fixed Capital Formation, GFCF), 다시 말해서 기업 투자(Investment)의 경우, 연평균 증가율이 1.53%에 불과했다. 반면 캐머런이 이끄는 보수당 내각의 감세와 규제완화가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2011년부터 캐머런이 임기를 마친 2016년까지의 기업 투자는 연평균 증가율이 3.84%나 되었다. #

또 캐머런 내각에서의 기업 투자 활성화는 전체 경제의 성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경제성장률은 다시 오르고,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 세계금융위기의 여파에 신음하는 동안 영국은 아주 빠르게 금융위기의 늪에서 벗어났다. # 실제로 캐머런 임기동안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줄곧 유로존 평균을 웃돌았다. #

캐머런 내각에서의 가파른 경제성장은 일자리 창출의 호황으로도 이어졌다. 실제로 노동당이 집권했던 1997년 5월부터 2010년 5월까지의 연평균 일자리 창출은 21만개에 그친 반면, 캐머런 보수당 내각이 재임했던 2010년 5월부터 2016년 7월까지의 연평균 일자리 창출은 43만개나 되었다. #

이러한 차이는 국제적인 기준에서도 두드러지는데, 블레어와 브라운이 집권했던 2005년 1분기부터 2010년 1분기까지의 영국 일자리 증가율은 0.78%에 불과해, 같은 기간 동안에 유럽연합이 기록한 2.51%에 크게 못 미친다. 고용률 또한 2.80%p 감소하여, 같은 기간동안에 OECD가 기록한 0.81%p 감소에 비해서도 더더욱 고용지표가 부진했던 것이다.

파일:화면 캡처 2022-05-30 101621.jpg

반면 캐머런 내각이 재임했던 2010년 1분기에서 2016년 2분기까지의 영국 일자리 증가율은 9.42%로, 같은 기간 동안에 유럽연합이 기록한 3.02%를 무려 3배 이상으로 상회했다. 고용률 또한 4.23%p 증가하여, 같은 기간 동안에 OECD가 기록한 2.83%p 증가를 상회했다. #

더욱 긍정적인 부분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 투자 활성화의 노력이 재정수입 증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상단에서도 언급했듯이, 비록 법인세율은 28%에서 20%까지 파격적으로 인하했지만, 기업들의 이윤이 크게 늘어난만큼 법인세 부과 대상은 그 이상으로 증가한 덕분이다. 실제로 블레어와 브라운이 집권했던 1999년부터 2010년까지의 연평균 법인세입 증가액은 7.93억 파운드에 그쳤지만, 캐머런 내각이 재임했던 2010년부터 2016년까지의 연평균 법인세입 증가액은 10.82억 파운드나 되었다. #

2.4.3. 제조업을 부활시키다

사실 블레어와 브라운의 노동당 정권 13년동안, 영국의 경제성장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상단에서도 언급한 정부지출의 급격한 증액과, 금융업의 폭발적인 성장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특히 금융업의 경우, 2001년 12월에 출범된 금융감독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금융감독청은 영국 금융업에 대한 규제를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영국의 내각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된 기관이었던 만큼, 당시 집권 노동당의 전반적인 경제정책 기조와 달리 금융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규제의 정도를 매우 낮게 유지했다. 실제로 존 메이저 보수당 내각이 재임했던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의 금융업 매출액은 78억 파운드 증가했다가, 노동당 정권 초기였던 1997년부터 2001년까지는 26억 파운드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금융감독청이 주관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영국 금융업이 다시 활성화되어, 2001년부터 2005년까지는 매출액이 무려 393억 파운드나 증가하게 되었다. #

하지만 노동당 정권 13년동안 영국의 제조업이 급격하게 무너져 내려갔다. 실제로 마거릿 대처와 메이저의 보수당 내각 18년동안 1610억 파운드에서 1860억 파운드로 250억 파운드 증가했던 영국의 제조업 총부부가치는, 블레어와 브라운의 13년동안에는 1860억 파운드에서 1450억 파운드로 410억 파운드나 감소해버렸다. # 제조업 일자리 또한 1997년 1분기만 해도 437만개였던 반면, 13년이 지난 2010년 1분기에는 282만개가 되어, 무려 155만 개 제조업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

노동당 정권 13년은 특히 영국 제조업의 주력 업종인 중공업에 타격이 컸다. 2000년에는 181만 대에 이르던 영국의 자동차 생산량이 2009년에는 109만대까지 추락해버렸다. # 철강 생산량 또한 1997년의 1850만톤에서 2010년에는 970만톤까지 급감해버렸고, 제철업계 종사자들 또한 35000명에서 19000명까지 감소해버렸다. #

그렇기 때문에 보수당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은 제1야당 당수였던 시절부터 제조업 부흥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 캐머런 내각은 상단에서 언급한 감세, 규제완화와 함께, 2010년 6월에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수출, 기술, 혁신, 대출을 한번에 지원하는 정부 전담팀을 설립했다. # ## 또 2010년 12월에는 각 제조업 분야들을 활성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로 구성된, 제조업을 되살리기 위한 종합적인 성장전략을 수립했다. #

이러한 노력들에 힘입어, 노동당 정권 말기에 1450억 파운드에 그쳤던 영국의 제조업 총부가가치는 캐머런 보수당 내각 6년동안 364억 파운드 증가하여 2016년에는 1814억 파운드까지 회복되었다. # 기업들의 신규투자에 힘입어, 영국의 자동차 생산량 또한 2009년의 109만대에서 2016년에는 182만대에 육박하게 되었다. # ## ### 그외에도 기계, 정보기술 등 주요 제조업 업종들이 전반적으로 활성화되었다. #

제조업 일자리 또한 증가세로 돌아서, 2010년 1분기부터 2016년 2분기까지 22만개 증가하여 제조업 일자리가 304만개에 육박하게 되었다. # 즉 제조업 일자리가 블레어와 브라운의 13년동안에는 연평균 12만개씩 사라진 반면, 캐머런 내각 6년동안에는 연평균 3.6만개씩 늘어난 것이다. 상단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체 일자리 연평균 증가 수의 차이가 22만개인 것을 감안하면, 제조업 일자리에서의 15.6만개 격차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4.4. 물가를 다시 안정시키고 실질임금을 상승세로 되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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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와 브라운의 노동당 정권 직전에 재임한 메이저 보수당 내각에서는 영국의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1992년 4월부터 메이저 내각 마지막 달인 1997년 4월까지,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61개월 연속으로 OECD 평균 물가상슬률보다 낮았다. 덕분에 노동당 정권으로서는 적어도 물가관리에 있어서는 훨씬 수월한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당 정권에서는 보수당 내각에서 안정시켰던 물가를 유지하는데 실패하여, 2008년 9월부터 노동당 정권 마지막 달인 2010년 4월까지 20개월 연속으로 OECD 평균보다 높은 물가상승률을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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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문제가 되었던 건, 이러한 물가상승이 임금상승을 상회했다는 것이었다. 명목임금상승률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은 상황, 즉 실질임금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7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영국의 실질임금상승률은 22개월 연속으로 감소했다. 불황을 경제학적으로 정의할 때, 2분기 연속 실질성장률 마이너스로 정의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실질임금상승률 22개월 연속 마이너스는 그야말로 민생대공황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즉 노동당 정권 말기 영국인들은 민생경제의 파탄을 피부로 느꼈고, 이러한 상황이 2010년 영국 총선에서 정권교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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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수당이 재집권한 이후에도, 2011년의 국제유가 급등 때문에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 하지만 영국의 기준금리가 2009년 이후로 동일하게 유지된 반면, 상단에서도 언급했듯이 정부지출 증가가 크게 억제되었던 덕분에 시중으로 유입된 통화의 증가량이 시장에서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상단에서 언급된 유류세 동결 또한 영국 내 유가를 안정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덕분에 영국의 전반적인 물가가 안정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2014년 3월부터 캐머런이 총리직에서 물러난 2016년 7월까지 29개월 연속으로 OECD 평균보다 낮은 물가상승률을 구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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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014년 10월부터는 명목임금상승률이 다시 물가상승률을 상회하게 되었고, 따라서 영국의 실질임금상승률은 플러스로 돌아왔다. 이후 2017년 1월까지 영국의 실질임금은 22개월 연속 증가세를 구가했다. 즉 보수당 내각이 집권하면서 투자가 활성화되고 경제가 성장한 과실을 일반 대중들 또한 누릴 수 있었던 것이고, 이러한 경제회복이 2015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5. 2기 내각과 정계은퇴

이 후 캐머런 2기 내각에서도 오스번은 재무장관으로 유임되었고, 추가로 선임 장관에까지 임명되면서 명실상부한 캐머런 내각의 2인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6] 덕분에 오스본은 캐머런의 뒤를 이을 유력한 차기 총릿감으로까지 거론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오스번은 캐머런과 함께 잔류파의 핵심 인사로 활동하였고, 이 때문에 해당 국민투표에서 탈퇴로 결정되자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결국 오스번은 캐머런과 함께 각료직과 의원직에서 사퇴하면서,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상태이다. 현재는 테블로이드 일간지인 이브닝 스탠더드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차기 유럽은행총재에 지명됨에 따라 재무장관을 지낸 오스번이 IMF의 총재 후보에 올랐다.

2021년 6월 경 대영박물관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조지 오스번을 의장으로 선출했고 9월 1일부로 오스번은 이사회의 일원이 된다. 10월 4일부터 공식적으로 이사회 의장으로서 직책을 수행하게 된다.

2022년 10월 영국 보수당 지도부 선거에서 반드시 리시 수낙이 영국 총리 겸 보수당 당대표로 선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3. 여담


[1] 컴패니언 오브 아너(Member of the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2] 이혼 [3] Bullingdon Club.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와 보리스 존슨 전 총리 또한 해당 클럽의 멤버였다. [4] 맨체스터의 위성도시이다. [5] 공교롭게도 오스본이 당직자 시절 모셨던 윌리엄 헤이그가 외무장관에 임명된다. [6] 1기 캐머런 내각은 보수당- 자민당 연정이었기 때문에, 1기 내각의 공식적인 서열 2위는 자민당 대표 겸 부총리였던 닉 클레그이다. 보수당 각료들로 한정해도 1기 내각의 선임 장관은 윌리엄 헤이그였기 때문에 서열 3위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