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식 趙宇植 |
|
창씨개명 |
시라카와 에이지 白川榮二 |
출생 | 미상 |
사망 | 1950년 3월 이후 |
직업 | 화가, 평론가 → 문학인, 언론인 |
장르 | 시, 산문 |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 시기의 인물. 일제 말기에 적극적인 친일을 했다.2. 생애
1937년 5월,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 부분에서 <남(男)>으로 입선했다. 입선 이후 여러 인물과 양화극현사를 결성해 전시회를 열었고, 1938년에는 공연 "지평선"의 무대장치를 담당하기도 했다.[A] 같은 해 9월 11일에 매일신보에서 "쉬르레알리슴 회화 소론"으로 문필에 등단했다. 1938년부터 39년까지 모더니즘 성향을 띄는 여러 산문을 매일신보에 발표했다.[B]1939년 7월에는 미술 집단 마마 (ママ) 의 회원이 되었고, 같은 해 경성제국대학 갤러리에서 똑같이 화가였던 주현과 '2인전'을 열었다.
1940년까진 미술과 평론, 미술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으나, 1941년부터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펼치며 미술과 평론을 그만두고 문학과 언론에 전념하기 시작했다.[B] 1941년 4월 전후에 자오선 (子午線) 에 입사했고[A], 활발한 친일문학과 언론인 활동을 이어갔다.
1944년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계속했으며, 광복 후에도 언론인 활동을 지속했으나 광복 후의 행적은 미미하게만 알려져 있다. 1946년 5월 26일 당시엔 서울신문사 출판국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서울신문사의 월간지 "신천지"의 편집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B] 1949년 12월에 경향신문사에서 월간지 "신경향"을 창간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한 바 있다. 1950년 3일에 경향신문사를 퇴직했으며 퇴직 이후론 행방이 묘연해졌다.[A]