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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46:20

조전(주천복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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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全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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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경완(景完)으로 양주 돈황군 효곡현 사람.

진탁의 후손이고 한나라 때 조참이 왕실을 도와 한무제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자손이 옹주 교외로 옮겨 우부풍, 안정, 무도, 농서, 돈황 등에 모여 가는 곳마다 뛰어났다.

2. 생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극진하면서 위를 삼가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글이 없었으며, 어질면서도 효도하는 성품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계조모를 수양하거나 계모를 받들어 섬겼고 그들의 생각을 먼저 알아 뜻대로 받들었다. 그에 대해 향리 사람들은 행정을 종사하는 것에 있어 청백함은 백이, 숙제, 정직함은 사어를 사모했다고 했다.

군의 우직을 거쳐 상계, 연사, 장사를 지내다가 양주날사가 되었으며, 일찍이 치중별가가 되어 기강을 떨쳐 관리들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여러 고을을 다스려 간사한 것을 없애 악한 무리들이 마음을 씻고 동료들이 덕에 감복하면서 위엄에 두려워했다.

169년에 효렴으로 뽑혀 낭중이 되었다가 서역무부사마가 되었는데, 소륵국에서 화덕이 아버지를 죽이자 군사를 일으켜 항복시켰고 이후 우부풍 괴리령이 되었다가 동생의 상으로 벼슬을 버리고 7년간 은거했다가 183년에 효렴으로 뽑혀 184년에 낭중이 되었다가 주천복록장이 되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함양령이 되어 주천현에서 혼란을 일으킨 곽가[1]를 진압했고 백성들에게 곡식을 주거나 병든 사람에게 약을 나눠줬으며, 장원, 가옥을 수리했고 군의 선비인 이유, 난규, 정인 등을 천거했다.

이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 바로 한나라 예서체의 대표적인 작품인 조전비다.


[1] 조조의 모사 곽가(郭嘉)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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